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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 1절 - 가인의 이름은 “여호와를 얻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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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 1절 - 가인의 이름은 “여호와를 얻었다"?

frog prince 2024. 4. 16. 10:00

창세기 4장 1절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창세기 4장 1절: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 설교자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이 구절의 “성경번역이 조금 잘못되었다”.
  •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의 “말미암아”라는 부분이 잘못 번역이 되었다. 
  • 같은 단어가 성경 다른 곳에서 사용될 때에는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비교를 해봐야 한다.
  • 창세기 37장 23절을 보면 “…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라고 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말미암아” 또는 “덕분에”로 번역이 되지 않고 “곧”으로 번역이 되었다.
  • 성경의 다른 곳에도 “곧”으로 번역이 되어 있다.
  • 따라서, 창세기 4:1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보다는, “우리가 아들을 낳았는데, 남자를 얻었는데, 득남하였는데, 이 아들은 곧 여호와이다”로 번역을 해야 한다.
  • 그렇기에, 가인의 이름은 “내가 여호와를 얻었다”라는 뜻이며,
  • 가인이 하나님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가인을 (가인의 제사를) 받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 황당한 해석이다. 항상 성경의 번역이 틀렸다고 하는 목사들은 자신들의 번역이 얼마나 불온전한 지식에 근거한것인지 모르며, 자신들의 단어풀이가 이단들이 하는 것과 그렇게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이단이라는 말이 아니라, 깊이 있는 해석이랍시고 하는 것이, 결론적으로 이단들이 하는 엉터리 단어풀이와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번역 성경이 완벽한 번역이라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들의 짧은 지식에 근거한 엉터리 원어풀이에 의한 해석들이 성도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악영향을 끼치는지 모르는 것 같다.
 
이제는, 왜 이러한 해석이 문제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이 설교자가 말하는 “말미암아”라는 단어는 ‘엣트’(אֶת)인데, 이 설교자는 이것을 직접 목적어를 가리키는 소사(particle)로 오해를 한것 같다. 만약에 창4:1에서 사용된 ‘엣트’가 소사라면, “내가 남자를 얻었는데 [낳았는데] - 곧 여호와”라는 번역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호와를 얻었다”라는 번역은 불가능한 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소사는 동사를 따르며 직접 목적어를 가르키는데 (동사+엣트+직접목적어), 히브리어 문법구조상 동사를 따르는 두개의 직접 목적어가 동격으로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동사+직접목적어+엣트+직접목적어). 히브리어를 보면, קָנִ֥יתִי אִ֖ישׁ אֶת־יְהוָֽה 인데, 동사 קָנִ֥יתִי(내가 얻었다) + 직접목적어 אִ֖ישׁ(남자) + 소사 אֶת + 직접목적어 יְהוָֽה(여호와) 이다. 실제로, 로고스 성경 소프트웨어로 그러한 구조가 히브리어 성경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를 검색해 봤는데, 그러한 구조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눈이 나빠 놓혔을 가능성은 있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문법적으로 불가능한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이부분에 한해서는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열어 놓겠다.)
 
둘째, 창4:1에서 사용된 ‘엣트’는 소사(particle)가 아니라, “함께”, “때문에” 혹은 "인하여”를 뜻하는 전치사(preposition)이다. 그렇기에 개역개정은 물론 학자들이 인정하는 모든 역본들은 제대로 번역을 한것이다. 참고로, 소사인 '엣트'와 전치사인 '엣트'는 동음이의(homophone)이며, 제대로 된 어휘사전을 들여다 봤다면, 이것을 금방 파악하였을것이고, 이러한 오해를 피했을 것이다.
 
셋째, 칠십인(LXX) 역을 보면 καὶ εἶπεν Ἐκτησάμην ἄνθρωπον διὰ τοῦ θεοῦ 라고 되어 있는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를 뜻하는 διὰ τοῦ θεοῦ 라고 되어있다. 결국,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가인을 낳았다는 것이며, 개역개정이 옳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칠십인 역과 히브리어 성경의 차이점은, 히브리어로는 “여호와”로 되어 있는 것을 칠십인역은 “하나님”으로 번역을 했다는 데에 있다.
 
넷째, ‘엣트’가 “함께”를 뜻하는 전치사가 사용된 곳을  찾아 본다면, 창세기 6장 19절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אֶת־הָֽאֱלֹהִ֖ים הִֽתְהַלֶּךְ־נֹֽחַ (노아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했다.)
 
다섯째, 결론적으로, 하와 혹은 이브가 낳은 아들은 개역성경에 번역이 된데로 “여호와로 말미암은”것이며, 개역성경의 번역이 옳은 번역이다.
 
여섯째, 깊이 있고 색다른 설교를 하겠다고 어설픈 원어 실력으로 성경의 번역이 틀렸다고 하면, 이런 부끄러운 단어풀이와 이에 따른 해석을 하게 된다. 물론, 왜 아벨의 제사만 하나님이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왜 받지 않았는지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연구를 하다가 이런 결론에 도달한것은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성경은 성경으로 푼다는 개혁주의의 해석 원칙은 저버리고 (히브리서 11장 4절), 색다르고 소위 깊이 있는 해석을 위해 이런 해석을 하면, 그 결과는 항상 황당한 단어풀이와 그것을 바탕으로한 황당한 해석으로 이어진다. 깊이 있는 해석은 단어 풀이가 아니라, 그 본문에 담겨있는 신학적 관찰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 신학적 관찰을 할 실력을 키우지는 않고 황당한 단어풀이로 성경의 번역이 틀렸다고 하는 인간들을 보면 뚜껑이 열린다. 왜냐하면, 나는 물론, 모든 성도들은 말씀에 충실한, 제대로 된 설교를 들을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단에게서 들을 수 있는 내용과 성서해석의 방식을 왜 정통 신학을 가르친다는 교회에서 들어야 하는 가?!
 
일곱째,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경번역에 틀린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좋은 번역 성경에 한해서는, 그 틀렸다는 것은 정확성에 대한 차이 정도이지 이런식으로 틀린것이 아니다. 다만, 성경이 틀렸다거나 성경의 번역이 틀렸다고 하려면, 그렇게 할 실력을 먼저 키운 후에 그렇게 해야 된다는 말이며, 학자들이 그 새로운 번역과 해석을 인정해 주어야하며, 그러한 번역과 해석이 성서 신학적으로 가능한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강해설교는 단어풀이가 아니다! 무조건 새로운 해석이 깊이 있는 강해설교가 아니다! 강해설교는 본문의 내용을 문맥적으로 충실히 파헤쳐나가는 것이며, 그 본문에 담겨있는 신학과 교리를 풀어나가는 행위이다. 새로운 해석으로 성도들에게 인정 받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제발 황당한 단어풀이 좀 그만들 해라! 그리고 주석 좀 읽고 설교 준비해라! 주석에 없는 단어 풀이와 해석은 하지 말아라! 웬만한 목사들보다 더 생각하고, 더 많이 연구하고, 더 똑똑한 사람들이 실력 있는 주석을 쓴다. 주석에 자신이 발견한 "깊은" 내용의 해석이 없으면, 그 단어풀이와 그것에 따른 해석은 엉터리일 확률이 높다. 또한, 마틴 로이드-존스의 강해 설교 좀 읽고 강해설교가 무엇인지를 배워라! 물론, 로이드-존스의 강해설교가 전부가 아니고, 그 방식만이 강해설교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강해설교의 핵심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읽다 보면, 내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된다.
 
이런식의 한두번의 실수는 이해를 해주어야 하지만, 이런 실수가 자주 되풀이 된다면 뒤통수 좀 맞아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