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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토텔로스가 사명이라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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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토텔로스가 사명이라고?

frog prince 2022. 10. 1. 13:34

어느 집회에서 설교 내용 중 다음과 살짝 다르지만 같은 내용의 말은 들었는데, 그곳에 참석한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 그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사명은 ‘아우토텔로스 (autotelos)’이며, 희랍어 ‘아우토’는 자신 (self)을 의미하고 ‘텔로스’는 목적(goal)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아우토텔로스’는 목적 그 자체를 의미한다.
  • 사명은 자기 ‘목적성’을 갖고 있고 그 자체가 목적이다. 따라서 다른 보상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 자체가 보상이며 즐거움이다.

이러한 해석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아우토텔로스’(αὐτοτελός) 라는 헬라어 단어는 없다. 아니,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부사 (adverb)인 αύτοτελῶς 의 철자를 잘못 쓴 것이다 - ‘오메가’(ω) 대신 ‘오미크론’(ο)으로. 다만, ’아우토텔리스’ (αυτοτελής)라는 헬라어 분사(adjective)가 있는데, -ης로 끝나는 분사는 남성형(masculine)과 여성형(feminine)이 같다. ‘아우토텔레스’(αυτοτελές)는 같은 분사로서 중성(neuter)이다. 부사인 ‘아우토텔로스’(αύτοτελῶς)는 분사인 ‘아우토텔리스’와 마찬가지로 ‘아우토’(αὐτο)와 텔로스’(τελός)의 합성어이다.
  2. ‘아우토텔레스’ 혹은 ‘아우토텔리스’는 70 인역이나 헬라어 신약성경에서 사용되고 있지 않다. ‘아우토텔로스’(αύτοτελῶς) 역시 헬라어 신-구약에서 발견되고 있지 않다.
  3. ‘아우토텔리스’는 리델-스콧 렉시콘에 의하면 “그 자체로 끝나는” (ending in itself), “그 자체로 완전한” (complete in itself), “자립하다” (supporting oneself) 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어떤 외부로 부터의 힘이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상태를 듯한다.
  4. 그러면, ‘아우토텔레스’(αὐτοτελός)는 도데체 어디에서 가져온 것일까? 사명을 뜻한다는 ‘아우토텔로스’(autotelos)에 관하여서는, 설교자가 헬라어 ‘아우토텔레스’를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영어 단어인 ‘아우토텔릭’(autotelic)에서 영감을 받은 해석으로 추정된다. 영어 단어인 ‘아우토텔릭’의 어원인 헬라어 두 단어(아우토와 텔로스)를 찾아 합성 시킨것이 ‘아우토텔릭’인것으로 추측이 된다. 다시 설명하자면, 이 설교자의 어원적 풀이는 헬라어 단어의 어원적 풀이가 아니라 영어 단어인 ‘아우토텔릭’(autotelic)이라는 영어 단어의 의미를 추적해서 이러한 설명을 한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헬라어 단어의 어원 추적이라고 혼동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5. 영어 단어인 ‘아우토텔릭’(autotelic)은 그 설교자의 설명과는 달리 사명을 뜻하고 있지 않다. 그 단어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영한 사전에는 ‘자기 목적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어로는 self-contained 라고 도 할 수 있는데, “자급 자족”, “자기 충족인”, “독립의” 라고 영한 사전은 설명하고 있다. 다시 언급하지만, 영어 단어인 ‘아우토텔릭’은 “사명”을 뜻하지 않는다.
  6. 영어 단어 ‘아우토텔릭’의 어원인 헬라어 단어 ‘아우토텔리스’(αυτοτελής) 또한 사명을 뜻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그 단어는 역시 그 자체가 보상이며 즐거움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다. 혹시, 사명의 뜻이 그런것이 아니며 다만 사명에 의해 도달하게 되는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설명이 성서/신학적으로 성립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개인의 혹은 집단의 개똥 철학일 뿐이다.
  7. ‘사명’이라는 단어는 영어나, 한국어나, 독어나, 불어나, 라틴어나, 히브리어나, 헬라어에서 (그 외에도) 형용사가 아닌 명사이다. 그런데, 영어 ‘아우토텔릭’이나 헬라어 ‘아우토틸리스’는 형용사(adjective)이다. 명사(noun)와 형용사(adjective)를 구분 못하면서 설명은 명사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인데, 바로 그 출발점에서 부터 이러한 해석의 문제가 드러난다.
  8. 신학적으로, 스스로에게 담겨있는 사명 혹은 목적이라는 과연 바른 이해인가? 왜냐하면, 기독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과 목적이라는 것은 스스로에게 있는것이 아니며 또한 자기 만족에 있는 것은 더욱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있는 목적과 그것으로 부터 파생하는 자아 만족은 이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적인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담겨 있고 그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고 성령님의 함께 하심을 통해서만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명과 목적을 인해 주어지는 만족감 역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 담겨져 있고, 오직 그를 통해서만 온전한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9. 이처럼 영어 단어의 어원을 추적하고, 어원인 두 헬라어 단어를 주해하고, 그것에 이질적인/외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기독교 해석학에서 피해야 된다고 가르치는것인데, 이를 ‘아이서지시스’(eisegesis), 곧 자신의 사상을 가미한 해석이라고 하는 것이다. 혹시 헬라어를 사용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한다는 것인가? 헬라어 = 하나님의 말씀?
  10. 단어를 통해 받은 영감(하나님에게서 온 영감이 아니라 스스로가 감성적으로 부여하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착각한)을 설교하는 것이 - 그것도 성경에서 사용되지 않는 단어를,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주해한 것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스스로가 감동되고 성도들이 은혜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것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그리고 그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단어 자체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그 선택된 단어들이 모여서 만든 문구, 문장, 문단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이다. 목사의 감동적인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하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지 못하는 설교자와 그 엉터리 말씀에 은혜받는 성도들이 바글 바글 거리는 현시대의 교회…정말 갑갑하다.
  11. 마지막으로, 성경과 고전문학, 그리고 현대 헬라어에서 “사명”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아포스톨리스’ (αποστολής)이며, 목적을 뜻하는 단어는 ‘스코포스’ (σκοπός) 이다. 둘다 명사(nou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