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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n 01. 2021

한국 교회를 개혁하는 방법

칼빈에게 물어본다.

중세 말 교회는 우민화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일반 백성은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금서로 지정했습니다.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 성직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성직자들은 성경을 읽지 않았고,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경 한 구절 읽고서 자기 마음대로 말했습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설교하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교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 “아멘”하며 받아들였습니다.

교인들도 성경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일이 힘들었기 때문에 헌금 몇 푼하고 신앙생활 다하는 줄 생각했습니다.

성직자도 교인도 모두 편하게 종교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세상의 복, 돈과 명예를 추구했습니다.

교회는 돈과 권력이 오가는 장소였습니다.

교회 직분을 사고팔았으며, 가짜 성물들이 고가에 팔려나갔습니다.

중세 교회는 미신적이고 세속적이고 계산적인 기복 신앙으로 가득했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중세 말 가톨릭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신학교에서 3년 동안 공부한다고 하지만, 성경은 거의 공부하지 않고, 신학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조금 배웁니다.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졸업하지만, 마치 자신이 성경 박사인 것처럼 행세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그나마 보던 책도 보지 않았습니다.

얼렁뚱땅 공부해도 3년 신학교에서 공부한 사람은 그나마 낫습니다.

무인가 신학교에서 1년 치 등록금을 한꺼번에 내고 목사 안수를 받는 데도 있다고 합니다.

비행기 신학교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A 집사가 있었습니다.

교회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집사였습니다.

기도도 할 줄 모르고, 성경에 대해선 거의 몰랐습니다.

한 2,3년 열심히 교회출석을 하더니 어느 날 중국을 가게 되었다고 하면서 출국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중국에서 돌아온 그는 목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 신학을 공부했는지 물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는 집사였는데 내릴 때는 목사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이 정도는 아니어도 군소 교단에서 운영하는 군소 신학교에선 약식 절차를 거치면 목사 안수를 주는 곳이 있습니다.

물론 학비 명목으로 돈을 내야 하지만요.

중세 가톨릭의 부정과 부패보다 현재 한국 교회의 부정부패는 더 심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 개혁해야 할 점이 많지만, 무엇보다 성경에 대한 무지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기독교의 무지를 깨트리는 운동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하나같이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하고 성경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들은 단지 교회의 부패를 개혁하려는 의지와 열망만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 원어에 능통하였고, 고전을 읽고 암송했으며, 성경 주석과 강해도 탁월하였습니다.


장 칼뱅은 23살 때 ‘세네카의 관용론에 대한 주석’을 썼습니다.

그저 단순한 주석이 아닙니다.

그의 주석을 살펴보면 60여 권의 라틴어 고전과 20여 권의 헬라어 고전, 그리고 몇몇 초대 교부의 책을 인용했습니다.

그는 키케로, 버질, 타키투스의 책을 암기하였고, 플라톤과 세네카의 철학도 잘 알았습니다.


1533년 11월 1일 칼뱅의 친구인 니콜라스 콥이 파리 대학장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칼뱅은 그의 취임 연설문을 써주었습니다.

그건 기독교 철학을 바탕으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하는 연설문이었습니다.

불과 24살의 칼뱅이 쓴 연설문은 학문적이고 개혁적이었습니다.

당시 가톨릭을 믿었던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는 연설문을 작성한 칼뱅을 체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32명의 개신교도가 체포되어 화형당했습니다.


칼뱅은 앙굴렘에 사는 친구 루이 뒤 틸레 집에 숨었습니다.

루이는 클레의 참사회원이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의회 회원입니다.

루이는 개혁 사상을 가진 정치인으로서 집에는 훌륭한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칼뱅은 쫓기는 중에도 그곳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고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칼뱅은 공식적으로 신학 공부를 한 적이 없는 평신도였습니다.

그는 루터, 부처, 츠빙글리, 멜랑히톤, 오이콜람파디우스 같은 1세대 종교개혁자들의 책을 탐독했습니다.

그 밖에 초대교회 자료와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의 책도 읽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은 곧 성경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27살 되던 해, 평신도였던 칼뱅은 기독교 강요를 썼습니다.

그건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교회사적 전통과 성경적 주해를 바탕으로 한 신학 서적이었습니다.

칼뱅은 일약 국제적인 종교개혁자가 되었습니다.


칼뱅은 평생 책을 읽고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도 잘못이 있고,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성경을 연구하고, 주석하고, 설교하였습니다.

그가 제네바 개혁을 할 때 가장 역점을 둔 것은 교육이었습니다.

그는 제네바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인문학과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훌륭한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제네바는 종교개혁의 본산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사상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제네바로 몰려왔습니다.


그는 기독교 강요를 여러 차례 개정하였습니다.

1536, 1539, 1543, 1545, 1550, 1559년 총 6번 출판하였는데 그때마다 분량이 늘었습니다.

처음 쓴 책에 비해 5배 정도 양이 늘어났습니다.

그건 그가 그만큼 공부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1540년 로마서 주석을 시작하여 1565년 에스겔 주석까지 25년간 성경을 주석하였습니다.

한번 만든 강의안 하나로 평생 우려먹는 대학교수들이 허다한데, 칼뱅은 평생 공부하였다는 사실 하나로도 존경받을 만합니다.

그의 기독교 강요와 성경 주석은 종교 개혁 사상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칼뱅은 장로교의 창시자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 장로교 목사 중에 칼뱅의 기독교 강요를 일독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성경을 주석하는 일은 고사하고,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한국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 공부하는 목회자가 많아질 때 한국 교회의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국 목회자들에게 제발 공부하라고 펜데믹이란 강제 방학을 주었습니다.

이 기간 자신을 잘 갈고 닦고, 성경을 공부한다면 한국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서 속히 펜데믹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세월을 허송한다면 한국 교회 희망은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개혁을 외치고 말하기 이전에 공부가 우선입니다.


https://youtu.be/qiZfZs_w7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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