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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07. 2021

타자를 위한 법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대한민국 헌법 10조)


대한민국 헌법 10조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규정한다. 참으로 멋진 말을 줄줄이 나열하고 있어서 자칫하면 그 뜻을 제대로 새기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이 문장을 자세히 살펴보자. 주어는 ‘모든 국민’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주어는 ‘국민’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7년 10월 29일”


그러면 ‘국민’은 누구인가? 프랑스 인권선언은 ‘인간’과 ‘국민(시민)’을 구분하였다. 국민(시민)은 사회 공동체로서 국가 이익에 충실한 사람이다.


루소는 스파르타의 한 부인을 사례로 들어 ‘국민’을 설명하였다. 다섯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한 여인이 있었다. 전쟁터에 함께 갔던 노예가 돌아와서 아들의 소식을 전하였다.

“마님의 다섯 아드님이 모두 전사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부인은 화를 냈다.

“못난 놈 같으니, 내가 너에게 그것을 물었느냐?”

노예는 부인의 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마님. 스파르타가 승리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자 그녀는 신전으로 달려가 신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이 여인은 전형적인 국민의 특징을 보인다. 인간이라면 가족의 안위에 관심을 가지고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국민은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기에 가족의 희생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충(忠)’을 강조했던 조선의 유교와 많은 점이 비슷하다. 국민은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동시에 국가에 충성하는 사람이고, 국가의 법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면 인간은 누구일까? 인간은 국민을 포함해서 외국인, 난민, 나그네, 여행자 등 모든 사람을 포괄한다. 한 마디로 하면 ‘타자’이다. 비트겐슈타인(L.J.J.Wittgenstein, 1889~1951)은 타자를 이렇게 정의하였다. 타자는 같은 규칙을 공유하지 않는 자이다(박가분, p81). 어떤 사회 공동체이든 규칙이 있다. 법률만이 아니라, 언어, 문화, 관습의 규칙이 있다. 누구든 그 사회 공동체에 적응하여 살려면, 반드시 그 사회 공동체의 규칙을 배워야 한다. 타자는 공동체의 규칙 밖에 있는 사람이고, 따라서 보호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회 공동체 규칙은 누가 만들었고, 누구를 위한 규칙인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재판이 1886년의 이허 대 홉킨스(Yick Wo v. Hopkins)판결이다. 1850년 골드러시가 시작하면서 중국 노동자들이 대거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갔다. 철도 노동자로 들어왔던 중국인은 곧 분야를 넓혀서 농업과 세탁업에 손을 대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1880년 샌프란시스코 세탁소 중 3분 2가 중국인 소유였다. 샌프란시스코시는 조례를 발표하여 돌이나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이 아니면 세탁소를 운영할 수 없도록 하였다. 표면상으로는 세탁소가 화재 위험이 크기 때문에 불에 잘 타지 않는 돌이나 벽돌로 지은 건물이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사실 중국계를 몰아내고 백인들이 세탁소를 독점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당시 320개의 세탁소 중 약 95%가 목조 건물이었다. 자본이 부족했던 중국인들은 대부분 목조건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였다. 목조건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다 체포당한 이허(Yick Wo)는 ‘시 조례가 소수 인종을 차별하고 있다’면서 연방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지루한 싸움 끝에 대법원은 이렇게 판결하였다.

"비록 시 조례 자체는 합헌적이고 유효하다 하더라도, 샌프란시스코시의 감독 위원회는 중국계 주민을 세탁업에서 배제하기 위해 시 조례를 매우 차별적이고 악의적인 방법으로 적용했다. 그러한 차별 대우는 개정 헌법상의 평등 조항의 정신과 규정에 모두 어긋나는 것이므로 이허(Yick Wo)에 대한 유죄 판결을 파기한다."

이허는 승리하였지만, 그 후로도 소수 민족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찾기 위해 계속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임지봉, p130). 같은 나라에서 함께 살면서 공통의 규칙을 지키지만,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피부색이나 인종이나 언어로 차별하는 경우는 지금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독일 나치는 바이마르 헌법에 기초하여 독재했다. 바이마르 헌법 1조는 우리 헌법 1조와 거의 비슷하다. 헌법 1조를 초안한 유진오는 이 문장을 바이마르 헌법 1조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제국은 공화국이다.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바이마르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한민국 헌법 1조)

나치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으로 국민과 타자(타국인)를 구별하고 차별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았던 유대인, 민주주의자, 공산주의자, 장애자, 동성애자 모두를 타자(타국인)로 보았다. 나치는 타자는 게르만 민족이란 훌륭한 혈통에서 ‘씻어 버려야 할 더러움이며, 인종적 공간이라는 생태계를 위협하는 오염원’이라고 하였다(Volf, p85). 그들은 타자를 강제 수용소에 격리하고 살해하거나 추방하였다. 나치의 대량학살은 타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나치의 끔찍한 범죄를 경험한 독일은 1948년 국민의 권리를 넘어서, 더불어 살아가는 소수민족의 권리,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자의 권리까지 고려하여 독일 헌법을 개정하였다(한상범, p123).

“인간의 존엄은 불가침이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 권력의 의무이다. 따라서 독일 국민은 세계의 모든 인간 공동사회, 평화 및 정의의 기초로서 불가침의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인정한다”(1949년 독일 헌법 1조).


인권 중에 가장 차원 높은 선언이 타자에 대한 권리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짧은 역사를 가진다. 놀라운 사실은 수천 년 전 쓰인 신명기는 타자에 대해 놀라운 선언을 한다.

"내가 그 때에 너희의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에 있는 타국인에게도 그리 할 것이라." (신1:16 개정개역)

"그 때에 내가 당신들 재판관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당신들 동족 사이에 소송이 있거든, 잘 듣고 공정하게 재판하시오. 동족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동족과 외국인 사이의 소송에서도 그렇게 하시오."(신1:16 새번역)


법을 집행할 때, 자국민뿐만 아니라 타국인에게도 똑같이 대하라는 것이다. 타국인이 누구냐 하는 문제는 구약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다. 어떤 학자는 유대에 귀화하여 사는 외국인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가나안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외국인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으로 보든 타국인은 타국인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유대 관습을 배우고 익히든 익히지 않든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다.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타국인을 공평하게 대하므로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라고 천명하였다.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수많은 잡족’(출12:38)과 함께 나왔다. 그 후에도 이스라엘에 정착하여 사는 외국인은 많았다. 라합의 가족, 기브온 사람들, 헷 사람 우리아, 모압 여인 룻 등 많은 외국인이 이스라엘과 함께 어우러져 살았다. 하나님의 나라는 혈통적으로 순수성을 지키는 나라가 아니라, 신앙으로 하나 되는 나라였다. 타자와 관련되어 여호와 신앙의 핵심은 타자에 대한 환대였다. 이스라엘은 본래 애굽의 노예들로 이루어진 나라였기에 약자와 타자에 대한 환대와 배려가 신명기 법의 근본이 되었다. 신명기에선 하나님께 예배 드릴 때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지 말고, 나그네(타자)도 배제하지 말라고 하였다(신5:14,16:11,26:11).


나는 필리핀에서 선교할 때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지프니가 중앙선을 넘어와 내 차를 들이받았다. 장갑차 수준의 지프니는 멀쩡하였지만 내 차의 범퍼는 찌그러졌다. 나는 공정한 판단을 원하여 경찰을 불렀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경찰은 내가 잘못했으니 지프니 운전자에게 배상하라고 하였다.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았다. 사고 현장을 보고도 경찰은 막무가내였다. 어찌 어찌하여 배상은 하지 않았지만, 피해복구는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그때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법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타국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건 비단 필리핀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도 자국민의 권리만 이야기하지 타국인에 대한 권리는 언급하지 않는다. 법만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타국인을 공평하게 대하거나 보호해야 할 의무가 전혀 없다. 불법 노동자를 쫓아내고, 우리나라에 피난 온 난민을 몰아내는 건 법적으로 정당하다. 17세기 스페인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원주민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그들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학살하여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타국인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복 추구권, 그들의 인권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세상 많은 나라가 자국민의 권리만 생각하지 타국인의 권리는 존중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수한 대량학살, 인종 청소를 경험한 유엔은 1948년 세계 인권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제1조.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우리 모두는 이성과 양심을 가졌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자매의 정신으로 행해야 한다.

제2조. 피부색, 성별, 종교, 언어, 국적, 갖고 있는 신념 등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제3조. 우리는 누구나 생명을 존중받으며, 자유롭게 그리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제4조. 어느 누구도 사람을 노예처럼 다루거나 물건처럼 사고 팔 수 없다.

제5조. 사람은 누구나 고문이나 가혹하게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형벌을 받지 않는다.

제6조. 우리는 모두 어디서나 똑같이 법의 보호를 받으며 인간답게 살아간다.

제7조.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며 차별적이어서는 안 된다.


세계인권선언문이 발표되었지만, 법적 효력은 전혀 없다. 반면에 수천 년 전 신명기 법령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이었다. 신명기 법은 세계 인권 선언문보다 훨씬 뛰어난 인권법이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법을 설명할 때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함으로써 법의 정신을 제대로 설명하였다(막2:27).


세상은 급속도로 간격을 좁혀서 ‘지구촌’이란 말을 사용한다. 교통이 발달하면서 인구의 이동은 자연스럽고, 국제결혼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다문화 국가로 바뀌고 있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더욱이 펜데믹 상황에서 국제간의 공조는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따라서 과거 제국주의 시대처럼 자국민의 이익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폐쇄적인 형태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기에 부적절하다. 자국민뿐만 아니라 타국민에 대한 배려와 환대와 법적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그건 수천 년 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법에서 분명히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개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한민국도 기독교적 정신에 따라 ‘국민’보다는 ‘인간’에 대한 관점으로 법 개정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참고도서

Volf Miroslav, Exclusion and Embrace(배제와 포용) , 박세혁 옮김, IVP, 2014

임지봉, '법과 인권 이야기', (책세상;서울) 2014년

박가분,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자음과 모음;서울) 2014년

한상범, '살아있는 우리 헌법 이야기', (삼인;서울) 2010년

이국종, '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E-book’, (김영사;서울) 2017년

세계인권선언문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신명기',(국제제자훈련원;서울)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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