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책
우리 안의 인종주의
정유은  |  고난함께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5년 03월 16일 (일) 00:17:36
최종편집 : 2025년 03월 16일 (일) 00:19:57 [조회수 : 13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우리 안의 인종주의>, 정혜실 저, 메멘토, 2023)

   책의 저자는 이주 인권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의 경험은 개별적인 사례이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반복하는 차별의 모습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띈다. 그의 글을 따라 읽어내려가다보면 내가 과거에 했던 생각과 행동들이 겹쳐 떠오른다. 내가 배려와 도움이라 여겼던 행동들이 실은 차별적인 것은 아니었을까? 무심코 사람들을 판단했던 나의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책을 읽으며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떠올랐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저자는 1장 1절에서 “양공주”라는 혐오 표현을 들었던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인종주의로 인한 차별과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첫 반응을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차별의 본질을 짚는다. 저자는 당시 자신의 감정이 ‘나는 양공주가 아니다’, ‘소위 그런 여자들과는 다르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분노였음을 깨닫고 스스로를 반성한다. 저자는 “인종주의의 핵심은 ‘우열 매기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인종뿐만 아니라 성, 계급 등 다양한 층위에서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열을 매기고, 이 과정에서 혐오와 차별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외국에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손쉬운 범주화’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저자는 “한 사람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이 어떻게 폭력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외국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만 보더라도 국적, 종족, 성별, 계급, 직업, 모어, 종교 등이 제각기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들을 단 하나의 정체성, 예를 들어 ‘00나라 사람’으로 묶어버리고는, “00 사람들은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라는 식의 일반화를 쉽게 하곤 한다. 저자는 한국내 이주민들을 만나는 현장에 있는데, 자신이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문화’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단순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그는 “한 사람을 특정 집단으로 범주화하는 것은 구별을 통해 차별과 배제를 쉽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이주노동자에게 쉽게 쓰이는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는 어떠한가. ‘미등록 체류자’라는 용어가 권장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여전히 ‘불법체류자’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용어가 가진 부정적 의미가 차별과 탄압을 더욱 쉽게 만든다는 점이다. 용어를 바꾸는 것은 사람들의 인식에 없던 길을 내는 것이라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변화를 이끄는 확실한 길이기도 하다. 

   상대와의 관계에서 우열을 매김으로써 나의 안전을 도모하고, 내집단과 다른 이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어 판단하고,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언어를 그대로 쓰는 것은 얼마나 편하고 쉬운 길인가. 그러나 이 길은 다른 이의 존재를 지우면서 가는 길이다. 내 안의 인종주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은 나를 ‘불편’한 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나’의 옆에 ‘너’의 자리가 있었음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인용한 말처럼, “환대의 진정한 의미는 동정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타자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흐린 눈으로 보지 않으려 했던 내 안의 차별적 시선과 구조를 직시하게 만든다. 인종주의는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 속에 스며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깨닫고 멈추려는 노력이다. 익숙한 길을 벗어나 불편함을 마주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변화는 그러한 작은 불편함에서 시작될 것이다.

- 정유은 (고난함께)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