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Review 〉
“내가 평생 동안 해온 말, 평생 써온 글에서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을 모아서 사전을 만들어주게나.”
이 한마디 속에 이어령 선생님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삶도, 죽음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신 선생.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타인의 목소리를 내 목소리라고 내세웠던가? 선생이 영면하신지 만 3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선생이 남긴 말과 글은 꾸준한 생명력으로 우리 곁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선생의 책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1970년대 초 고등학생 때였다. 고등학생 때 교회 선배한테 이어령 선생의 『흙속에, 저 바람 속에』를 선물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경이로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나에게 그 책속의 글들은 신세계였다. 두고두고 읽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흙속에, 저 바람 속에』를 선물해준 선배는 선천적인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그 당시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상태였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하늘나라 가기 전에 자신이 갖고 있던 책이나 소유물을 주변에 나눔하고 간 것이다. 그래서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 뒤로도 선생의 책을 제법 많이 읽었지만, 아직도 못 읽은 책이 많다. 카트에 담아놓고 아직 계산대에 못가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이 반갑다. 선생의 ‘수백 권의 저작에서 뽑은 에센스 중의 에센스’라고 한다. 많은 분들(수십 명)의 노고가 뒤따랐다. 고르고 골라서 이 한 권에 담았다. 이 책 한권을 만들기 위해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어령의 말』 책은 이어령기념사업회 강인숙님의 “어록은 이어령이 쓴 일행시다”라는 서문을 시작으로 9챕터로 편집되었다. 챕터마다 붙여진 제목은 마음, 인간, 문명, 사물, 언어, 예술, 종교, 우리, 창조 등이다. 이 책의 편집에 참여했던 김민희(『톱클래스topclass』 편집장)편집위원이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이어령 입문서’ 내지 ‘이어령이라는 세계의 현관문’으로 바라봐주길 바란다는 언급에 공감한다. 참으로 귀한 책이다. 내 입장에선 이미 읽은 책들은 기억을 되살리는 의미로,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은 만나보게 될 설레임으로 가득 채우게 된다.
많고 많은 글 들 중 하나를 옮겨본다. 제목은 ‘밑줄’이다. “누구나 독서를 하지만 나는 요령이 있다. 어디에 밑줄을 쳐야 하는지를 안다. 그러다보니 관계없는 책들을 읽어도 엮을 줄 안다. 말로 읽어도 되로밖에 못 내놓는 사람이 있지만, 되로 읽고 말로 내놓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읽으면서 이 책, 저 책을 꿰어놓는다.” 나 역시 되로 읽고 말로 내놓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어령의말 #이어령어록 #나를향해쓴글이당신을움직이기를
#이어령이쓴일행시 #유언같은최후의책 #세계사
#쎄인트의책이야기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