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4:13-22) 룻기의 주인공은 다윗이었다.

룻기 강해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4:13-22)

 

룻기의 이상한 결론

 

어떤 책이든 맨 마지막 구절에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마련입니다. 룻기는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22절)는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그 동안 열심히 설명한 나오미, 룻, 보아스 대신에 생뚱맞게 다윗이 등장합니다. 앞부분에 세 사람에 대한 언급을 했지만 그 내용은 사실상 다윗의 선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책의 제목을 다윗의 출생기로 바꾸던지 지금처럼 룻기로 하려면 17절로 끝내야 합당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다윗이 왕이었을 때의 이스라엘의 영광을 그리워하고 그와 같은 왕이 다시 출현하기를 바란다고 해도 조금 이상한 결론입니다. 마치 곰이 재주를 넘고 주인이 돈을 번다는 속담처럼 다윗이 갑자기 나타나 룻기의 주인공 행세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족보가 다윗까지만 언급하고 솔로몬은 누락했기에 대체로 룻기의 저자를 사무엘 선지자로 봅니다만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성읍의 장로들이 나오미의 기업을 무르고 룻과의 계대결혼을 승인하면서 보아스에게 후손이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기를 원한다고 축복해주었습니다.(12절) 저자가 누가 되었든 그 후손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18-22절이 룻기가 저작된 한참 후에 추가된 내용은 아닙니다.

 

이처럼 조금 불합리해 보여서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이 성경 곳곳에 나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성경의 불완전함과 모순과 오류 등을 드러내는 요소들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내용을 앞뒤로 연결해서 자세히 살피면 하나님이 계시한 진리임이 더 확실하게 입증됩니다. 인간 저자들이 저작했지만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룻기의 저자에게 성령의 영감이 없었다면 말씀드린 대로 다윗에 관한 언급은 없이 17절에서 룻이 아들을 낳았다고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래야 룻의 나오미에 대한 효성과 보아스와 룻의 나이를 뛰어넘는 사랑이 분명하게 드러나므로 책 제목에 적합한 자연스런 결론이 됩니다. 그러지 않고 다윗의 출생으로 끝났다는 것은 성경의 실제 저자인 하나님이 룻기를 통해 그 점을 가장 강조하고 싶었다는 뜻입니다.

 

룻기는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룻1:1)라고 시작합니다. 모든 책의 서두에는 주제 내지 결론으로 도출해나갈 발단을 제시합니다.

 

이 서론을 결론과 연결해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 행하던 타락한 시대에도 하나님은 세 주인공을 통해 다윗을 출생시키려는 역사를 진행시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큰 흉년으로 한 집안이 외국으로 피신하는 고난을 계기로 삼아서 말입니다.

 

엘리멜렉은 인간적 현실적인 판단만으로 이스라엘의 대적인 모압으로 피신했고 두 아들을 이방 여인들과 결혼까지 시켰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엘리멜렉과 두 아들은 다 죽게 했고 나오미와 두 며느리 중에 룻만 빈손으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영적으로도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할 집안 남자들이 어리석은 지혜와 나태해진 믿음으로 큰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럼에도 여호와는 이방의 한 여인 룻을 따로 예비해 놓으셨다가 그녀의 계대결혼을 통해 다윗이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룻기는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룻의 인생여정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다윗,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 이야기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두 가지 주제

 

만약 본문이 17절로 끝난다면 룻기가 강조하려는 주제가 어떻게 됩니까? 모든 사람들이 제 멋대로 쾌락과 죄악에 젖어있을 때 의롭고 경건한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만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의 순전한 믿음의 행위를 기쁘게 받으신 하나님이 다윗의 선조로 세워주었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결과만 따져선 18-22절의 내용과 동일하고 또 그런 주제도 충분히 은혜롭지만 크게 두 가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 신자의 선행이 하나님의 역사보다 더 돋보이고 신자라면 반드시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 헌신해야 한다는 데에 무게 추가 더 기웁니다. 기근 때문에 해외 이민 갔다가 빈털터리가 되었는데도 현실적 고난과 수치를 무릅쓰고 다시 역 이민한 두 가난한 과부가 간절히 기도하며 율법대로 순종했더니 하나님이 큰 영광의 자리로 이끄셨다는 뜻으로 그칩니다.

 

둘째는 같은 맥락으로 인류의 전 역사를 당신의 거룩한 뜻에 따라 주관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아주 오래 전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역사했다는 사실이 강조되지 못합니다. 룻기가 사사시대에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들었다고 시작한 까닭은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밝히려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이주하려고 결심하게 된 것이나 나중에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가 행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이미 마련해 놓은 그분의 각본에 따라 필연적으로 그렇게 이뤄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헌신과 순종은 아무리 사소해도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인간을 향한 긍휼하심에 바탕을 둔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완벽한 계획이 당신의 전지하신 권능에 따라서 베풀어진 것입니다. 인간의 헌신과 순종은 이미 받아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분의 은혜를 삶에서 체험한 자는 당연히 또 자연히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 세 사람 다 그들의 만남부터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이었다고 절감했으므로 당연히 율법대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설교나 성경공부에서 인간의 순종과 헌신만 중점적 내지 우선적으로 강조되면 아무래도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완벽한 권능에 대한 이해가 미흡해집니다. 성경의 저자가 성령 하나님이라면 성경을 해석할 때도 마땅히 인간에게 계시하고 싶은 하나님만의 영적진리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더 깊이 알아갈수록 그분에 대한 헌신과 순종도 더 깊어지게 됩니다.

 

룻기가 뜬금없이 다윗의 족보로 끝나는 이유도 성경 해석자들로 하여금 룻기 전체의 배경에 면면히 이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에 반드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어떤 측면에서 그러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레스의 계보가 갖는 의미?

 

베레스는 야곱의 손자였으므로 기원전 약 1885년에, 다윗은 기원전 약 1040년에 태어난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이 족보는 시대적으로 약 900년에 걸친 것인데도 열 세대만 나열했습니다. 그 기간 안에 열 세대뿐이라면 한 세대가 단순 산술적으로 90년이 되므로 인간의 수명을 감안하면 말이 안 됩니다. 성경의 다른 족보들도 그렀듯이 저자가 특별한 의미를 강조하려고 중간에 여러 대수를 생략한 것입니다. 알다시피 10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듯이 그 모든 세대에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가 완전하고 충만했다는 것이 일차적인 의미입니다.

 

베레스에서 나손까지 전반의 5대는 애굽 생활 430년 동안 살았던 선조들이고, 후반의 살롬에서 다윗까지 5대는 출애굽으로부터 다윗이 사망한 기간 476년 사이에 생존했던 인물들입니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각 다섯 명씩 두 시대로 나눴습니다. 다윗 왕국이 굳건히 세워지기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는 출애굽을 기준으로 둘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키고 마지막 홍해를 가르고 마른 땅을 건너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나라를 세웠음을 결코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여호와의 크신 능력만 기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큰 기적의 감격으로 건너게 한 이후에 곧바로 먹고 마실 것 하나 없는 광야로 이끌었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그 나라는 무너지고 약속의 땅에서 거꾸로 출애굽 당해 광야로 다시 쫓겨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족보에서 출애굽이 강조된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의 선조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창성케 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는 언약을 신실하게 지켰다는 뜻입니다. 룻기도 바로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두 믿음의 여인이 잘 지켜나갔다는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부터 당신의 기준에 합격할만한 조건이라고는 단 하나 없었음에도 당신의 자녀로 선택했습니다. 그 언약의 수혜자인 이스라엘도 하나님이 다른 민족들과 구별해서 세웠기에 아무런 공로 없는데도 인류 역사상 최고의 기적을 통해 애굽의 노예 살이에서 구출 해주었습니다. 앞으로 인도해 들일 가나안의 열방 앞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제사장 나라로 서라는 언약을 맺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시내 산에서 짐승 제물을 잡아서 그 피를 뿌리며 그 언약대로 기꺼이 순종 헌신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따라서 이 족보의 전반은 아브라함 언약에 드러난 하나님의 인애를, 후반은 시내산 모세 언약에 드러난 하나님의 인애를 상징합니다. 또 그 두 언약과 인애가 합쳐진 결정체가 다윗 왕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다윗과도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는 언약을 맺었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왕국이라도 인간의 왕위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룻기의 이 족보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에게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 백성이 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저작된 마태복음도 그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1:1)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거기다 룻기의 이 족보를 1:3-5절에 원문대로 인용했습니다. 진리의 영인 성령이 사도에게 충만하게 영감을 불어넣어서 예수님이 구약은 물론 룻기가 강조하려는 메시아일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성자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준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이스라엘의 족보들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그 민족 고유의 종교사가 아닙니다. 신약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진리에 대해서 계시한 책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이 오실 것에 맞추어 인도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이 오신다는 예언으로 그치지 않고 십자가 복음의 풍성한 내용까지 당시의 상황에 맞게 심지어 이 족보에까지 계시해 놓았던 것입니다.

 

룻이 아들을 낳은 의미

 

그 십자가 복음은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다는 13-17절의 기록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일차 고엘과 보아스의 기업 무를 권리에 대한 양수도 계약은 성읍 장로들의 참관 하에 공정하게 끝났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약속한대로 결혼을 미룰 이유가 없었고 때맞추어 여호와가 아들을 출산케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성중의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14절)라고 축하해주었습니다. 처음 모압에서 돌아왔을 때에 온 성읍이 떠들며 “이 이가 나오미냐”(룻1:19)라고 측은하게 보면서 비아냥조로 맞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중 부정은 강한 긍정이므로 이 일은 여호와가 행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뜻입니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돌아왔을 때 자기를 여호와가 나를 징벌하고 괴롭게 했다는 의미로 ‘마라’로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죽었고 빈털터리가 된 데다 모압의 과부 며느리까지 동반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엘리멜렉의 기업을 되살릴 길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었다 해도 50년째 희년에야 겨우 가능합니다. 희년이 당장 돌아온다 해도 당장 기업을 이어 받을 남편이나 아들 자손도 없습니다.

 

그런데 룻이 이삭을 주우러 나간 첫날부터 우연히 성중 사람들 모두가 존경하는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일 년 몇 개월의 짧은 기간 안에 나오미와 룻의 처지가 아무런 장애 없이 역전되는 것을 이웃들이 직접 지켜보았습니다. 이제 그 결실로 기업을 이을 아들까지 얻었습니다. 나오미의 죽은 남편 엘리멜렉의 기업이 살아났고 그 기업을 물려받을 손자까지 생겼습니다. 이전에 비해 조금 더 나아지는 것은 인간의 노력의 결과이지만 전혀 불가능한 상태에서 정반대로 바뀌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평범한 이웃 아녀자들도 인간이 계획하고 노력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말 그대로 룻이 낳은 아들 오벳은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가 되었습니다. 나오미나 룻이나 남편과 아들을 죽인 재수 없고 저주 받은 여인이라는 낙인을 떼고 당당히 여호와의 언약적 사랑인 인애(헤세드) 안에 다시 속하게 된 것입니다. 보아스를 닮았을 아들 오벳도 틀림없이 이웃여인들의 축복대로 나오미 노년의 신실한 봉양자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며느리 룻에 대한 칭찬도 덧붙였습니다. 모압 여자 과부 며느리가 고향에 남지 않고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따라온 것부터 예사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동안 나오미를 진심으로 성실하게 섬기고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니 모압 여인인데도 성품과 믿음이 대단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룻이 나오미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인지라 너를 사랑하는 자부라고 말했습니다. 룻이 일곱 아들보다 더 귀하다고 한 것도 숫자의 의미대로 온전히 현숙한 며느리라는 것입니다. 나오미에게 일곱 아들이 있었다 쳐도 그녀보다 더 잘 섬기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자 나오미도 너무 기뻐서 그 아들을 품에 안고 양육자가 되겠다고 화답했습니다.(16절) 모압에서 두 아들을 온전한 신앙으로 키우지 못했던 뼈저린 실패가 있었기에 더더욱 믿음으로 잘 양육할 것입니다. 룻이 나오미의 인품과 믿음을 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므로 죽음이 갈라놓기 전까지 끝까지 모실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손자 오벳도 나오미의 양육을 통해 룻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벳이라는 이름의 비밀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웃 여인들은 룻이 아니라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고 말하면서 그 아들의 이름까지 오벳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히브리 어법상 아들이라는 표현에는 종종 손자는 물론 후손까지 포함됩니다.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기업을 이어갈 아들 손자를 얻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오벳은 ‘종’ 혹은 ‘섬김’이라는 뜻입니다. 이웃들이 축복해준 의미대로 그의 어미 룻처럼 할머니를 잘 섬겨서 나오미 노년의 봉양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그 이름을 선뜻 받아들인 까닭이 노후에 손자를 종처럼 부려서 섬김 받겠다는 뜻은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자기 식구들 모두가 여호와의 종으로 그분을 성실하게 섬기겠다고 새삼 다짐하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지금 이런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이 간절히 기도하며 그분의 뜻대로 헌신한 결과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진 오벳이라는 이름의 뜻을 나오미와 룻의 입장에서 살펴본 것입니다. 하나님 그분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놀랄만한 십자가 복음의 은혜가 더 많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우선 부모나 조부가 아니라 이웃 여인들이 지어주었기에 성경에서 선조들의 이름과 연결되어지지 않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거기다 실제로 오벳은 엘리멜렉 집안과 아무 연관이 없었습니다. 오벳은 할아버지 엘리멜렉과 아버지 말론과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후손입니다. 아버지 보아스는 먼 인척이었고 어머니 룻은 이방 모압 출신입니다. 나오미에겐 손자가 되는 필수적이고 첫째 조건인 혈연으로 따져선 완전히 남의 자식입니다.

 

말하자면 오벳은 엘리멜렉 집안에 양자로 받아들여진 셈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아무 소망이 없었던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5) 지금 엘리멜렉의 집안에 양자로 받아들여진 오벳이 예수님의 선조까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는 데는 혈연 같은 인간 사회의 기준은 전혀 따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아브라함의 육신적 후손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구원받는 법은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장벽을 무너뜨린 십자가

 

하나님의 구원의 기준은, 더 정확히 말해서 당신의 사랑을 베푸는 기준은 인간의 생각과 기대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서 사람들 사이를 가르는 모든 장벽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2:12-14)

 

유대사회는 룻에게 온전한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는 여자, 아주 가난한 거지 여자, 이방인이자 이스라엘 대적인 모압 출신 과부, 남편을 죽인 재수 없는 여인, 아들을 낳지 못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여인 등등 온갖 별칭을 붙여서 장벽을 쌓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엘과 계대결혼 제도에 따라 태어난 오벳이 그 장벽들을 다 무너뜨렸습니다. 나오미와 일레멜렉의 피가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나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신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하나님께 양자로 입양되었다고 하면서 그 양자됨의 완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8:23) 우리 몸이 속량될 것을 기다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그분의 양자가 된 신자들도 이 땅에선 온갖 핍박을 받으며 나그네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마지막 날 주님이 재림하여 죽었던 육신도 주님처럼 신령한 모습으로 부활시켜 주심으로 참 안식을 누리를 수 있는 신자들의 양자됨 즉, 구원이 영광스럽게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한 대로 양자됨의 완성의 날까지 제 멋대로 행하는 세상에 휩쓸려 쓰러지지 않도록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서 신자와 항상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바꿔 말해 종과 섬김의 뜻인 오벳이라는 이름이 사실은 예수님의 이름도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룻기의 세 주인공의 삶과 인생을 눈에 안 보이게 예수님의 십자가 긍휼 쪽으로만 주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그들 인생의 종으로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알고 믿기 전에 영적으로 따지면 세상이 룻에게 붙인 모든 별칭들보다 더 추악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구원 밖에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의 의미가 얼마나 귀한지 성령이 깨우쳐주셔서 비로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지 않습니까? 도무지 그럴 자격 조건 신분이 안 되는데도 쉽게 말해 예쁜 구석이라고는 단 하나 없고 당장 심판 받아 마땅한데도 그분께서 나를 자녀로 입양해 주셨습니다. 그 후로 나오미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품에 안고 우리의 양육자가 되어주시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일에 스스로의 믿음으로 열심히 충성 순종 헌신하는 종 같지만 그 전에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는 종으로 이 땅에 오셨고 지금도 그 일을 천상의 보좌에서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모든 세대의 그분의 자녀에게 마지막 부활로 양자됨이 완성될 때까지 예수님의 사랑은 단 한시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룻기의 세 주인공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 결론인 베레스의 족보가 말하는 바입니다.

 

베레스의 후손이 되어라.

 

요한 사도는 이 땅에선 양자됨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신자와 그 공동체를 거룩하게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사랑뿐이라고 선언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10,12,20)

 

성경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일차 고엘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여호와를 함께 섬기는 공동체의 일원이자 그분의 헤세드를 함께 누리는 형제자매라는 인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섬기라고 자기 곁에 붙여준 대상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붙여주었다면 그에게도 예수님이 먼저 찾아온 셈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그것도 잠깐의 자기 유익만을 위해서 상대하려다보니 가장 가까운 형제와도 담을 쌓았습니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과 담을 쌓고 그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졸지에 올 데 갈 데 없는 신세가 된 과부 룻에게도 나오미를 통해서 장벽을 무너뜨리는 주님이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룻은 겸손하게 그 은혜를 받아들이며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셨습니다. 그 후 시어머니를 모압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참 사랑으로 섬기게 되었고 결국은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룻이라는 이름의 뜻은 여자 친구입니다. 룻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분의 친구가 되었고 또 그와 동일한 사랑으로 주변을 섬겨서 베들레헴 모든 이들에게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헌신과 순종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배경에 역사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먼저 받아 누렸고 그에 합당한 반응을 한 것입니다.

 

여호와 안에서 새로 태어난 오벳의 가정은 이웃들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풍성한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의 가정은 누가 봐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라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는 참된 믿음의 가정이라고 이웃들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자가 속한 모든 공동체마다 그 신자 한 명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 소속원들 모두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기업을 무르는 고엘, 희년, 계대 결혼 제도들이 단순히 가난한 친척을 돌봐주라는 정도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라는 정도를 넘어서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모두가 똑같은 죄인이므로 절대로 인간들끼리는 서로를 차별하는 장벽을 쌓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을 구제해주는 윤리적 선행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주님의 십자가 사랑만이 그 공동체를 움직이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 사랑으로 서로를 위하면 인위적인 차별은 자연히 없어지고 형제들의 궁핍과 문제들도 함께 힘을 합쳐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신자라면 오벳처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고아는 물론 호세아처럼 아내가 바람피워 낳은 아이까지 자기 자식으로 입양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지 않습니까?

 

이웃을 자신의 인간적 기준으로 보면 단순한 구제마저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보아야만 참 형제자매가 되어서 참 사랑이 가능하게 됩니다. 아무리 사소해도 그런 사랑을 조금씩 실천해나가다 보면 예수님만이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이요 기쁨이 됩니다.

 

(11/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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