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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an 31. 2021

안식의 하루

오늘은 안식과 노동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안식과 노동 중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안식은 십계명 중 제4계명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에 안식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순서는 노동이 먼저 나오고 안식은 나중에 나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의 목적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심심하거나 계획 없이 지으신 것이 아니라 분명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게 하심입니다.

28절에는 보다 분명하게 하나님의 의도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해석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세우고 창조하셨고, 그 일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일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장 2절에 안식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물론 그때에도 사람에게 안식을 명령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안식에 대한 명령은 출애굽기에 가서야 비로소 등장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종류이든지 바른 마음가짐과 자세로 한다면,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한다면 그것은 곧 예배가 됩니다.

일을 하는 나의 삶이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나의 이기심과 욕심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은 어떻게 드러내나요?

그것은 가난한 자, 억눌린 자, 소외된 자, 약한 자, 고통 가운데 우는 자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즉 내가 아닌 타자를 생각하고 그를 보살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말씀을 하실 때 그 기준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예수를 믿었느냐? 교회에 열심히 다녔느냐?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마25:42-43)

예수 믿는다는 표시가 어떻게 드러납니까?

주일 성수하며 예배드리는 데서 나타나지 않고 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타인에게 어떻게 행동했느냐로 드러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은 예배보다는 불화한 형제와 화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문제는 이 세상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의 정신을 왜곡하였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일의 정신은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개인 중심이고, 자기 욕심 중심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약자를 억압하거나 빼앗아서라도 나의 주머니를 채워야 합니다.

세상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가 얼마나 돈을 잘 버는 능력을 갖추었느냐입니다.

그 능력을 입증하기 위하여, 공부하고, 언어를 배우고, 기술을 습득합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가 얼마나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느냐입니다.


월터 부르그만은 애굽이란 사회 시스템의 실상을 출애굽기 5장에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는 모세에게 강한 불만을 터트립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들이 일을 못하게 하느냐?”(출5:4)

“너희는 백성에게 더 이상 이전과 같이 벽돌을 만들 집을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모으게 하라.” (출5:7)

“그들에게 더 무거운 일을 시키라”(출5:9)

“너희가 왜 어제와 오늘은 요구 받은 벽돌 양을 너희가 이전에 했던 것처럼 채우지 않았느냐?”(출5:14)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출5:17)

애굽은 현대 사회 시스템과 똑같습니다.

빡빡한 생산 일정을 세웠놓고 성과를 이루라고 끊임없이 닦달합니다.

이러한 세상에 안식은 없습니다.

안식이 없으니 자연히 안식의 의미도 모릅니다.

그저 몸이 너무 피곤하니 조금이라도 쉬기를 원할 뿐이고, 세상에서 하는 일이 너무 힘드니까 잠시라도 휴가를 가서 모든 것을 잊고 싶을 뿐입니다.


요즘 펜데믹으로 우리는 강제로 안식을 얻었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도 안식을 어떻게 누려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으로까지 회사 일을 끌고 들어옵니다. 소위 재택근무이지요.

현대 사회는 사람들이 이기심과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일생 일의 무게에 짓눌려 종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안식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안식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셨던 일의 정신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은 우리 자신만을 위한 일이 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의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일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심지어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일은 주업이 아니라 부업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요 도구일 뿐입니다.

나의 일을 통해서 나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생각하고 돌아봄으로써 빛이 되고 소금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안식은 참된 일을 할 때에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언제 안식을 명령했습니까?

애굽이란 사회 시스템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하며 온갖 고통을 다 경험한 후 안식을 명령하셨습니다.

그건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사람의 고혈을 뽑아내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일해서 먹고 사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핀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대단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우리의 수고는 허사입니다.

파수꾼이 깨어 경성해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만 성이 안전할 수 있습니다.


안식은 무엇입니까?

우리 일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주일에 하루는 일을 멈추고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교제하면서 인생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내가 하는 일의 성격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돌이켜 보라는 것입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안식일을 율법적으로 해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적인 태도는 복음의 자유를 잃게 합니다.

보수 교단에서는 주일 성수라고 해서 주일에는 그 어떤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안식은 “하지마!!!”를 강조하는 날이 아닙니다.

안식은 일의 중심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찬양하면서 동시에 육신의 쉼과 회복을 누립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우리의 안식은 그것을 신앙고백 하는 날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일생 안식하는 날을 주일이 아니라 월요일로 바꾸어 지냈습니다.

목회자에게 주일은 일주일 동안 가장 강도가 높은 노동을 하는 날입니다.

그러기에 목회자의 안식일은 주일이 아니라 월요일이나 다른 날이 됩니다.

그렇다면 주일날 필수 불가결하게 근무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안식도 다른 날로 바꾸어 지낼 수 있습니다.

목숨 걸고 주일 성수를 해야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율법주의적 태도입니다.

어느 날이라도 좋으니 나의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고백하며 모든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 고백의 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안식의 날을 가지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가능하다면 신앙 공동체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주일을 안식하는 날로 삼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요즘 온라인 예배도 있고, 평일 예배도 있으니 예배가 필요하신 분들은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으며, 참된 안식을 누리는 방법을 배워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안식을 누릴 수 있을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제 강의는 마르바 던의 안식을 기초로 한 강의입니다.

책을 구입하셔서 읽으시면 더 큰 유익이 있을 줄 압니다.

제 강의가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를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BbULckFp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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