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이란?

조회 수 494 추천 수 1 2022.09.05 09:48:13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이란? 

 

[질문]

 

갈라디아서 5:16-26절 말씀에 대해 최근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본문의 성령의 열매는 결과이며 성령을 따라 행하는 구체적인 행동은 19-21, 26절 설명대로 성도들 스스로 나열된 죄의 항목들을 행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고 했습니다. 성경 전체로도 이 주제에 대해 명확히 가르쳐 주는 말씀이 따로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성령을 따라(성령으로) 행하라”고 하면서 어떻게 행해야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았고 유일한 방안은 죄 된 것들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로선 갈라디아서 말씀이 항상 기도하며 말씀을 통해 옳다고 여겨지는 것을 스스로 열심히 행하라는 뜻이라고 결론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자라면 적극적으로 선행과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성령으로 행하는 삶이라는 정도는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의 뜻이 그것으로 그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이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갈5:16-26) 

 

이 주제는 자세히 설명하자면 성령론과 성화론을 다 다뤄야 하므로 책으로 저작해도 한 권으로는 모자랄 정도로 광범위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 상기 성경본문을 해석한 바탕에서 질문하신 의도에 맞춰서 가능한 간단히 알기 쉽게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령의 역할과 역사하는 방식

 

상기 본문의 뜻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성령이 하시는 역할과 어떻게 성도에게 역사하는지부터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첫째 역할은 하나님이 택한 자의 영혼에 간섭하여 거듭나게 하여서 죄에서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밤중에 구원의 길을 물으러 온 유대 공회원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고 대답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곳까지 통달하시는데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신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가르쳤습니다.(고전2:10-12)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고전12:3) 

 

하나님을 찾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그분과 원수 상태에 있던 타락한 죄인의 영혼에 역사하여 사탄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것은 오직 성령만이 행할 수 있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절대적 선택에 따라 거부할 수 없는 구원의 은혜가 임하면 죄에 찌든 인간으로선 그 거듭남의 역사에 어떤 역할도 맡을 수 없고 참여도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전적으로 주관하여서 선물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성령의 중생 과정을 “바람이 임의로 불 때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습니다.(요3:8) 한 죄인으로선 자기 내면에 언제 어떻게 성령이 역사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리를 듣고 바람이 불었다는 사실은 알 듯이 자신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을 스스로 전혀 찾지 않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가 너무 불합리하게 여겨져 배척했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까닭이나 계기가 없이 구원에 관한 성경 진리만 배웠는데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이 너무 좋아지고 그분을 따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기로 결단 실행하게 됩니다. 바람이 불고 지나간 자리를 정리하듯이 신자도 하나님의 거역할 수 없는 은혜를 받게 되면 그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받은 신자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님이 평생토록 신자에게 내주해주십니다.(고3:16, 6:19) 그 후의 신자의 모든 신앙생활을 성령이 주관 인도해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한 죄인을 의롭다고 성령으로 인을 치심 즉, 구원의 세 단계 중에 첫째 칭의와 동시에 구원의 둘째 단계인 성화도 곧바로 시작됩니다. 구원 받을 때는 신자로선 성령의 역사가 끝난 후에 그 사실은 인식하고 반응만 하게 되나, 성화는 신자가 자신의 의지로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여 순종하면서 구원의 셋째 단계인 천국에 올라가는 영화의 날까지 꾸준히 실천해야 합니다.   

 

성령은 그래서 신자의 삶의 모든 영역에 다 간섭하셔서 신자의 일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끔 인도해주십니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열거하면;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하며(행1;8, 고전2:4, 벧전1:12), 하나님과 성경진리를 잘 깨달아서 가르치게 하며(고전2;13, 벧후1;20,21), 각종 은사를 나눠줘서 복음의 사역을 증진하고 성도 간의 사랑과 교회의 덕을 세우게 하며(고전12-14장), 성도를 평안의 줄로 묶어서 아름답게 교제하게 하며(고후13:13, 엡4:3, 빌2:1),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인도 주관하며(엡6:18), 심지어 신자가 고난 혹은 죄에 빠져 있을 때에 성령께서 탄식하며 신자를 대신해서 기도해주십니다.(롬8;26-27)

 

무엇보다 신자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여서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주고(엡3:16, 17), 거룩하게 변화시키며(살후2;13, 벧전1:2), 주님의 계명을 따르게 만듭니다.(딤후1:14,요일3:24) 신자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때에 혹시 지치거나 핍박을 받거든 천국의 부활생명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보증으로 성령으로 인치시고 내주케 해주셨습니다.(고후5:5) 

 

한마디로 신자가 온전히 주님을 따라가려고 하면 모든 영역에서 성령이 주관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신자로 예수님을 닮아가게 거룩하게 변화시키고, 성도와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게 하며, 복음을 담대히 전파하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는 모습으로만 성령은 역사합니다. 신자가 신자로서 이런 충성된 삶을 살고 있지 않으면 성령이 탄식하며 신자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그런데 내주하신 성령님은 영이시라 인간 지정의로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이 완비되어 인간이 꼭 알아서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영적진리가 전부 계시되었고 오순절로 성령이 신자들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임재 내주해 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그래서 직통계시는 거의 없어졌기에 성령이 과연 신자를 어떻게 주관하시고 신자 또한 어떻게 해야 성령으로 행하는 것인지 잘 분별할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상기 본문이 어떻게 말하는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우선 바울이 육체와 성령을 대비하고 있지만 본문 주제가 불신자와 신자를 나누는 칭의가 아닙니다. 칭의를 설명하려면 신자는 성령의 소욕을 가진 자로, 불신자는 육체의 소욕을 가진 자라고 구분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고 또 그 둘이 서로 대적한다고 했으므로(16,17절)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죄의 본성은 남아있기에 육체의 소욕도 함께 소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를 믿은 신자들을 대상으로 성화에 관해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그럼 신자가 가진 육체의 소욕부터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육체의 소욕은 성욕, 물욕, 권력욕 같은 인간의 생리적 본능적 욕구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속에서부터 포악한 범죄를 저지르려는 욕심을 가졌다는 뜻도 아닙니다. 질문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수를 믿은 신자라면 당연히 도덕적 종교적으로 경건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육체(육신)로 번역된 헬라어 ‘사륵스’를 바울은 하나님을 거역대적하며 세속적 정욕을 따르는 인간(또는 그런 본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롬6:19, 8:3,13:14 고후1:17, 5;16 등) 그래서 영어성경에선 body가 아니라 flesh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도덕적 종교적으로 사악한 본성이 아니라 자기를 치장하여서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심지어 하나님보다 높이려는 욕심 내지 본성이 육체의 소욕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하여 범죄 했던 바로 그 욕심입니다. 불신자 시절에 하나님을 거역 대적했던 근본원인이었는데 예수를 믿어도 그 본성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미워했던 마음만 완전히 바뀌고 예수님의 공로로 의롭다고만 칭해주었기에 이전의 본성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바뀐 것은 그 본성이 얼마나 큰 죄이며 잘못인 줄은 확신하게 된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신자가 된 후로는 그 육체의 소욕(도덕적 죄악이 아닌 자기를 높이려는 욕심)을 죽여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을 쫓아 행한다는 의미가 본문에서 반 이상의 해답이 나왔습니다. 본문 말씀 그대로 육체의 소욕을 죽이면 됩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이나 행동으로 짓는 죄를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여전히 자기만 치장하여 자랑하고 싶은 자신의 근본적인 생각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 욕심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교묘하고도 끈질기게 사사건건 신자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자기만 높이려는 그 욕심을 죽이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과 마찰 충돌 다툼 분노 저주가 따르게 됩니다. 

 

신자의 속에서 서로 대적하고 있으니  한 쪽이 죽으면 다른 쪽은 살게 됩니다. 육체의 소욕을 죽이면 자연히 성령의 소욕대로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따져서 성령대로 행하는 것은 성령의 소욕을 따르거나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는 두 가지 방법뿐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정확히 분별할 수 없으므로 일차로 육체의 소욕을 죽이는 것이 쉽고도 분명한 방안이 되는 것입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단순히 도덕적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컨대 19-21절에 있는 행동들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그것들은 육체의 소욕을 죽이지 못한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결과이므로 그것이 생기게 되는 원인부터 해소해야 합니다. 자신을 치장하려는 너무나 끈질긴 옛 자아를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 무슨 일을 하든 죽여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고서 그분이 가시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율법에도 육체의 소욕이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바울의 설명 중에 두 구절이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먼저 18절에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문맥상 논리의 흐름으로 따지면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육체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해야 맞는데 육체 대신에 율법 아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악행을 열거한 후에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 악행 중에 다른 것은 몰라도 분을 내거나 당을 짓거나 술에 취하면 구원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까? 그리고 율법도 그런 악행들은 금지하고 있는데 왜 율법을 성령과 대척되는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까?

 

이 문제는 갈라디아서 전체 주제와 연결해 살펴봐야합니다. 그 주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진심으로 믿어서 구원을 얻는 것은 부족하고 할례 같은 추가적인 율법준행 행위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서두에 그리스도 외에 다른 복음은 없으며 누구든지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1:6-10) 본문에서 성령과 육체의 소욕을 비교해 가르치기 전에도 율법과 믿음(3:1-14), 율법과 약속(3:15-4:7)의 관계를 설명한 후에 율법주의에 대해 경계하라고(4:8-31)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5:1-15까지 할례는 구원과 전혀 무관하므로 “율법의 멍에를 다시 짖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결론 지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본문에서 육체의 소욕 중에는 율법으로 구원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의 잘못도 포함된다는 의미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의 죄악을 짓는다는 것입니다.(20절) 그러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고 정죄한 것입니다.(21절) 

 

바꿔 말해 바울은 "성령의 소욕"을 복음 안에서 자유를 얻은 참 신자들더러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기 위한 방안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가장 먼저 자기를 높이려는 육체의 소욕부터 죽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열매는 그런 사랑이 교회 안의 성도 간에 실현되는 모습 즉,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을 필두로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행한다는 두 번째 의미는 복음 안에서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본문이 율법과 연결해서 말하려는 내용을 다시 간략하게 정리해봅시다. 우선 자신을 높이려는 끈질긴 죄의 본성부터 죽여야 합니다. 자기를 높이려는 일 중에는 유대주의자들처럼 종교적 영적인 차원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 정확히 가르치고 실현되는 모습과 방향으로 매사를 결정 시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그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육체와 함께 (아무리 경건하고 선하다 해도 개인적이고 본인부터 위하는)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고 강조하면서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고 다시 다짐한 것입니다. **(  )는 저자의 첨언.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라. 

 

그러나 솔직히 말해 저부터도 자신을 높이려는 끈질기고 교묘한 본성을 죽이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성령님이 직통계시는 하지 않더라도 좀 더 능동적 주도적 직접적으로 이끌어주셨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대신 기도는 해주어도 신자를 강권적으로 끌고 가는 법은 전혀 없습니다. 인격적인 분이신지라 신자가 간절히 당신의 인도를 구하고 기꺼이 순종할 때만 인도해주십니다. 그분은 영으로서 영적차원에서 주도하시니까 인간신자의 지정의로는 제대로 감지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럼 신자 쪽에서 성령에 따라 행하기 위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취할 행동은 전혀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매사를 시행하기 전과 행하는 과정 중에 또 일이 끝난 후에도 성령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너무나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성령님이 인격적 존재로 범사에 분명히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확신부터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그분이 나와 동행해주고 있고 항상 감찰하고 계신다고 실감해야 합니다. 

 

신자가 미처 몰라도 성령은 신자 주변의 여건, 사건, 사람들을 신자의 믿음과 준비된 자세에 맞추어서 선하게 조성하고 변화시키고 주동하여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이런 확신을 갖고서 의도적으로 성령님과 대화한다는 느낌으로 성령의 인도에 민감해져야 합니다. 처음에는 마치 구름 잡는 것 같아도 자꾸만 이런 인식을 갖고 매사를 세밀히 분별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성령의 인도임을 미리 깨달아서 그대로 순종하는 단계에까지 진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범사를 행하기 전에 성령의 인도를 구하는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현재 하고자 하는 일이 신자 자신이 그리스도를 닮아 자라가는 측면이 있는지, 이웃에 주님의 사랑을 실현하며 복음이 어떤 방식으로든 전해지는지,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일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잘 숙고해봐야 합니다. 매일 행하는 일상적인 삶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어도 최소한 뭔가 새롭게 계획하여 시행하는 일이 있다면 이렇게 잘 따져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해답을 얻을 만큼 우리는 영적으로 뛰어나지 못합니다. 성령님이 그렇게 되도록 이끌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 마음에 평안이나 확신이 넘치는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마저 없다면 특별히 악한 요소가 없고 마음에 소원이 되면 일단 시행하면 됩니다. 시행하는 중에 소원했던 성과가 이뤄지고 기쁨이 넘치는지 정말로 예수 믿는 신자로서 행할 바를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드는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일을 행하는 중에나 다 끝내고 난 뒤의 열매가 상기 본문에서 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비록 내 자유의지대로 여기까지 이르렀지만 그 배후에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 미리 예비하신 일을 하나님 그분이 주도해주셨다는 확신이 들어야 합니다. 그럼 신자가 처음 계획하는 데서부터 계속 기도했고 그 일을 행한 모든 과정이 성령에 따라 행한 것입니다. 직통계시를 받아야만 성령으로 행했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각성이나 감동이 전혀 없어도 실제로 모든 일을 행함에서 있어서 성경이 가르친 계명과 진리대로 행했다면 성령에 따라 행한 것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단순히 죄를 짓지 않고 선행을 한다고 해서 성령에 따라 행했다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선 바리새인의 의가 우리보다 더 나을 것이나 예수님이 유일하게 그들을 저주했지 않습니까? 사탄도 광명한 천사로 위장할 수 있습니다. 신자의 선행 구제에도 자기를 높이려는 육체의 소욕이 작동될 수 있고 그래서 교회 안에서 시기 분쟁 분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바울 당시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 설쳐댔던 유대주의자들도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믿고 있는 바가 진리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그들의 열성이 너무 강해서 할례 같은 율법을 가르치고 반드시 시행시키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숨겨진 의도가 자신들을 높이려는 것이므로 시기 분쟁 분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분쟁의 당사자들은 자기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하면서 논쟁하다가 결국 자기들 소욕(자신들의 의로움과 감정)을 죽이지 못해 교회가 쪼개지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두고 육체의 소욕이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의로움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지 않나 점검하면서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면 성령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럼 성령이 신자 개인과 그들의 모임에 반드시 본문의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는 금지할 법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처럼 그렇게 해야만 구원 받는다는 강제규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을 믿는 자유 안에서 매사를 기도하면서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에 맡기라는 것입니다.  

 

(9/5/2022)


master

2022.09.05 09:50:19
*.115.238.222

은아아빠님 바쁜 일이 겹친데다 순서를 어기고 다른 질문부터 답변드리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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