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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박사의 성경 속 상식/내 마음의 지성소

“지성소는 예루살렘 성전 아닌 주님의 삶과 인격에 있다.…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 기사입력 2023.01.25 10:30
  • 최종수정 2023.01.25 16:05
  • 기자명 이정미
이정미 박사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그대는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어디다 차리려나/깊은 산엔가, 거친 들엔가/껌껌한 지붕 밑엔가/또 그렇지 않으면 지하실엔가/님이 좋아하시는 골방/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지붕 밑도 지하실도 아니요/오직 그대 맘 은밀한 속에 있네…” -함석헌,「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일부-

사실, 아름다운 것이 타락하면 그보다 더 볼썽사나운 것이 없다. 거룩한 것이 점점 변질돼도 그렇지 않은가? 렘브란트 작품 중 ‘성전에서 환전상을 내쫓는 그리스도’(1626)가 있다. 주님은 늘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분인 줄 알았는데 그림 속 장면은 분노하는 그리스도가 이맛살을 찌푸리고 채찍을 든 오른 팔엔 잔뜩 힘주어 상인들을 막 내려치려고 한다. 그들은 난장판 속에서도 좌판 위의 돈을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주님은 가장 신성해야 할 성전이 탐욕스런 장사꾼들의 시장바닥으로 변한 것을 보시고 불 같이 화를 내셨다.

유월절 무렵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당시 성전 입구 이방인의 뜰은 먼 곳에서 오는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해 제물로 바칠 짐승들을 매매할 수 있는 시장 역할을 했다. 또한 성전유지를 위한 성전세를 거두고자 대금업을 겸한 환전상의 상행위도 허용됐다. 여행자들이 성전 앞에서 헌물인 흠 없는 소와 양과 비둘기를 구입하는 동시에 그들이 사용하는 로마제국의 데나리온을 유대인의 세겔로 맞바꿔 헌금하는 일은 관례적이었다.(로마은전은 황제숭배의 글귀가 새겨져 환전이 필요했다.)

문제는 성전시장에서 행하는 상업활동이 종교 지도자들의 이권개입과 더불어 성전상인들의 담합과 독점 및 온갖 비리의 온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선, 상인들은 성전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당연히 임대차와 관련해 암묵적 뒷거래가 오갔을 것이다. 그리고 대제사장들은 외지에서 싣고 온 희생제물에 대해 율법을 까다롭게 적용해 행상인들의 불법이익을 보장했다.(제사장들이 직접 제사용 가축을 판매하기도 했다.)

서기관들 역시 뜰 시장에서 타인과 경쟁을 제한하는 부당한 거래를 부추기는 동시에 특혜 받은 상인들의 독과점적 행태를 일부러 방치했다.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는 대부업자들도 한통속이었다. 종교권력 배후에서 터무니없는 폭리를 취하는 장사꾼들과 예배를 드릴 목적으로 마련된 편의제공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 성전 지배자들은 한몫 톡톡히 챙겼을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집, 벧엘(Bethel)이 우상(맘몬)의 집, 벧-아웬(Beth-Aven)으로 전락한 것이다.

주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현장을 목격하셨다. 그 분은 아버지의 집이 이렇게 모욕당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기록된 바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요 2:14-15)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 2:16) 말씀하셨다.

독일 신비주의 사상가 요하네스 에크하르트(J. Eckhart: 1260-1327)는 주님께서 채찍을 휘둘러 쫓아내신 성전 장사꾼들과 제물용 짐승들은 우리 마음 속 깊이 내재된 탐욕과 영적 무지함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즉 탐욕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며(딤전 6:10), 영적 무지함은 교만과 방탕함으로 인도하는 사탄의 무기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내면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전이 되기 위해 그것들을 쫓아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럼 성전을 성전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알다시피 이스라엘 성전의 중심은 ‘지성소’(holy of holies)였다. 그곳은 1년에 한 번, ‘大속죄일’(욤 키푸르)때 기름부음 받은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지성소에 있는 것은 법궤 하나뿐인데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그리고 십계명 돌판이 보관되었다. 성전의 가장 내밀한 곳에 위치한 지성소는 휘장으로 가려져 불빛 한 점 비쳐들지 않았다.

법궤는 ‘언약궤’라고도 불렀는데 그 ‘하나님의 궤’(삼상 3:3) 위에 순금으로 만든 ‘속죄소’(throne of mercy)가 있었다. 곧 화해의 피로부터 이름이 유래한 ‘화목처’(the Propitiatory) 혹은 긍휼을 베푸는 자리인 ‘시은좌’이다. 뿐만 아니라 속죄소 양 끝엔 날개를 펼친 두 케루빔이 머리를 숙인 채 그늘을 드리우면서 하늘 보좌를 보호하고 있다.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 죽음 이후 무덤에서 부활하신 사건에서 속죄소의 자비로운 처소가 그대로 재현됐다고 확신한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았더라”(요 20:12)

환언하면 주님은 당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스스로 거룩한 성전이 되셨다. 주님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는 속죄소, 시은좌, 화목처의 실체이시다.(출 25: 22) 지성소는 사람이 손으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삶과 인격에 있다.

오늘날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본질도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는 화려한 건물이 아니다. 우리 영혼의 심연 가운데 조용하고 세밀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그 사람이 진정, 마음의 지성소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참 성도이자 참 성전이 된 사람이다.

이정미 객원기자 jong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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