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Review 〉
“죽음이 감히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비밀스러운 죽음의 집으로 달려 들어간다면, 그것은 죄일까?” _윌리엄 셰익스피어
최근 국내 통계에 의하면, 자살 사망자 수가 2011년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하다. 팬데믹 이후 대형 사고가 반복되는데다가 경제적 침체가 장기화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지만, 자살의 동기와 원인을 간단히 평가할 일은 아니다. 보다 세밀한 개인적인 사정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매일 평균 약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공화국’이라는 부끄러운 타이틀이 어서 내려지길 바랄 뿐이다.
인터넷서점 검색창에 ‘자살’을 입력하면 4백 수십 건이 뜬다. 문학작품이나 원서와 번역서가 중복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지구상의 인구가 많아진 만큼 자살인구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자살의 연구』는 작가 겸 비평가인 앨프리드 앨버레즈가 1971년에 초판을 낸 후 출판사를 달리해서 2002년에도 출판했다. 국내 번역본은 최승희 시인에 의해 1995년에 출간된 후, 이번 개정판에선 해당 판본에 누락돼있던 부분을 황은주 번역가가 보완했다.
책의 1장은 지은이가 자살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서 결국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된 문학적 동료인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 후, 그녀를 회상하면서 그녀의 시와 삶과 죽음의 연관성을 찾아보는 작업을 담았다. 2장은 자살의 역사적 배경을 정리했다. 3장 ‘자살, 그 폐쇄된 세계’는 지은이의 사념이 많이 담긴 챕터라서 더욱 주의 깊게 읽게 된다. 4장은 자살과 문학을 주제로 했다(지은이는 이 챕터를 다음 문장으로 시작했다. “내 주제는 자살과 문학이지, 문학에서의 자살이 아니다.” 마지막 5장은 에필로그로 ‘해방’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지은이는 자살을 주제로 상당히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다. 이 책을 통해 어떤 결론을 내리려는 욕심은 내려놓은 듯하다. 그간 자살에 대한 사회적, 학문적 통념을 비판하고 바로잡으려 애쓰고 있다. 자살이라는 주체 자체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교육자인 에밀 뒤르켐(1858.4∼1917.11)이 지은이의 레이더에 걸렸다. 뒤르켐은 사회학자답게 ‘자살은 엄연히 사회 현상이며 자살의 원인 역시 사회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살이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가지 통계 자료를 조사했다. 자살을 원인별로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적 자살로 구분했다. 앨버레즈는 뒤르켐의 이론에 반기를 든다. 자살이 실업처럼 사회적 수단으로 치료될 수 있는 사회적 질병에 해당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주었다는 것이다.
앨버레즈는 자살이란 결국 하나의 선택의 결과라고 한다. 누구든 자신의 목숨을 끊기로 결단을 내릴 때, 그 순간의 결정이 아무리 충동적이고 그 동기가 아무리 착잡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는 일시적이나마 어떤 명징성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자살은 어쩌면 실패로 점철된 생애의 역사에 내리는 파산 선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누군들 성공으로만 이어지는 삶을 살아왔겠는가? 그런 사람이라고 자살의 유혹을 받지 않았겠는가?).
에필로그에서 지은이는 자신이 ‘자살 실패자’라고 고백한다. “자살이 내 인생 불변의 초점이 되면서 다른 모든 일은 우스꽝스러운 심심풀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글이 생각난다. 누군가 자신이 엄청 아끼던 물품을 선뜻 누군가에게 주겠다고 나서면 ‘자살’을 의심해보라고. 이 책은 자살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방을 내려놓고 인문학적으로 성찰해보는 시간을 준다. 자살이 성공하면 그 사람은 떠날 수 있을지 몰라도, 남은 사람들은 어쩌라고? “내 곁에는 아무도 없어요.”하고 떠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떠난 후 깊은 한숨을 쉬며 눈물 짓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가 되는데 그 뒤집을 힘이 없어서 떠나는 이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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