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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인트의 책 이야기 Feb 27. 2023

해가 진다고 해서 그 빛이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리뷰     


【 우아한 인생 】  _저우다신 / 책과이음          



최근 외신에 의하면, 뇌졸중의 주요 증상인 안면 비대칭을 약 100% 확률로 감지하는 인공지능 기반 스마트폰 앱이 개발됐다고 합니다. 수면장애, 중독 등 정신질환 분야나 인지행동 교정에 주로 활용됐던 헬스케어 앱이 만성질환 및 급성질환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라도슬라프 라이체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신경과 교수 연구팀은 ‘FAST.AI’라는 인공지능 기반 스마트폰 앱을 개발했습니다. 신경과 전문의인 연구자가 사람들이 뇌졸중 증상을 정확히 포착하고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적는 것은 이 책(소설)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키워드를 찾는다면 노화, 늙음, 노년 등이 될 것입니다. 체코의 영화학과 교수이자 작가인 밀란 쿤데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늙음에 대해 무지한 어린아이와 같다.” 노년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누구나 마음은 젊음에 머무르고 있다 보니, 다가오는 노년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늦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나이를 놓고 본다면 세상에는 세 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다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곧 늙을 사람, 지금 늙어가는 사람, 이미 늙어버린 사람입니다. 곧 늙을 사람의 범위는 넓게 잡아야할 듯합니다. 스스로 어리거나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는 자신은 영원히 늙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범주 안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노년은 모든 사람이 결코 피할 수 없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길입니다.      






책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책 차례에 「장수 공원 황혼 녘 주간 행사 일정」이라는 대목이 시선을 끕니다. 월요일 황혼녘부터 일요일 황혼녘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에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행사 일정을 보면, 지금 늙어가는 사람이나 이미 늙어버린 사람들이 도저히 그냥 못 지나칠 정도로 유혹적입니다. 첫째 날 ‘간병 로봇 미스 웨이웨이 쇼케이스’에선 신분증 지참 필수. 65세 이상 입장 가능. 현장 무료배포 기념품은 1인당 1개씩 증정’ 첫날은 돈이 안 드는군요. 둘째 날은 ‘링치 장수환 판매 행사’입니다. 장수환은 65세 이상 노인은 남녀 구분 없이 1인 당 세 통 구매 가능하다고 합니다. 한 통을 다 먹으면 수명을 37일 연장 할 수 있다고 잠정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노인들이 혹 할 만합니다. 셋째 날은 70세 이상 입장 가능하다고 합니다. 1인 1회 체험이 가능하고 체험료는 300위안(현재 환율 한화로 56,000원 정도 되는군요). 체험을 원할 경우 본인의 20세 전후 사진 1매를 미리 준비해 체험 전에 직원에게 전달해야 하고, 1회 체험으로 정신 연령이 2년 젊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넷째 날은 ‘인류의 미래 수명에 관한 강좌’가 펼쳐집니다. 뉴욕 인류수명연구원 린신한 부원장 특별 초청 강연으로 장수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전달해준다고 합니다. 강연이 끝난 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을 측정 할 수 있는 최신형 전자센서 모니터를 증정하며 세 가지 중 하나만 선택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상의 프로그램만 보면 한번 행사에 한 번 참석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전적으로 픽션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 단, 작가가 이러한 내용들을 담기위해 많은 공부와 자료 수집을 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소설은 넷째 날인 목요일까지는 도입부분이고 소설다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흘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타이틀은 ‘노인 간병 경험담’입니다. 사흘 동안의 이야기 속엔 그보다 많은 세월의 시간이 흐릅니다. 베이징 간병인 자격증을 가진 가정 간병인들만 참여가 가능하고, 강연이 끝난 뒤 자격증을 지참한 간병인들에게 이다 그룹에서 후원하는 880위안 상당의 가정용 구급상자를 무료로 증정한다고 합니다.     


어느 간병인의 이야기      



“허난성 난양의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내가 베이징까지 와서 일하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로 시작합니다. 전문대학 간호학과를 졸업한 강사는 운 좋게 베이징(한 개인 병원 간호사)에 취직이 됩니다. 베이징 행을 결심한 것은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이자 이웃 마을에 살던 청년과 연애하는 중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월급은 고작 2,600위안이었습니다. 월세와 식비와 필요한 옷과 속옷을 사는 데 들어가는 약간의 돈을 뺀 나머지는 모두 남자친구(대학생)와 부모님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월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옮기고 싶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중, 구인광고에서 ‘73세 남성을 돌보며 집 안 청소와 식사까지 책임지는 일’인데, 1년 동안 매달 4,500위안을 주며, 점진적인 월급 인상은 추후 논의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간호대를 나온 전문 인력을 우선 채용한다는 단서에도 시선이 끌렸습니다. 월급 4,500위안과 숙식해결까지 계산하면 6천 위안이 넘는다는 계산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이 소설의 주인공의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찾아간 집에는 아버지와 딸, 사위까지 총 세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30대 중반의 딸(샤오신신)이 구인공고를 냈고, 딸 신신의 말로는 주인공이 돌봐야 할 73세의 어르신(상처한 전직 판사)은 혈압, 혈당, 고지혈증 수치가 좀 높고, 치질 증세가 있는 것 말고는 큰 병 없이 규칙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다만 나이가 73세이다 보니 이런 지병의 수치가 높아지면 위험할 수 있어서 예방 차원에서 24시간 돌봄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딸 신신은 직장 생활 중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자신의 짐을 챙겨 온 첫날부터 어르신과 충돌이 생깁니다.“난 아직 멀쩡해! 누구한테 도움을 받을 정도로 늙지 않았으니 얼른 돌려보내라!” 그러나 딸이 어떻게 설득했는지 일단 그 집에 입주하게 됩니다.      






그 집에 간병인으로 입주하면서 많은 사건이 생깁니다. 그 이야기를 다 옮길 수는 없지만, 중요한 대목은 그 어르신에게 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입니다. 어르신의 나이 들어감은 우리 모두에게 닥칠 일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네 광장에 산책을 나갔을 때, 한 젊은이가 어르신에게 ‘늙은이’라는 말을 했다고 흥분해서 젊은이의 어깨를 주먹으로 쳐서 젊은이의 몸이 휘청거리는 일도 생깁니다(젊어서 한 때 운동으로 다져진 어르신의 몸이기도 하고, 젊은이는 설마 노인네가 그렇게 주먹을 휘두를 줄 예상을 못했겠지요). 이 대목에선 일차적으로 사람이 나이가 들면 나이가 든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설에 나오는 어르신은 자신이 늙어 간다는 것, 이미 늙었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립니다.      




어르신은 황혼의 동반자로 재혼까지 꿈 꿔보지만, 실패로 끝납니다. 그 과정이 노년에 재혼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도 소소한 정보를 주는군요.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고, 사회에서도 나름 영향력을 행사했던 어르신이지만, ‘장수’를 내세우며 사기행각을 벌이는 사기꾼들에게 거금을 날리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뇌졸중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고, 치매까지 오게 된 어르신을 주인공인 간병인이 지극정성으로 모십니다. 주인공의 신상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끝까지 어르신을 돌봐야 하겠다는 책임감으로 어르신의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치매에 걸린 노인을 위해 극단의 처방을 시행하는 부분에선 독자의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나는 주인공의 심성이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지은이는 중국의 저명한 작가 저우다신(周大新)입니다. 책의 원제는 ‘天黑得很慢’이라고 되어있네요. 중국어 해독이 가능한 지인에게 물어보니, 직역하면 ‘날이 아주 천천히 어두워진다’라고 합니다. 내 마음대로 의역을 해봤습니다. ‘해가 진다고 해서 그 빛이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정신적 노화는 다소 늦출 수는 있지만,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지요. 어떻게 살아왔든 간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생은 모두 소중합니다. 그 삶들이 모여져서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노년을 대비하며 읽어볼만한 책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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