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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204)숲에 대한 예의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5.03.07 16:31
  • 호수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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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저자)

세상에 개성이란 꽃이 만발하여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절과 의리를 우습게 여기는 세상이 되었다. 이 찬란한 시대에 무슨 고색창연한 예의인가, 예의 같은 것은 도식적인 사람이나 하는 짓, 이런 예의 부재의 시대에 더군다나 사람도 아닌 숲에 대해? 눈이 휘둥그레한 YOU!!!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 근간이 아닐까 싶다.

북한산에는 응봉 능선이 있다. 삼천 계곡을 오르다 보면 능선이 나타난다. 시작점은 조금 가파르지만, 능선 위에 서면 거기 하늘길이 열린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세월이라는 신묘막측한 더께가 덮이면 깊고 웅숭해진다. 숲이야 말해 무엇하리, 처음 응봉 능선 길은 나에겐 새로운 화양연화였다. 영화속 화양연화의 두 사람은 사랑했고 헤어졌고 남자는 앙코르와트의 나무속에 사랑을 봉인한다. 자신의 사랑을 역사 속으로 떠나보내는, 그래서 더 극진한 사랑을 만들던 아름다운 이야기, 응봉 능선을 걸을 때 나는 혼자였고 고독했지만 내겐 순간의 삶을 봉인해서 나만의 역사를 만들던 화양연화였다.

북한산 수목의 종류는 그다지 많지는 않다. 소나무 참나무류들 오리나무 드문드문 물푸레나무과. 쪽동백, 관목류인 진달래 철쭉 산초나무 노린재 나무, 자그마한 본홍빛 꽃 매달고 서있는 싸리나무들이다. 자세히 바라보면 엽엽이 다른 그 생김새라니, 톱니바퀴의 선명함, 둥글고 가늘고 길쭉함, 나뭇잎 위에 솟아나 있는 자그마한 털들, 특히 응봉 능선길 바위 사이에 사는 작은 키의 팥배나무는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뚜렷하고 촘촘한 측맥은 선명해서 단호하기조차 하며 배꽃 닮은 꽃은 아름답고 청초하다. 산자락 아래서는 키가 크지만 능선 위의 팥배나무는 키가 작다. 대신 존재(후손)에 대한 열망 탓인지 꽃잎이 크다. 아마 능선의 세찬 바람 탓이거나 갈한 땅 때문인지도 모른다.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이 한걸음에 닿을 듯 하고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도 한눈에 보인다. 진관사에서 향로봉 가는 능선 길도 바로 곁에 있고 계곡 길도 살짝살짝 보인다. 왼쪽으로는 삼천사에서 비봉과 문수봉을 오르는 내가 자주 가는 길도 보인다. 그렇게 산 위에 서거나 능선을 걸을 때면 생각이 활짝 열릴 때가 있다. 비록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비밀의 길이라 할지라도, 가령 삶을 생각할 때보다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의 길을 갈 때보다 죽음의 길을 갈 때, 더 많은 것을 보게 되며 생각하지 않겠냐는 계시적 사념도 그중의 하나다.

드물긴 하지만 일시에 옷을 벗어버린 나무를 본 일이 있다. 화마가 지난 후 그래도 살려고 애쓰다가 삶의 의지를 포기해버린 나무. 그는 옷= 표피를 벗고 깨복쟁이 자태를 나타냈다. 겉이. 옷이, 껍질이, 체면이, 예의가, 삶의 의지였구나. 깨닫게 해주는 놀라운 웅변이었다. 산길을 걸을 때 잠깐씩 멈추는 게 예의라는 말이다. 가령 당신이 다른 집을 방문했다 치자. 정원을 혹은 정원이 없다면 화분 한 개라도 유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아 멋지군요, 인사하지 않겠는가, 나이 드신 어른 계시면 건강하신가요. 안부 묻지 않겠는가, 혹여 아픈 아이라도 있으면, 아 우리 아이 때도 그랬는데, 공감하면 위로되지 않겠는가. 산은 당신의 방문지 아닌가, 산이 지닌 숲에는 수많은 나무가 있어 자라고 아프며 어느 순간 세상을 하직하려는 나무도 있다. 당신이 산이라면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길들이 고맙질 않겠는가, 아 건강하구나, 아름다워. 다정한 눈길에 힘이 솟구치질 않겠는가,

하마, 저 산이 나 같은 존재에게 무슨 말을 할까, 이미 오래전에 홀로였고 지금도 여전히 홀로고 미래도 홀로 존재할 터인데 그 단단한 존재를 빙자해 이내 외로움 조금 내비쳐본 거지. 산에 오르지도 못하면서……. 그렇다. 오십 대에 산과 바람이 나 틈만 나면 산의 품에 안기던, 북한산이 너무 좋아, 이렇게 좋아서 바람난 사람들이 자녀들을 버릴 수 있는 것일까, 난데없이 유추되던.....그토록 사랑하던 산을, 지금도 멀리 보이면 가슴이 뛰고 설레는 산을, 그 산에 들어선 지가 언제였던가, 바라기는 올봄에는 산에 들어 예의는 무슨, 너나 잘 살아. 산의 속삭임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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