원어해설 284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떼로
prasiav
소구획의 땅, 그룹.||#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라시아(Homer 이래)는 프라손(%642: 부추 leek)에서 유래했으며, '소구획의 땅' a plot of ground, '정원 화단' a garden-bed을 의미하며, 비유적으로 '사람들의 그룹'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프라시아는 신약성경에서 막 6:40에 2회 나온다: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사람들이 여러 떼 또는 여러 조로 기대어 앉았다. 그리하여 그 여러 떼가 따로 따로 소구획들의 그룹을 형성하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늑징하다
pravssw
성취하다, 행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랏소(아테네어로 프랏토: 성취하다, 행하다)는 Linear B(그레테섬에서 사용되던 고대 언어의 한 형태)만큼이나 오래전에 사용되던 단어이다.||이 단어는|(a) '넘어가다, 건너다, 횡단하다, 앞으로 나아가다',|(b) '길을 따라 여행하다, 무엇을 얻기 위해 여행하다',|(c) '어떤 것을 취하다'(예를 들면 그가 명성을 얻었다),|(d) '~에 분주하다, ~을 추구하다',|(e) 재정적으로 '수금하다, 지불을 요구하다',|(f) '행하다, 행동하다'(도덕적 가치나 상황을 나타내는 부사와 함께),|(g) 주술에서 '주술 행위를 하다',|(h) '배신하다, 배반하다', 예를 들면 '도시를 저버리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프랏소는 70인역본에서 약 40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사(행하다, 창 31:28; 잠 10:23; 잠 13:16; 잠 14:17; 잠 21:7), 파알(행하다, 욥 7:20; 욥 35:6; 욥 36:23; 잠 30:20), 할라크(행하다, 수 1:7)의 역어로 사용되었다.|70인역본에서 프랏소는 포이에오($4160: 하다, 행하다, 만들다) 보다 훨씬 적은 역할을 한다. 그 이유는 프랏소가 하나님의 창조나 복종하는 인간의 행위를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용어는 사업이라는 의미를 너무 많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지혜 문학에서는 이 용어에 윤리적으로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잠 14:17; 욥 27:6; 욥 36:21, 23). 이 단어는 마카베오서에만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마카베오이서 12:43; 마카베오삼서 3:20).||#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랏소는 신약성경에서 3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신약성경에서는 창조적인 활동을 의미할 때 프랏소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주로 부정적이며 얼마간 추상적인 인간 행동을 의미할 때 사용되지만, 어떤 곳에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거나 중립적인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a) 프랏소는 눅 3:13의 돈 문제에 관하여 설교하는 세례(침례) 요한의 설교에 나타난다. 그 말씀에서 세례(침례) 요한은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묻는 세리들의 일상적인 질문에 대해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고 대답한다.|마찬가지로 종들에게 은 열 므나를 준 주인의 비유문에도 그가 돌아와서 원금과 이자를 상환받고자 했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고"(눅 19:23).||(b) 프랏소는 ① 엡 6:21에서 '인간적인 사정'을 의미한다: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② 행 15:29에서는 부사 유(eu)와 함께 사용되어 '잘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③ 행 16:28에서 "네 몸을 상하지 말라"고 바울이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외친 외침도 개인의 행복을 염두에 두고 행해진 것이다: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c) 플랏소는 ① 살전 4:11에서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또 너희에게 명한것 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그 말씀에서 이 말은 자기 자신의 일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는데, 반면에 똑같은 성구에서 에르가제스다이라는 말은 손수 행한 육체적인 일을 시사한다.|② 행 5:35에는 일반적으로 잘 행동한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고, 악한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는 인간 행동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거기에서 가말리엘은 기독교인들에 대해 "행하고자 하는 바를" 아주 신중하게 하라고 유대 공회에 경고한다.|③ 마찬가지로 행 19:36의 말씀에도 경솔한 행동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d) 프랏소는 ① 정식 세상 법정이나(롬 13:4; 행 17:7; 눅 23:41) 하나님 앞에(참조: 롬 2:2 이하; 요 5:29) 설 수 없는 행위를 나타낼 때 주로 사용한다.|② 공식적인 성구들에서는 사형에 처해질 만큼(악시아 다나투) 중한 죄에 대해 말하고 있다(눅 23:15; 행 25:11; 행 25:25; 행 26:31; 롬 1:32).|③ 고후 12:21에서도 프랏소라는 말은 본래 성적인 범죄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e) 행 19:19에서 사도행전 기자는 도덕적 범주에 속하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적 범주에 속한 프랏소라는 동사형을 가지고 "마술을 행하는" 행동들을 언급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기한 행동들은 마술 행위를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참조: E. Haenchen).|또한 우리는 종교적인 범죄들 속에 예수님 배반(눅 22:23), 백성들의 무지 때문에 행해진 예수님 살해(행 3:17)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에 대적하여 행한 사울의 적대 행위(행 26:9)를 포함시킬 수 있다.||(f) 롬 7:15에서 토 카톤 프랏세인(악을 행하는 것)이 지니고 있는 유혹(temptation)의 힘이 나타난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여기에서 바울은 프랏소와 포이에오($4160)란 말을 병행하여 사용한다.|요 3:20에 의하면 악(화울라)을 행하고 빛을 미워하는 자는 누구든지 이런 유혹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갈 5:19에 의하면 에르가 테스 사르코스(육신의 일)를 행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롬 2:25에서 할례로 특징 지워진 옛 계약에서 율법에 따라 행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참조: 갈 6:13).||(g) 행 26:20에서 바울은 듣는 자들에게 회개의 일(에르가 테스 메타노이아스)을 행하라고 명령한다: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이 말씀에서 프랏소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이러한 것은 바울을 본받으라는 빌 4:9의 말씀에도 적용된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전 9:17에는 올바른 행동은 그에 합당한 상급을 받는다는 관념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찌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본문에서 개인적인 용어로 이해된 인간 행동과 그 행동의 종말론적 평가 사이의 관계에 관한 정의가 요 5:29의 말씀에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포함한 보편 타당성의 형태로 발전된다. 죽은 자가 그 무덤을 떠날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성구는 프랏소가 주로 부정적인 색채로 묘사되고 있음을 또 한번 명확하게 해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C. Maurer; H. -C. Hahn).
겸손한
prau?"
온유한, 친절한, 겸손한, 동정심(인정) 많은.||#1. 고전 헬라어 문헌||프라위스는 호머 시대로부터 사용된 단어로서 어원상으로는 고트어의 프뤼온(사랑하다), 프리온드스(친구) 등과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온화한, 온유한, 즐거운'을 의미한다.|프라위스 단어군에서 나온 단어들은||(a) 사물에 관해서는 '진정시키는, 온화한' (예: 진정제, 온화한 말),|(b) 동물에 관해서는 '길들인' 또는 '유순한'(길들인 유순한 짐승), 짐승을 길들이거나 짐승이 화나거나 흥분할 때 달래거나 진정(안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c) 사람에 관해서는 분노, 난폭, 매정, 잔인하지 않고 '온화한, 친절한, 온유한', 그리고 '즐거운',|(d) 행동이나 감정 혹은 징계와 같은 것들의 '친밀한, 친절한, 관대한'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들은 적에게서는 인정 사정 없는 가혹한 행위가 예상되는 것과 반대로 친구에게서 예상되는 어떤 성질을 가리킨다.||이 파라위스 단어군과 에피에이케스($1933) 단어군의 개념, 이 개념은 모두 억제되지 않는 분노, 가혹함, 야수성 그리고 이기심과 반대된다. 이 개념은 고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 즉 모욕을 받고도 화를 내지 않는 현인, 재판에 임하여 인정 많은 재판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자비로운 왕 등이 지닌 성격의 특징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 단어들은 이상적 통치자에 관한 묘사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찬사 속에 자주 등장한다.|헬라 및 헬라 철학에서 이 개념은 높은 가치를 지닌 사회적 미덕이자 이상을 표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개념을 정열과 무감정의 양극단 사이에 있는 복된 중용의 덕이라고 생각하였다 (F.Hauck/S.Schulz).||#2. 70인역본의 용법||프라위스는 70인역본에서 모두 l9회 사용되었으며, 그 중 3회는 히브리어 아니(억압받는, 가난한, 괴로움 당하는, 비천한, 낮은, 겸손한)의 역어와 아나우(가난한, 겸손한, 온유한)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는 아니가 21회, 아나우가 65회 나오는데, 프토코스, 페네스, 타페이노스, 그리고 프라위스 어군 등으로 번역하였다는 사실은 이 히브리 단어들이 광범위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서 나누어 번역할 특별한 신학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이스라엘에서 가난한 자란 토지 재산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부당하게 억압당하고, 권리를 빼앗기고, 하나님께서 물려주신 풍성한 유업을 수탈당했다. 그들의 가난은 상속권 박탈과 불법적인 손에 의한 것이지 그 사람 자신의 잘못에 의하여 비롯된 것이 아님이 이 단어(아니)가 재산이 아니라 폭력과 대조되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그들은 불법적인 착취의 희생물인 경우가 많았다(욥 24:4; 참조: 사 32:7; 시 37:14). 일반적으로 아니는 무방비 상태인 사람, 권리가 없는 사람, 억눌린 사람, 속임을 당하고 착취당하고 비천한 사람을 의미한다(참조:시편 9편과 10편).|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아니의 편이시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심판자께서 그들을 보호하시며, 그들은 오직 이 사실을 신뢰하며, 이에 소망을 두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권리 없는 자들의 하나님인 까닭에, 동료 인간들에게서는 자비를 얻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위로하시며 구원하신다(시 l49:4; 시34:2; 욥 36:15; 참조: 사 29:19). 마침내는 지금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을 뒤엎으실 것이다(사 26:6). 그들은 땅을 차지하고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한다(시37:11). 여호와는 그들을 붙으시고(시 147:6). 공의로 지도하고 그 도를 가르치신다(시 25:9).|민 12:3에 보면,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다". 온유는 지도자의 중요한 자격 중 하나이다. 집회서 3:8에서 "훌륭하게 되면 될수록 더욱 더 겸손하라 주의 은총을 받으리라" 하였고, 집회서 10:14 에서 "주님께서는 군주들을 그 권좌에서 몰아내시고 그 자리에 온유한 사람들을 앉히신다". 욜 3:11에서는 프라위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없다. 선지자는 성전(聖戰)을 위해 부르고 있다. 평화의 도구가 전쟁의 무기로 바뀌워져야 하고 온유한 자가 용사들이 되어야 한다. 온유한자가 땅을 차지하고 다스린다.|앞에 살펴본 바와 같이 아니 및 특히 아나우는 사회적으로 억압당하고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는 의미로부터 깊은 곤궁과 곤란속에서 겸손하게 여호와의 도움만을 바라보는 사람 또는 그렇게 함으로써 도움을 얻은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다(습 3:12; 참조: 습 2:3; 사 41:17; 49:13; 66:2).||쿰란 문서에서 이 단어들은 일반적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쿰란에 있던 가난한 자들의 공동체는 사유재산의 포기를 질서의 한 규칙으로 정했으며, 종말론적인 구원을 기대하는, 조직이 잘된 공동체 생활을 이룩하였다($4434 프토코스).|슥 9:9에서 아니/프라위스는 메시야에게 주어진 영광의 칭호로 사용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사회적으로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동물을 타셨을 때 그 길은 가난한 자와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에게로 향하셨다(역사의 초기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은 나귀를 타고 다녔지만(삿 5:10; 삿 10:4; 삿 12:14; 삼하 16:2), 후에는 말이 권력가진 자들에게 걸맞는 탈것이 되었다(그러나 슥 9:10에 나오는 병마에 대한 저주를 주목하라, 사 2:7; 사 31:1을 참조). 나귀는 평화를 위해 오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탈것이었다(J.G.Baldwin).|아니의 의미는 슥 9:9을 비롯한 수많은 구절에서 변화되어 있다. 즉 70인역본은 이 단어를 프라위스로 번역함으로써 보다 수동적인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단어를 능동적이며 윤리적 의미를 가진 헬라어 단어로 바꾸어 놓았다. 문자 그대로 결핍을 의미하는 단어가 온유나 겸손 따위의 찬양할만한 미덕으로 변화되었다. 그것은 그 이상 그 단어의 비밀을 헬라어가 보다 분명하게 나타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프라위스는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에 3회, 베드로전서에 한번 나온다.||(a) 프라위스는 마 5:5에 나오는 세번째 축복, 즉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축복 선언에 나타난다. 일반 헬라어의 용법에 따르면, 프라위스 곧 온유한 자는 본능과 충동, 격동 등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훈련된 인격자이다. 이 단어의 통상적 용법은 인간에 대한 태도, 특히 자신을 평가 절하하고 부당하게 대우하며 해롭게 하는 자들에 대한 마음의 성향 및 행동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온유의 그리스도교적 개념은 이러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훨씬 더 깊은 것이다.|신약성경 히브리 역본에서 마 5:3에 "가난한 자"와 여기에 "온유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다같이 아니이다. 이것은 "온유한 자"는 "가난한 자"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니는 '가난한, 억압받는, 괴로움 당하는, 비천한, 낮은, 겸손한'을 뜻하는데, 제 1복에서는 자신의 문제인 "가난한"이란 의미가 더 강조되어 있고, 여기서는 타자(他者)와 관계에서 자신의 문제인 '억압받는, 괴로움을 당하는, 겸손한'이란 의미가 더 강조되어 있다. 따라서 온유는 나 자신에 대한 자세인 동시에 타자, 곧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관계에서 나의 자세의 표현이다.|그리고 동사 클레로노메오($2816)는 70인역본의 신 4:1; 신 16:20 및 시 68:36에서 이스라엘의 땅을 소유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구절에서 의미하는 것은 새로운 약속의 땅을 소유하는 것, 또는 상속받는 것이다. 신명기 기자에게 복종과 의로움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조건인 것처럼, 축복선언에 나오는 가르침에 겸손히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새로운 땅으로 들어가는 조건이다. 이 구절은 시 37:11의 그것과 같은 주제를 말하고 있다. 이 시편의 주제는 축복 선언 전체의 주제와 매우 유사하며, 다위비드 힐은 쿰란 종단은 이 시편을 그들의 메시야적 공동체의 확립을 통하여 성취될 과정에 관한 예언으로 채택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4 QpPs 37; 참조: Op.cit , 112).|이 축복선언은 지금 억눌리고 멸시 당하며, 마치 가나안 정복 이전의 이스라엘처럼, 자기 것이라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장래에 하나님의 땅의 통치의 상속인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예수님 자신에 관한 암시적 언급이기도 하다.|벧전 3:4에서 프라위스는 기독교 사랑의 구체적 표현인 미덕의 목록에 나온다.||(b) 프라위스는 마 11:29; 마 21:5에서 예수님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온유는 그리스도의 통치의 표시이다. 정치적 메시야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져오기 위하여 힘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따라서 그는 사람들이 메시야 왕으로 예측하지 않는 형태로 자기를 모든 기대에서 어긋나게 처신하셨다. 즉 투구와 갑옷을 입고 군마를 타고 무장하여 무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지상에서의 주님의 사역은 힘이나 전쟁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구원을 가져오는 왕의 사역이었다(슥 9:9). 하지만 마 11:29 은 그 배후에 셈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므로(참조:사 42:2 이하; 사 53:1 이하;슥 9:9 ), 이 구절에 프라위스는 히브리적 의미에서의 아니를 암시하고 있으며, 따라서 메시야의 인간적인 빈궁함을 강조한다. 루터는 메시야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방도도 없고 궁극적으로는 갖가지 불의에 수난을 당했던 '거지-왕'(Begger-King)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로 통치하고 통치 방법은 온유이다.|(참조: F.Hauck/S.Schulz; W.Bauder).
프라위파디아
prau>paqiva
온화, 온유, 친절 gentleness.||프라위파디아는 프라위스($4239)에서 파생되어 투키디데스(Thucydides) 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온화, 온유, 친절' 등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에는 딤전 6:11에만 나온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프라위테스
prau?th"
온유, 친절, 겸손, 동정심.||#1. 일반 헬라어의 용법||프라위테스는 프라위스($4239)에서 파생되어 투키디데스(Thucydides) 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온유, 온화, 친절'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프라위테스는 70인역본에서 11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나와 안와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에 3:13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자기가 온유하게 처신하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에 5:1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온유하게 변화시켰다고 한다. 시 45:4에서 왕과 관련하여 나온다: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시 90:10; 시132:1에는 '고생'이란 의미로 나타난다. 집회서 1:17; 4:8; 10:28에서 '유순, 온유, 겸손'이란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프라위테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온다. 신약성경이 프라위테스를 주장할 때, 그것은 순전히 인간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태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구원의 징표이다. 즉 그것은 '부름'(엡 4:2)과 선택(골 3:12)의 표식이며 성령의 역사(갈 5:23)이다. 그것은 헬라적 의미에서의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생활과 행위의 가능성이다. 그것은 인간의 한 기질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결되고 그의 형상과 일치될 때에 생겨나는 것이다.|고후 1O:1에서 바울은 프라위테스와 에피에이케이아($1932)를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동안 사람에게 보여주셨던 태도의 특징으로 언급하면서, 그것을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교회에 제시한다: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프라위테스는 또한 죄를 범한 기독교인을 처리하는 일에 있어서 가져야할 태도에 관해서 언급된다(고전 4:21; 갈 6:1; 딤후 2:25).|약 1:20에서 프라위테스는 올게($3709:성내는 것)와 대조되어 있으며, 선생에 대하여 분노를 터뜨리는 것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는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를 가리킨다. 온유는 신적 지혜로 영감된 참된 의인의 표식이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 3:13). 여기서 온유는 의인의 전 행위에서 나타나며, "독한 시기와 다툼"과 반대된다(약 3:14; 참조: 집회서 3:17; 벧전 3:4).|벧전 3:15에서 당국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의 이유에 대하여 물었을 때 친절하게 온유 겸손히 응해야 한다고 한다. 비록 그들의 부당한 대우가 분개와 반항하도록 자극할지라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적대와 박해의 상황과 관련하여 언급한 것이다.|(참조: F.Hauck/S.Schulz; W.Bauder).|→ $4239b 프라위스
프레포
prevpw
어울리다, 적합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레포는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 호머 이래로 나오며,||(a) '튀어 나오다, 눈에 뛰다, 분명히 보이다, 현저하다'(Hom. 11. 12, 104).||(b) '어울리다, 적합(적당)하다, 알맞다'(Pind., Aeschyl., Hdt.)를 의미한다.|데이($1163: 반드시 ~해야 한다. 필요한 것이다)와 오페일로($3784: 빚지다)가 필연성 및 의무를 표현하는 반면에 프레포($4241)는 적당한 것, 알맞은 것을 표현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프레포는 70인역본에서 10회 나오며, 시 33:1에서 나웨(500: 어울리는, 적합한)의 역어로, 시 65:2에서 두미이야(1747: 친묵, 고요함, 신임)의 역어로, 시 93:5에서 나아(4998: 적당하다, 아름답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어울리다, 적합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레포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적합하거나 합당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여기서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이행하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의역할 수 있다.||(b) 고전 11: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이 질문은 바울이 예배 때에 여자들이 머리에 베일을 쓰는 문제를 논의하면서 물은 것이다.||(c) 엡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성도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일들에 관해서 말하는 가운데 어떤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참조: 엡 1:1). 또한 그들의 대화로 말미암아 남의 죄를 너그러이 보아 넘겨주어서도 안될 뿐만 아니라, 잡담으로 말미암아 남의 죄를 드러내 보이는 것도 옳지 않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경솔한 자들 가운데 성적인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참조: 엡 5:12).(F. Foulkes).||(d) 목회 서신은 여성과 기독교 교사들이 가져야 할 알맞은 처신을 제시하고 있다.|① 딤전 2:10에서 여자들은 "선행으로" 자신을 꾸며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다.|② 딛 2:1에서 디도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라"는 권면을 받는다.||(e)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방식의 적절성을 다음 두 구절에서 언급하고 있다.|① 히 2: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② 히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이중의 첫번째 구절은 그리스도가 사람과 동일함을 보여주려 하고 있고, 나중의 구절은 그리스도와 죄에 빠진 사람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C. Brown).
사신
presbeiva
대사의 임무 embassy, 대사, 사신 embassado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a) 프레스베이아는 프레스뷰오($4243)에서 유래했으며, 처음에는 연장자의 위계의 권리들을 의미하였다(Aesch. Perae, 4). 그 후에는 일반적으로 `지위 또는 위계를 의미하였다( Plato, Republic 509b).||(b) 프레스베이아는 '사절의 직무, 사절'을 뜻한다. 도리스 세계(Dorian world)에서는 연령에 따라 축적되는 이러한 탁월성은 국외의 외교 사절 기능을 능숙하게 수행하도록 할 뿐 아니라 정치적인 공동체 내에서 고문 역할을 하도록 하기도 하였다.||#2. 신약성경의 용법.||프레스베이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비유에서 정치적 사절단, 사신의 임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눅 14:32; 눅 19:14).*
사신이 되다
presbeuvw
손위이다, 사신이다, 다스리다 ru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레스뷰오는 프레스뷔테로스($4245)에서 유래했으며, 헤로도투스(Hdt. 7, 2)와 소포클레스의 글(Otdipus Coloneus l422)에서 '손위이다, 최연장자이다`라는 뜻이며, 그 후에 '상석을 차지하다'(Soph., Antigone. 720)나 '매우 높이 존경하다`(Aessh.Eum.,1; Choeph., 488 등)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다음에는 특별한 의미로, 프레스뷰오는 `보냄받은 자(이다)로 활동하다, 메시지를 전달하다'를 의미한다. 사절의 활동에 대해서 `협상하다'(Hdt., 5, 93)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전이된 의미로는 어떤 것을 `대표하다'이다.(참조: G.Bornkamm ; L.Coenen).||#2. 신약성경의 용법.||프레스뷰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만 나오며, `사신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고후 5:20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의 사역을 사신의 임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사도는 프레스뷰오의 엄숙한 용어의 사용을 하나님이 세상을 자기 자신과 화해시키는 행동이 화해의 사역의 제정을 필요로 한다는 근거에서 정당화한다("화목하게 하는 직책", "화목하게 하는 말씀", 고후 5:l8이하).|다음에 말씀 전파는 단순한 구원의 행위에 대한 소식의 전달이 아니라 그 구원 행위의 근본적 부분이다(고후 5:l9; 참조:고후6:1). 그리스도나 하나님께서는 대사들의 입을 통하여 스스로 말씀하신다. 화해의 말씀은 완성된 행위를 믿음으로 그것을 소유하게 하는 소환이나 초청이다. 여기서 촛점은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의 권위에 있다기보다는 메시지의 권위에 있다.|고후 5:20의 휘페르 크리스투("그리스도를 대신하여")는 비록 그리스도가 부재한다든가 사도들이 그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는 아무 암시가 없다 할지라도, 사도들이 그리스도 대신 흑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b) 엡 6:20에서도 사도의 전도에 대하여 언급한다: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그러나 여기서 고후 5:20과는 달리, 복음이 승귀하신 그리스도를 대신한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고후 5:20의 매우 중요한 요점, 즉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사도의 말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벌써 가지 아니한다.|(참조: G.Bornkamm ; L.Coenen).
장로
presbutevrion
장로 회의 council of elders, 장로의 지위 rank of elder or presbyter.||#1. 70인역본 및 구약시대의 용법||(a) 프레스뷔테리온은 프레스뷔테로스($4245)에서 유래했으며, 기독교 이전의 유일한 실례로, 70인역본 수산나 50에서 신이 준 `장로들의 지위(위엄)'라는 의미로 나온다.||(b) 주전 3세기 말경 또는 2세기 초엽, 셀루오쿠스 왕조 안티오쿠스 3세의 통치 시에 70인(또는 71인)으로 이루어가는 장로 회의, 곧 산헤드린이 존재하였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참조: Josephus, Ant., 12, 2,5 이하).||#2. 신약성경의 용법.||프레스뷔테리온은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온다. 눅 22:26과 행 22:5에서 유대인의 공회를 가리키는데 사용된다.(위의 내용 참조). 그 밖에 이 단어는 딤전 4:14에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안수로 임명되는 장로직을 의미하고 있다. 이 안수식을 누가 인도했는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예레미아스(Jeremias,Ioc.cit.,132)는 투 프레스뷔테리우("장로의 회에서")를 목적을 나타내는 소유격, 곧 '그 장로를 위하여'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 해석은 기독교의 일종의 `장로 회 의'가 안수를 주었다고 보는 디벨리우스(Dibelius, HNT l3 ad loc.)와 로제(E. Lohse, Die 0rdination 82)에 반대되는 것이다.|(참조: G.Bornkamm ; L.Coenen).
늙은이
presbuvtero"
손위의 order, 장로 elder, presbyt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프레스뷔테로스는 프레스뷔테스의 비교급이며 호머 시대에 나타난다.||(a) 이 단어(군)는 처음에는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더 늙은, 손위의'(older)란 뜻을 나타내었다. 예를 들면 '손위의 아들', '젊은 세대에 비해 늙은 세대'이다. 그렇지만 비교급의 의미가 약화되어 단순히 '늙은, 노인'이란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그 후에 '보다 크게 중요한' of greater importance(참조: '인간적인 것들'과 비교되는 '신의 것' things divine, Hdt. 5, 63)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결국 이 단어는 '더 존경 받는'(more honoured)이란 의미가 되었다. 사회 질서에 있어서 노인들은 그들의 경험과 지혜 때문에 존경과 권위를 부여 받았다(참조: Arist., Ethica Eudemia. 1251a 23, '현명한 노인들'). 힘없고, 약하며 또는 구태의연하다고 하여 업신여기는 기록은 전혀 없다.||(b) 또한 프레스뷔테로스는 국가 관리나 종교 지도자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스파르타에서 프레스뷔테로스는 집정관들의 협의회 의장에게 주어진 명칭이다.|그렇지만 애굽에서는 복수 프레스뷔테로이가 여러 종류의 위원회나 협의의 위원들에 대하여 적용되었다. 예를 들면 조합(P.Teb. 13, 5)이나 상인 단체 또한 종교 조직체의 구성원들에 대하여 적용되었다.|지방 평의회에서 프레스뷔테로스는 매해 지방 평의회에서 선발되어 사법과 행정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대표자들의 호칭으로 나타난다. 그 수는 2, 3명, 10명 등 다양하고 임기는 일년이다. 주요한 것은 프레스뷔테로이는 '큰 신' Socnopaios의 제사장들의 실행위원들(5, 6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에서 이 단어는 제도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 않고 젊은이와 대조되는 의미로서의 연장자라는 의미를 유지하였다(참조: C. Bornkamm; L. Coenen).||#2. 70인역본의 용법.||프레스뷔테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30회 나오며, 주로 자켄 등 8개의 히브리 단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프레스뷔테로스는 '손위의, 연장자, 늙은, 나이 많은'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자켄(원래 '수염난'이란 뜻으로 법적 성년에 도달한 사람이란 뜻이었다가 후에 노인이란 뜻이 되었다)의 역어로 창 18:11과 그 밖의 곳에서 '나이 든' 것이나 '늙은' 것, '노인'(신 28:50)을 나타내며(창 18:11; 창 19:4 이하 등), 베키라(큰 딸, 창 19:31 이하), 베코르(맏이의, 욥 1:13; 욥 1:18), 야쉬쉬(늙은, 나이 많은, 욥 32:6), 야셰쉬(나이 든, 대하 36:17)의 역어로 사용되어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b) 프레스뷔테로스는 한 부족, 가문, 백성 또는 이주민 사회 내에 속한 남자들의 한 집단으로서의 장로, 장들(대부분 복수로 나오나 단수로도 드물게 나온다)을 의미한다. 이 경우 주로 히브리어 자켄, 에스라서에는 시브(장로)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옛 역사에 있어서 성읍의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장로로 불리웠다. 이러한 장로들은 이스라엘 민족 이외의 민족들 사이에도 있었다(창 50:7; 참조: 민 22:7).|① 장로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에 나타난다. 그들은 대가족들 혹은 씨족들의 우두머리들로서 백성이라는 큰 단위들의 지도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본래의 관계성을 상실하고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은 인물과 더불어, 또는 그 휘하에서 국가 전체의 대표자들로 나타난다.|모세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결심을 장로들에게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장로들은 모세의 바로 궁전에서의 탄원에 대한 증인이 된 것이다(출 3:16; 출 3:18; 출 4:29; 게루시아). 장로들은 유월절을 지도하였다(출 12:21; 게루시아). 그들은 호렙산에서 샘물의 기적을 보았다(출 17:5). 그들은 여리고의 잔치에도 참여했다(출 18:13). 하나님의 시내산 언약은 그들과 맺어졌다("백성" 출 19:7 이하). 그들은 다단과 아비람의 처벌에 대한 증인이었다(민 16:25). 이 "장로"라는 호칭은 모세가 대표자들의 대표단을 구성하기 위해 두번씩 "이스라엘의 장로들" 중에서 70인을 뽑은 사실에서 명백하게 나타나는 바와 같이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이 장로들은 시내에서 언약이 비준된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며(출 24:1), 모세의 짐을 나눠지도록 하나님에 의해 임명되었다(민 11:16-17; 민 11:24-25). 그들은 부분적으로 모세의 명령을 받음으로써 권위를 인정 받았다. 랍비들은 후에 출 24장과 민 11장을 크게 강조했다. 후자의 구절들이 산헤드린을 위한 표본을 형성했다.||② 사사들과 군주 시대에 장로들은 정치적, 군사적, 법적 문제들에 있어서 결정을 내리던 지방 자치 기구들의 지도급 인사들이었다(수 20:4; 삼상 16:4; 삿 11:5 이하; 룻 4:2 이하). 전승에 의하면 지역 내에서의 사법과 정치적 군사적인 결정을 하는 장로들의 책임은 이스라엘 지역에서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기브온(수 9:11), 숙곳(삿 8:14; 삿 8:16)과 같은 지방 지역들에서까지도 적용되었다. 이 모든 지역들에서는 귀족적이며 족장적이며 사회적인 조직이 똑같이 발견된다.|한편 "장로"라는 칭호는 계속 개별적인 부족들(삼하 19:11)과 온 이스라엘의 통치 계급에 적용된다. 장로들은 지방 또는 부족에서 공통된 결정들을 위해 모였다(삼상 30:26 등). 장로들은 블레셋을 대적하여 법궤를 보낼 것을 결정한다(삼상 4:3). 군주정치의 도입을 요구한 자들도 바로 그들이었다(삼상 8:4 이하). 왕들이 장로들의 뜻에 얼마나 의존했는가 하는 것은 사무엘에 대한 사울의 애원(삼상 15:30)과 다윗의 즉위(삼하 3:17; 삼하 5:3), 이에 대한 압살롬의 도전(삼하 17:4; 삼하 17:15; 삼하 19:12), 르호보암 시대에 왕의 옹립자로서 장로들의 역할(왕상 12:6 이하; 대하 10:6 이하), 아합의 위기 때에 장로들과의 협의와 그들을 조종하려고 하는 아합의 시도(왕상 20:7 이하; 왕상 21:8; 왕상 21:11) 등에서 증명된다. 마침내 장로들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에 부족과 지파들의 우두머리들과 함께 모든 백성을 대표하는 자로 나타난다(왕상 8장; 대하 5장). 군주 정치에 대한 종종 음모적인 성향까지 나타내는 그들의 비판적인 태도는 의심할 바 없이 왕 중심의 행정권 형성과 왕가의 권력 성장으로 인하여 제기되는 자신들의 영향력에 대한 위협 때문이었다.||(c) 포로 상태에서(렘 29:1)와 모국에서(겔 8:1 이하) 모든 유대인 사회의 수호자이며 대표자로 다시 한번 나타나는 자들이 바로 장로들이었다. 렘 26:17에서 지방의 장로들은 예레미야를 위하여 변호했지만 예루살렘의 대표적 장로들은 우상 숭배에 참예하고 있었다(겔 6:1). 포로 시대에 장로들은 제한적 자치 기구 내에서 주요한 지도자들로서 다시 나타난다. 이제는 가문들이 더 중요하며 귀족 정치도 발전했다. 장로들은 그들이 속한 가문들의 특별한 지위를 힘입어 권세를 누렸다. 따라서 새로운 용어들, 예를 들면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느헤미야 같은 통치자들은 이 신흥 귀족들에게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가문의 우두머리들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시브(참조: 스 6:14, 한글개역 "장로")는 70인역본에서 역시 프레스뷔테로스로 번역되었다. 스10:14을 볼 때 신명기에 나오는 장로 계급의 계승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이곳의 강조점은 귀족적 상위 계급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느 5:17에 의하면 통치자 느헤미야의 식탁에는 매일 150명의 명사들이 모여 있었다. 이런 추세는 예루살렘에서 주요한 가문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되고 중앙 집권적 회합으로 활동하는 일종의 의회의 확립을 향한 것이었다.||(d) 주전 3세기 말경 또는 2세기 초엽, 셀루키드 왕 안티오쿠스 3세의 통치 시에 70인(또는 71인)으로 이루어가는 장로 회의, 곧 산헤드린이 존재하였다는 증거가 있다(참조: Josephus, Ant., 12, 2, 5 이하). 헬라어 게루시아(gerousia)와 로마어 세나투스(senatus)에서 유추해 보면, 처음에 이 산헤드린의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프레스뷔테로이로 불리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점점 예루살렘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을 평회원들을 제사장 가문 출신 및 서기관 계급 출신(주전 70년 이후)들과 구별하여 사용하게 되었다.||(e) 예루살렘의 멸망 후(주후 70년)에는 장로들의 회의는 얌니아(Jamnia)의 산헤드린이 장악했는데 정치적 권세는 없고 오직 사법적 권세에만 제한되었다. 그것은 오직 서기관들로 구성되었다. 결과적으로 "장로"라는 술어는 뛰어난 신학자를 나타내는 존칭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 술어는 평의회의 회원 자격은 아니지만 적어도 성직을 수임하였음을 암시한다(참조: San. 11:1-4). 이 때에 지역의 공동 사회의 오래된 조직으로 존속하였던 유대 회당의 회당장들도 역시 프레스뷔테로이로 불리웠다(참조: 베둘리아[Bethulis]의 장로들, Jud. 6:16, 21). 그들은 징계의 권력을 수반하여 전통 질서를 고수하는 지도권과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눅 7:3에 추가하여 이에 대한 비문의 증거가 있다. 주후 약 2세기경부터 이 단어는 유대 사회에서 그 기능적 의미를 잃고 흩어진 유대인들 가운데에서 주로 헬라어들인 다른 표현들로 대치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 단어는 귀족 가문을 나타내는 존칭으로 종종 언급된다.||(f) 쿰란 공동 사회에서는 "장로"라는 호칭이 여전히 남아 있었으나 특별한 직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 두루마리(1QM 13:1)에는 전쟁의 서열에 대한 묘사 가운데에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나란히 장로들의 이름이 나온다. 아마 이곳에서는 가문들의 우두머리들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러나 다메섹 문서(CD 9;4)와 공동체 규정(1QS 6:8)에는 장로들이 제사장 다음 서열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장로들은 교육과 재판의 결정들에 대한 책임들, 곧 율법이 요구하는 올바른 행동에 대한 지식을 공급함에 있어서 제사장 다음이었던 것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프레스뷔테로스는 신약성경에서 66회 나오며, 공관복음에 24회, 요한복음에 1회, 사도행전에 17회, 목회 서신에 5회, 히브리서에 1회, 공동 서신에 5회, 요한계시록에 12회 사용되었다.||(a) 유대인의 장로들.|(1) 공관복음에서 유대 장로들은 수난에 대한 예언과 수난 기사들에만 나오고 있으며 이 언급은 특히 예루살렘의 귀족 가문 출신의 공회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공관복음에서 장로들은 제사장 귀족 계급인 "대제사장" 다음에 거의 정규적으로 나열되어 그들 공회원들에게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상호의존 관계임을 보여준다. 이들이 대공회에 속한 집단들의 목록에서 맨처음으로 나오는 유일한 곳은 수난에 대한 첫번째 예언 대목이다(막 8:31). 이것은 깊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의 장로라는 호칭은 그들을 율법의 대표자로 특징 지우는 것이며, 이 율법 아래에서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난의 사건들에 대한 기록에서 실제적인 행위자이며 선동자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공회의 제사장 회원들이었다(참조: L. Coenen).||(2) 산헤드린의 구성원이되 성직자가 아닌 자로서 '장로들' elders이라고 불리우는 자들은 신학적으로 사두개파의 대제사장 계급의 모범을 따르는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다(행 23:1-10, 행 23:14). 공관복음서 기자들은 여기에 차별을 두지만 예수님의 재판에서 그들이 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한다.|① 무엇보다도 마태는 예수님에 대한 재판에서 대제사장 뿐 아니라 '장로들'까지도 유대인 관계자로 언급한다(마 21:23; 마 26:3; 마 26:47; 마 27:1; 마 27:3; 마 27:12; 마 27:20; 마 28:12). 마태는 최초의 수난 예언(마 16:21)에서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희롱하는 곳에서만이(마 27:41) 그들과 함께 서기관들을 역시 언급한다.|② 마가와 누가의 경우에는 세 무리는 수난 예언에서 언급될 뿐만 아니라(막 8:31; 눅 9:22) 권세에 관한 질문과 연관하여서도(막 11:27; 눅 20:1) 언급한다. 그러나 형을 선고할 때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만이 언급되는 반면 예수님을 체포한 자들은 세 무리 모두에 의해 보냄 받는다(막 14:43).|눅 22:52에서 예수님은 그를 잡으로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마태에 따르면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대제사장 가야바와 함께 모여 있었다(마 26:57; 유사하게 막 14:43; 막 15:1). 눅 22:54도 장로들이 대제사장과 함께 있었음을 전제한다.|③ 산헤드린의 일원인 장로들은 또한 예루살렘에서의 사도들의 박해에도 한 역할을 한다(행 4:5; 행 4:8; 행 4:23). 행 6:12에 따르면 헬라파 유대인들은 스데반에 맞서서 백성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을 선동하였다. 바울의 생명을 취하고자 40인의 선동자들이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할 준비를 하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움을 청했다(행 23:14). 아나니아는 한 대변자와 어떤 장로들과 함께 총독 벨릭스에게 내려와서 바울을 고소하였다(행 24:1).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새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에게 바울에 대한 재판을 요청하였다(행 25:15).||(3)눅 7:3에 따르면 가버나움의 백부장이 예수님께 유대 회당의 장로들을 보내어 자기 종을 고쳐주기를 요청하였다.||(4) 제의적 청결 및 부정에 대한 논쟁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위반한 것으로 언급된다. 이것은 그리스도 이전 세기에 모세의 토라를 결의론적으로 발전시킨 바리새파 서기관들(신학적 선조들)을 언급하는 것이다(마 15:2; 막 7:3; 막 7:5).||(4) 히 11:12의 장로들은 앞서간 자들의 믿음의 길에 대해 말하는 본 장에서 언급된 자들이며 옛 언약의 믿음의 증인들이며 따라서 지나간 세대의 일원들이다. 이들 지나간 믿음의 증인들의 모범이 히 11:3 이하에 열거된다.||(b) 그리스도교의 장로들.|(1) 누가는 최초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을 사도들 다음 가는 장로들로 묘사한다. 이 그룹은 누가에게 아마도 유대교의 산헤드린과 유사하거나 사도행전의 이방인 그리스도교 독자들에게 헬라 도시의 게루시아(Gerousia: 장로회의)와 유사할 것이다. 행 11:30에서 이 지도적인 그룹은 예루살렘을 위해 안디옥에서 모금한 연보를 수령한다. 행 15:2; 행 15:4: 행 15:6; 행 15:22에 의하면 비록 주도적인 역할이 사도들 자신에게 그대로 남아 있긴 하지만(베드로가 화자이다) 장로들은 사도회의에 참여한다.|사도의 규례에 관한 본문(행 15:23)과 더욱이 그것을 언급한 곳(행 16:4)에서 장로들은 사도들 뒤에 언급된다. 행 15:41에 의하면 바울과 실라가 수리아의 길리기아 교회에 전달한 엔톨라이 톤 프레스뷔테론(장로들의 교령)은 사도의 교령이다(행 15:23 이하).|행 16:4 이후에는 사도들이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누가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한 장로들을 예루살렘 교회의 새 지도자들로 전체 교회를 대표하는 일종의 권위를 지닌 위원으로 소개하는데, 그들의 우두머리는 야고보이다(행 21:18).||(2) 누가는 또한 장로들의 모임을 바울이 세운 이방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도자들로 언급하는데, 저들은 눅 7:3의 회당 공동체의 장로들과 유사하다.|이 그리스도교 장로들은 각 교회에서 교회의 설립자들에 의해 기도와 금식으로 임명되었다(행 14:23). 에베소에서도 장로 회의가 교회를 이끌며(행 20:17), 그것의 임무는 목자들의 직무에 비교된다(행 20:28).||(3) 똑같은 제도가 목회 서신과 공동 서신에서 발견된다. 딛 1:5에 따르면 사도의 생도 디도는 바울 사도의 명령으로 그레데에 있는 공동체에 장로들을 세운다(이 용어는 딛 1:7의 에피스코포스, 감독과 교체 가능하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함이 잘 다스리는 장로들의 특징이다(딤전 5:17). 장로들은 성급한 고소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딤전 5:19). 벧전 5:1 이하에서 기자는 동료 장로(쉼프레스뷔테로스)로서 다른 장로들을 권면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목자직의 품행에 관하여 훈계한다(참조: 행 20:28). 약 5:14은 장로 회의의 존재를 암시하는데, 병자를 위하여 돌보도록 장로들을 청할 수 있다.||(4) 프레스뷔테로스는 요한이서(1절)와 요한삼서(1절)의 발송자로 독특한 지위를 자치한다. 비록 그의 신원은 알 수 없으나 지방 장로 회의의 일원이라든가 우두머리는 아닌 것 같다. 프레스뷔테로스는 파피아스(Papias)가 말하는 사도 전통을 간직하여 전달하는 자를 가리키는 영예의 명칭인 것 같다(유세비우스, HE ⅲ. 39. 3 이하; 참조: Boronkamm 670; H. von Campenhausen).||(c) 요한계시록에서 24장로들은 하늘의 존재로 묘사된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있으며, 만국에서 온 수많은 순교자들로 기술되어 있다(계 7:9-17).계 5:5과 계 7:13을 제외하고 그들은 대표자들이며(계 4:4; 계 7:11; 계 14:3), 제의적 예배를 대표한다(계 4:10; 계 5:6; 계 5:8; 계 5:11; 계 5:14; 계 11:16; 계 19:4). 프레스뷔테로이는 요한계시록의 환상들 중에 12회 언급되는데, 항상 24인(2X12; 제일 처음으로는 계 4:4 이하에 언급, 계 7:11을 참조)이 한 그룹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흰 옷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 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앉아 있는데, 단지 네 생물이 이들과 보좌 사이에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이들은 고귀한 천국 직분을 맡은 자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의 활동들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며(계 4:10 이하; 계 5:6 이하; 계 11:16 이하) 또한 이 찬양들을 부를 때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다(계 14:3). 가끔 그들 중의 하나가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 앞으로 나온다(계 5:5; 계 7:13; 참조: 마 16:15 이하에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증거).|이 환상들이 지상 교회에서의 장로들의 직분에 대응하는 천국 직분이며 또한 이 직분을 보다 높은 지위로 올린다는 의미를 시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시사를 증명하기는 불가능하다. 24라는 숫자와 보좌 주위에 있는 무리는 천문학적 개념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장로들이 천국에 속하고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 이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 형상과 숫자는 유대 제사장들(대하 24:7 이하), 또는 성전 찬양대(대하 25:9 이하)를 가리키는 24개 조의 지도자들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후기 유대교에서 "장로들"로 칭함을 받았다(참조: E. Lohmeyer, 계 4:4에 대한 HNT 16, A. Satake, "Gemeindeordnung", WMANT XI, 147). 이들은 거룩한 성의 문과 기초석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열 두 족장들과 열 두 사도들을 대표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계 21:12 이하) 또는 이 개념들과 다른 개념들의 연합일지도 모른다(참조: G. B. Caird, 요한계시록 주석, 63 이하).||(d) 마지막으로 프레스뷔테로스는 단순히 연장자에게 사용되기도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책망을 해서는 아니되며, 오히려 공손한 태도로 권면해야 한다(딤전 5:1; 딤전 5:2; 참조: 벧전 5:5). 베드로는 오순절 기도에서 욜 3:1(70인역본)을 인용하여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고 말한다.|요 8:9은 산헤드린의 장로들이 아니라 "나이 많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간음한 여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예수님께 데려와졌기 때문이다(요 8:3; 참조: R. Schnackenburg. John).|눅 15:25에서 탕자의 형은 '나이 먹은' older(호 휘오스 프레스뷔테로스)으로 기술된다.|(참조: L. Coenen; J. Rohde; G. Bornkamm).
늙은 남자
presbuvth"
노인 old ma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프레스뷔테스는 프레스뷔스(%895:늙은 old)의 시적인 변형이며, 핀다르(Pindar)에 제일 처음 나온다.||(a) 이 단어군의(참조:$4245) '더 큰 존경'(greater respect)이라는 이 의미는 대개 '더 많은 연령'(greater age)이라는 의미와 결합되어 그 어근에서 유래한 다른 단어들의 용법을 결정한다. 따라서 명사 프레스뷔테스(Aesch. 때부터)는 '연령'(age), '지위'(rank), 또는 '노인'(the old man)을 나타낸다. 곧 이미 네아니스코스(젊은이)가 아닌 사람, 아마 50세가 넘는 사람일 것이다. 여성 명사 프레스뷔티스(Aesch. 이래)는 여자 노인을 의미한다.||(b) 중요한 점은 사절의 개념이 종교적 영역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프레스뷔테스는 필로(Philo)에서 하나님의 사절, 곧 하나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Abr.,115),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을 대표하는(Gig.,16) 천사들, 중보사역을 한 모세, 영지주의 문서에서 사절로서의 구속자, Manichaean 문서에서 하늘의 사절들에 적용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순례하는 스토아 학파 교사들은 신의 사신과 전령의 후광으로 나온다.|초기 기독교에서도 프레스뷔티스는 하나님의 사자(messenger)에 대해 사용되었다. 안디옥의 익나티우스는 교회에 신적 권위를 지닌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절들의 개념을 취급하였다(Philadelphians 10.1).(참조: G.Bornkamm ; L.Coenen).||#2. 70인역본의 용법.||프레스뷔테스는 70인역본 구약성경에서 거의 자켄(원래 의미는 `수염난 bearded'이란 뜻으로 법적 성년에 도달한 사람이란 뜻이었다가 후에 노인이란 뜻이 되었다)의 역어로, '연장자`, '고령자나 노인`란 의미를 지닌다. 프레스뷔테스는 이런 의미로 30여회 나온다. 예를 들면,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창43:27),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삼상 2:22) 등이다. 늙은 이와 젊은 이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자들의 나열에서 대조되어 나타난다(사 20:4).||#3. 신약성경의 용법.||프레스뷔테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단순히 '긴 수명'이나 `더 긴 수명'을 언급하며(눅 1:18; 딛 2:2 이하 ; 몬1:9), 존경스러운 나이 많은 남자와 여자를 각각 의미한다.|바울은 몬 1:9에서 자기 자신을 프레스뷔테스라고 부른다. 바울은 아마 여기서 고후 5:20과 엡 6:20에서와 같이 `대신'이란 의미보다 오히려 `연장자나 고령자'라는 의미로 사용했을 것이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하여 간청하면서, 그의 사도적 권위보다는 그의 나이, 그의 유대 관계, 그가 오네시모의 영적 아버지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빌레몬의 사랑에 호소한다.|(참조:G.BORNKAMM ).
늙은 여자
presbuvti"
늙은 여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레스뷔티스(Aechyl., Pla. 이래)는 프레스뷔테스($4246: 노인)의 여성형이며, '늙은 여자' an aged woman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프레스뷔티스는 신약성경에서 딛 2:3에 한번 '늙은 여자'를 나타낸다: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몸이 곤두박질하다
prhnhv"
곤두박이의 headlon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프레네스(Homer 이래)는 전치사 프로($4253)에서 유래했으며, '곤두박이의' headlong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프레네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1:18에 한번 나온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톱으로 켜다
privzw
톱으로 자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리조(Pla., Theag.)는 프리오(%643: 톱질하다)의 다른 어형이며, '톱으로 켜다(자르다)', '톱으로써 둘로 자르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리조는 신약성경에서 히 11:37에 한번 '톱으로 자른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전부터
privn
전에 before||프린(Homer 이래)은 기본 전치사 프로($4253: 전에, 앞에)에서 유래한 부사이며, '전에' before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프린은 14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