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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인트의 책 이야기 May 08. 2023

가슴 구멍의 재해석





#오늘의리뷰     


《 고고의 구멍  | 초월 3

   _현호정 / 허블          



이 소설을 읽다보니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손/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흐르면/ 떠나버린 너에게/ 사랑 노래 보낸다.” 1970년대 초에 대중에 알려진 후 그 뒤로도 한참동안 사랑을 받은 어니언스의 포크송 「편지」 이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멍 뚫린 내 가슴에’이다. 통기타를 두드려가며 그 멍을 뻥~으로 개사해서 부르기도 했다. 뻥뚫린 내 가슴에~를 부르고 나면 오히려 구멍 난 가슴도 메워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가슴에 구멍 안 나고 살아가는 사람 있을까? 방탄가슴은 괜찮을까? 타인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 일상인 사람도 아마 감춰진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나고 구멍이 나 있을 것이다. 하긴 요즈음은 구멍 정도가 아니라, ‘총 맞은 것처럼’으로 표현이 바뀌긴 했다.       



웬 가슴의 구멍인가? 고고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지역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좀 독특한 마을이 있다. 마을에서 아기들은 늘 쌍둥이로 태어난다. 고고는 홀로둥이로 태어났다, 지극히 다행스러운 것은 고고가 태어나기 전 마을의 다른 가정에서 또 다른 홀로둥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선 홀로둥이로 태어나는 것은 거의 저주에 가깝다. 한 배에서 난 동갑내기끼리 평생 한 ‘켤레’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홀로둥이로 태어나면 영영 가족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고고는 역시 홀로둥이로 태어난 노노와 함께 가족을 이루면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노노는 좀 오래 아프다가 결국 숨을 거뒀다.      






그 후 고고는 간단한 살림살이만 챙겨 등 떠밀리듯 마을을 나왔다. 마을사람들은 혼자 사는 것을 두려워했다. 혼자 사는 자들을 두려워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지도 모른다. 가만...이 대목이 수상하다. 소설의 특별한 환경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가?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때로 불안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때도 있을 텐데, 주위사람들은 혼자 사는 사람이 왜 두려운가?       



마을에서 쫓겨난 고고는 한 동안 노마드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둥지로 돌아가기 전 거울처럼 사용하는 작은 웅덩이 앞에 들렀다. 그리고 웅덩이 앞에서 비명을 질렀다. 웅덩이 앞에서 비명을 지른 것은 그날 처음이었다. 습지의 온갖 동식물까지 깜짝 놀라 생태계가 잠시 정지할 만큼 끔찍한 비명이었다. “구멍이었다. 가슴에 구멍이 하나 생겨 있었다.”     



소설의 후반부는 고고가 가슴에 난 구멍을 메우기 위한 여정이다. 마을에 거주할 때 협곡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협곡인들은 협곡지대의 크레이터뿐 아니라 마을의 크레이터까지 살피고 메우고 다녔다. 크레이터란 땅에 뚫린 구멍이다. “협곡인들이 내 몸에 난 구멍보다 훨씬 거대한 땅의 구멍들을 다루는 자들이니 내 구멍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있을지 몰라.”      



고고의 구멍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이 소설의 주안점이다. 그 구멍은 모두 상처였을까? 나를 위해하려는 어떤 상념이나 몸짓 또는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는 아니었을까? 현호정 작가의 작품은 아직 그리 많이 쌓인 것은 아니나, 내일이 더욱 기대되고 궁금해지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문장들이 감성적이면서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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