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panourliva
교활 crafty, 간교한 cunning.||$3835 파누르고스|교활한 crafty, 간교한 cunning, 부정한 knavis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이 어군은 두 개의 어근, 곧 판(%854: 모든)과 엘그(%855: 일하다)에서 파생되었으며, 그 기본적 의미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을 뜻한다.|이 단어는 아에스퀼루스(Aeschylus)에 최초로 나오며 그 때 이후부터 세속 헬라어에서 대부분 경멸적 어조로, 지조 없이 '무슨 일이나 행할 수 있는'이란 의미로 나타난다(Aristotle, Lysias 등). 신의 속성에 대해서도 이 의미는 부정적이다. 유리피데스(Euripides)에서 달과 수렵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는 파누르기아를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데(Aphrodite)에 대해 사용하였다. 사람은 자신을 모든 피조물 중에서 무슨 일이든 행할 수 있는 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러나 사실상 그는 가장 쉽게 잘못된 자기 평가를 하는 자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적극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소수의 예문들에서 거짓되고 주제넘은 자기 평가에 대한 암시를 나타내고 있다(Platon, Plutarch).|이 단어군의 어원에 내포된 긍정적인 능력이란 의미는 전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헬라적 사고에 있어서 이러한 개념은 '오만' arrogance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만이라는 의미는 곧 파누르기아를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들로 물들이는 것이다.|여러 세기 후에 부정적인 용법이 대두되는데, 파누르고스는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이란 비도덕적 의미를, 파누르기아는 '교활, 간교'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어군은 교활한 동물에 사용되었다. 긍정적 의미가 잘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의식 때문이다. 부정적 용법은 성공의 비결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비양심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a) 파누르기아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히브리어 오르마(교활함, 신중, 현명함, 교묘, 지혜)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이런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파누르기아는 잠 1:4; 잠 8:5에서는 '현명한', 집회서 21:12; 집회서 34:12에서는 '재주나 능숙', 수 9:4; 집회서 9:25에서는 '교활'이란 의미를 나타낸다.||(b) 파누르고스는 70인역본에서 19회 나오며, 파누르기아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c) 요세푸스와 필로 모두에게 있어서 이 단어는 철저하게 부정적이며, 악덕에 관한 긴 목록에서 맨 앞에 나오고 있다. 하나의 그럴듯한 예외는 필로의 저서에 나오는 구절(Leg. All., 2, 106이하)로 이곳에서 이 단어는 직공의 '손 재주'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맥은 이 '재주'까지도 그릇되게 사용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한편 쿰란 두루마리들은 명사 오르마를 잠언의 용법과 유사하게 긍정적인 어투로 사용하는 반면에 윤리적인 의미는 분파의 계약형식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예: 1Q Hab. 7:14; CD 2:4).||#3. 신약성경의 용법.||신약성경에서 파누르기아는 5회, 파누르고스는 1회 나타나는데, 모두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놀랍다.||(a) 파누르고스는 고후 12:16에 한번만 나오는데, 강한 반어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찌라도 [공교한 자가]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 바울은 자신이 공교한 자라고 주장하나 물론 그렇지 않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b) 파누르기아.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께 대한 질문에서 '간계' trickery의 죄를 범하고 있다(눅 20:2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신다(고전 3:19). 이는 인간의 판단 능력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의 적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함"에 대해 비난을 받는다(고후 4:2; 엡 4:14). 따라서 바울은 뱀이 그 "간계"(craftiness)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고린도의 개종자들의 마음이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떠나 미혹을 받을까 두려워하였다(고후 11:3).|(참조: D. A. Carson; O. Bauernfe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