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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11. 2021

이해한다는 말 하지 마라

“이해한다는 말 하지 마라!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당신이 내 자리에 서 봤어.

내가 겪었던 아픔과 수모와 차별과 편견을 겪어봤어?”

나에게 쏟아붓는 그의 말에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상대편 마음을 누그러뜨릴지 몰랐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나는 지금까지 ‘이해’라는 말을 좋은 의미로 생각하였다.

그건 상대편과 같은 자리에 서 준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상대편의 형편과 사정을 100% 헤아릴 순 없지만, ‘이해’라는 말을 통해 “나도 당신 편입니다” 혹은 “나도 당신 편이 되고 싶습니다”는 표현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건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상대편은 ‘이해한다’는 말을 적개심을 가지고 받아들였다.

‘이해한다’는 말은 계급구조를 연상시키며, 위에서 무언가를 베푸는 형식의 말장난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이해한다’는 말을 ‘건방지다’는 말과 동의어라고 생각하였다.


그럴 수 있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나의 말 하나, 단어 하나가 상대편에게 상처를 줄 수 있구나.

그동안 내가 생각 없이 써온 말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였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이해한다는 말이 뭐가 나빠요?’ 혹은 ‘이해한다는 말 대신에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하고 되물었다.

어찌보면 논쟁적으로 대꾸했는지도 모른다.

상대편은 더욱 화가 나서 나에게 소리쳤다.

“이해한다는 말을 하지 말고, 그저 들어!!!

그저 조용히 내 말을 들어!”

그 순간 기가 막히고 숨이 막혔다.

젊은 친구의 외침에 나는 독방에 갇힌듯하였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아니 요즘에야 그 젊은 친구의 말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그 친구의 요구는 나에게 ‘소크라테스의 자세’를 요구했던 것이다.

“나는 모릅니다. 그러니 가르쳐 주세요. 그건 무슨 뜻이에요. 내가 어떤 단어를 사용하면 좋을까요?”

소크라테스의 신조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이다.

거기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질문)이 나왔다.

그건 누구를 가르치려는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정말 모르기에 알고 싶어서 탐구하는 자세다.

가르침을 받겠다는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과 귀를 활짝 열고, 상대편의 입을 주시하는 자세다.

그러고보니 난 평생 귀는 닫고 입만 열고 살았던 듯하다.

나의 꼰대스러움은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기운이 발바닥에서부터 빠져나가고, 결국 입에만 기운이 남은 사람을 노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 단계 더 나아가 입의 기운도 빠지고 그 위로 귀에만 남는 노인이 될 때에야 진정 현명한 노인이 되는 듯하다.

이제부터 난 입 대신 귀를 여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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