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그림자들의 엄마, 오필리아_미하엘 엔데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설왕은 2021. 7. 31. 10:03

저희 집에 몇 년 전부터 굴러다니면서 제 눈에 밟히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제목은 "모모"이고 누가 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내가 재미있다고 해서 '저 책 한번 읽어 봐야지'라고 늘 생각했지만 읽지는 않았던 책입니다. 그런데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을 읽고 나서는 확실하게 결심을 했습니다. "모모"를 꼭 읽어 봐야겠다고 말이죠.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의 작가는 미하엘 엔데입니다. 책 뒷부분에 작가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고 대표작으로 "모모"와 "끝없는 이야기"가 있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을 읽고 나서 "모모"를 꼭 읽어 봐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미하엘 엔데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위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엔데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고요.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이 주는 감동은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작가가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세에서 베어 나온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감동을 주기 위해 일부러 글을 지어 내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은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오필리아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고맙고 또 오필리아 이야기를 전해 준 미하엘 엔데가 세상에 살았다는 사실이 고마웠습니다.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은 동화책입니다. 도서관에서 분류한다면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으로 분류하고 그쪽에 책을 놓을 것이 분명합니다. 저도 동화책으로 알고 빌렸는데 사실 펼쳐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글자가 너무 많아서요. 과연 아이들이 이런 책을 읽을까 싶을 정도로 글자가 많았습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이 매 쪽마다 펼쳐져서 확실히 동화책인 것 같기는 한데 내용은 즐겁고 명랑한 내용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읽고 좋아할 만한 내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에게는 확실히 여러 가지 느낌과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입니다.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읽기에 더 적합한 책으로 보입니다. 책이 꽤 커서 어른이 이런 책을 사람들 보는 데서 읽으면 좀 부끄러울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내용이 참 좋았습니다. 어린 왕자와 같은 소설인데요. 책 크기를 줄여서 한 손에 들 수 있는 책으로 만들면 어른들도 부끄러움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크기가 줄어든다면 그림도 줄어들 텐데, 그 부분은 좀 아쉬울 것 같습니다. 

 

제가 감동을 받은 부분은 오필리아가 그림자를 받아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오필리아는 사람이 없는 극장에서 주인 없는 그림자를 만납니다. 

 

"이 세상에는 남아도는 그림자가 꽤 많이 있어요. 아무한테도 속해 있지 않고, 아무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그림자들이지요. 나도 그런 그림자들 가운데 하나고요. 내 이름은 '그림자 장난꾼'이에요.
"그렇구나, 하지만 혼자면 슬프지 않니?"
"슬프고말고요."
그림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그럼 나한테 오지 않으련? 나도 아무도 없이 혼자란다."

 

 

오필리아는 연극배우가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루기에는 오필리아는 목소리가 너무 작았습니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실망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이 사랑하는 연극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죠. 오필리아가 사는 도시에는 예쁜 극장이 있었는데 그 무대 앞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작은 상자였는데 오필리아는 그 안에 들어가서 배우들이 대사를 까먹었을 때 대사를 일러주는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목소리가 작았기 때문에 오필리아에게는 딱 적합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오필리아도 그림자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다른 볼거리가 많이 생겨서 극장이 사라지게 되자 오필리아도 직장을 잃습니다. 그 와중에 주인 없는 그림자를 발견하게 되었고 주인 없는 그림자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제 할머니가 된 오필리아는 직장을 잃고 별 쓸모도 없을 것 같지만 주인 없이 외롭게 떠돌아다닌다는 이유로 그림자를 받아들입니다. 주인 없는 그림자들이 하나 둘 오필리아에게도 오게 되고 그는 그들을 다 받아줍니다. 그림자들의 엄마가 된 것이죠. 

 

그리고 그림자가 여러 개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오필리아는 늘 조심을 해야 했습니다. 그림자를 넣고 다니기 위해서 항상 손가방을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불편함이 생긴 것이죠. 오필리아는 굳이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림자들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도 없었고요.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일이 뭐가 그렇게 대수로운 일인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랬다면 주인 없는 그림자들이 홀로 떠도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책에서뿐만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이득이 될 것 같지 않은 그림자 같은 존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림자들을 받아들인 오필리아의 다정한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나중에는 그림자들을 데리고 그림자 극장을 열기도 하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입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오필리아는 죽습니다. 동화 같지 않은 이유가 이런 것이죠. 주인공이 죽습니다. 죽는 장면도 동화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끝나지는 않고요. 그다음에 또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또 동화 같기도 하고요.

 

간단히 정리하면 그림자가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이야기. 저는 작가의 온정을 느꼈습니다. 오필리아는 그림자로 살았기 때문에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림자로 살 수 있었던 것일까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심심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모"를 꼭 읽고 싶어졌습니다. 미하엘 엔데, 좋은 작가입니다. 반갑고 고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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