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칼럼] 르네상스-암브로죠 로렌체티
인간은 실낙원 이후 고향을 그리워하듯 늘 에덴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 실상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가장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언덕 위의 도시’(A city on the hill)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그런 도시는 실현되지 못했다.
우리는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작은 나라다. 이런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서 똘똘 뭉쳐도 부족한데, 정치권에서는 날만 새면 싸움이다.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해야 무한경쟁 시대에 국민을 잘살게 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런 비생산적인 정치 제도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을 고쳐서 스위스처럼 6개월이나 1년씩 번갈아 가면서 국정을 운영하는 제도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화가 로렌제티가 태어나고 2년이 되던 1292년에 시에나는 평의원 9명으로 구성된 공화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476년 서로마제국이 망한 이후 이탈리아는 강대국들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밀라노나 나폴리, 그리고 시칠리아는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들이 번갈아 가며 통치했다. 그러나 그 외의 지역들은 도시국가들로 명맥을 유지했는데, 시에나도 그 중 하나였다. 특히 시에나는 공화정 제도를 수용하였고, 평의원 9명을 선출하여 통치하도록 했다.
도시국가 시에나는 공화국의 유지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컸다. 시에나의 의원들은 재능 있는 화가에게 1284년에 완공한 시청사에 정부의 정치철학이 담긴 그림을 그리게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자신들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항상 국민을 위하고, 국민이 원하는 방향대로 수종 들어야 한다는 의식을 성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시청의 ‘평화의 방’(Sala della Pace) 넓은 벽에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에 대한 연작 그림을 그리면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 모일 때마다 그것을 보면서 각성하고 좋은 정부를 만들기 위해 분발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심각하게 대립할 때도, 숨을 들이마시고 벽면을 가득 채운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에 대한 그림을 보며 스스로를 성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한순간에 도시국가 시에나의 명줄을 틀어쥘, 자신들보다 강력한 피렌체가 겨우 60Km 거리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해서 뽑힌 화가가 암브로죠 로렌제티(Ambrogio Lorenzetti, 1290-1348)였다. 그는 형과 함께 활동하던, 시에나의 대표적 화가다. 그런데 그에 대한 사료가 르네상스 시대 활동했던 다른 피렌체 화가들보다 부족하다. 그 이유는 시에나는 피렌체와 자웅을 겨루던 정치적·경제적 맞수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시에나와 피렌체는 인접한 도시국가였기에 겹치는 길드(조합)들이 많았다. 시에나 역시 양모와 금융으로 부유하게 된 도시였으니, 경제적으로도 서로에 대한 경쟁과 불신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시에나가 피렌체보다 역사가 깊다. 피렌체는 줄리어스 시저가 퇴역 군인들을 이주시킴으로 시작된 도시이나, 시에나는 전설에 의하면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의 동생 레무스가 죽임을 당하자 그 아들들이 도망쳐 와서 세운 도시라고 믿고 있었기에 남다른 자부심이 대단했다.
로렌제티는 알레고리(비유)로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에 대한 연작을 그렸다.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미술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비잔틴 양식에 기초한 화풍에 당시의 거장 두오초에게 사사했고, 르네상스 미술사에 큰 영향을 끼친 조또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조또가 인용한 원근법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그의 그림들은 피렌체의 우피치 박물관과 몇 곳에 남아 있다.
연작 그림, 오른편의 ‘좋은 정부’, 왼편의 ‘나쁜 정부’는 성경의 마지막 심판대에서 오른쪽과 왼편을 연상케 한다. 오른편은 늙은 왕을 중심으로 평화, 힘, 신중함을 그렸고, 왼편은 머리에 뿔이 달린 악마를 중심으로 관용, 중용, 정의에 대해서 그렸다. 오른편에는 뮤즈들 9명이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고(당시 시에나는 여자들이 낮에 거리에서 춤추는 것을 금했음. 그런데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은 자유로운 삶을 허락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장사하는 사람들이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이고, 또한 그 뒤로 지붕에는 인부들이 열심히 공사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시골에서는 농부들이 밭에서 일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이 모두가 평화로운 모습이다. 좋은 정부는 국민이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자기 일에 자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호소가 담긴 그림이다. 그러나 나쁜 정부는 그 반대로 통치하는 정부다. 정치가들이 숙고해야 할, 독특한 발상으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그림이다.
시에나는 피렌체와 계속 경쟁 관계였다가, 1555년 피렌체 군의 포위를 당해야 했다. 무려 18개월 동안 끈질기게 저항하다가 결국 성문을 열어 줌으로, 500년을 이어오던 시에나 공화국은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 평의원들의 부패와 나태 때문은 아니었을까?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