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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y 30. 2021

나발은 정말 어리석었을까?

다윗의 세 번째 부인은 아비가일이다.

아비가일은 원래 나발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자 곧바로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성경은 나발을 어리석고 완고한 남자로 아비가일은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자로 묘사한다.

사실일까?

성경을 조금만 뒤집어 읽어보면 우리의 성경 읽기가 얼마나 단순한지를 깨닫게 된다.


사무엘상 25장은 나발, 아비가일, 다윗의 삼각관계를 보여준다.

성경은 나발의 이름보다 그가 얼마나 부유한 사람인지 먼저 소개한다.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털을 깎고 있었으니”(삼상 25:2)

구약 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나발의 소유가 그의 인격보다 우선했기 때문에 이렇게 소개했다고 하였다. 실제로 성경은 나발이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다”(삼상 25:3)고 평가하였다.

히브리어로 ‘나발’은 어리석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말 나발이 본명일까?

우리나라는 아이 이름을 나쁘게 짓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똥이, 말똥이, 심지어 ‘크게 어리석다’는 뜻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을 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유대인은 누구도 아이에게 이런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장신대 강사문 교수는 말하였다.

“아마도 나발은 그의 실제 이름이 아니라 그의 성격을 표시하는바, 무지나 경멸을 상징하는 별명으로 간주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혹은 성경 저자가 나발을 경멸하기 위하여 어리석은 자란 뜻의 별명을 붙인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발은 ‘위대한 사람’이다.

나발을 부자라고 소개하는 히브리어 “가돌 메오드”는 모세(출11:3), 바르실래(삼하19:32-33), 나아만(왕하5:5,9), 욥(1:3)을 소개할 때 썼던 말과 같다.

KJV은 단순히 부자로 번역하지 않고 ‘위대한 사람’(the man was very great)으로, 제네바 성경은 ‘매우 강력한 사람’(the man was exceedingly mighty)으로 번역하였다.


나발은 어리석은 부자가 아니라 갈렙 가문의 유력자로서 구약 학자 Levenson J.D. & B.Halpern은 나발이 갈렙 가문의 우두머리였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는 갈렙 가문의 유력자로서 사울과 다윗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다윗의 부하들에게 하는 말을 보면, 그는 분명 사울 편에 속한 사람이었다.

갈렙 가문의 유력자이고 부자인 나발이 정치 실세인 사울 왕과 밀접한 것은 당연하다.

사울은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장기 집권하였다.

40년 왕 노릇 했다는 말은 사울이 백성의 지지를 그만큼 받았다는 뜻이다.

사울이 죽은 후에도 북이스라엘은 다윗에게 가지 않고 수년 동안 사울 편에 서 있었다.

이로보건대 사울의 영향력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요즘 정치 감각으로 말하면, 나발은 보수 우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자기 입장이 분명한 사람이었고, 사울과 정치적 노선을 같이하였다.

그가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삼상25:10)고 말한 것은 정말 다윗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일부러 다윗을 무시한 것이다.

그는 다윗이 사울 왕을 배신한 신하로 생각하였다.

그는 다윗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삼상25:10)

나발을 어리석고 완고하다고 평가한 것은 그가 정말 지능이 떨어지고 미련하기 때문이 아니다.

다윗 편에 서지 않았기 때문에 나발을 미련하다고 하였다.


나발은 정치적 상황뿐만 아니라, 최근에 일어난 사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 편에 섰다가 사울에게 가족 전체가 몰살당한 사건도 잘 알고 있었다. (삼상22:9-19)

그가 다윗을 거절한 것은 미련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현실을 잘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나발은 다윗과 얽히는 것을 싫었다.

나발은 다윗이 자기 양 떼를 지켜주는 것도 싫었다.

나발은 양이 삼천 마리, 염소가 천 마리나 가진 부자였고, 갈렙 지파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에 자기 재산을 지킬 만한 종은 충분히 있었다.

아브라함이 318명의 종을 부렸던 것처럼 나발도 수백 명의 종을 거느렸음이 분명하다.

그는 다윗이 원치도 않는 양 떼 보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을 때, 그걸 거절한 것은 너무나 현명한 처사였다.


그렇다면 그의 부인 아비가일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비가일은 정말 현명하고 현숙하였을까?

아비가일과 나발의 결혼 생활은 어떠했을까?

다음 글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Brueggemann Walter, ’ 사무엘 상하’, 한미 공동 주석 편집 번역위원회 편, 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2000년

강사문,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사무엘상’,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2008년

유연희, ‘아비가일의 남자들 : 삼상 25장 다시 읽기’, 구약논단 제16권 1호 (통권 35집) 98-118, 2010년


https://www.youtube.com/watch?v=39_HAReq95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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