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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27. 2021

믿음과 신뢰의 차이

당신이 그분을 파악한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다(Si comprehendis, non est Deus) - 아우구스티누스


진리를 아는 것처럼 자신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절대적 확신과 권위를 가지고 자기가 아는 지식이 진리인 것처럼 말하는 그리스도인도 있다.

이런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과격한 이슬람교도들의 자살 테러는 이런 잘못된 확신 때문에 일어난다.

이슬람만 그런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 중에도 강한 확신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마치 중세 종교재판관인 줄 착각하는 사람이다.

바리새인이 그랬고,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종교지도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진리를 핑계로 편가름과 미움과 저주를 일삼았고, 지금도 그런다.

진리를 아는 일은 중요하다.

나는 신학교를 졸업한 이후 지난 30년 동안 많은 신학책을 읽고 공부했지만, 공부할수록 나의 무지와 부족함만 깨달을 뿐이다.

경건한 신앙 선배들은 ‘성경 앞에서 겸손하라’고 충고하였다.

그건 하나님의 말씀이니 겸손하게 들으라는 뜻도 되지만, 말씀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결코 측량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한 때 나는 독서량과 성경 지식을 자랑하였다.

매달 평균 10권에서 15권씩 40년을 읽었다.

읽은 책을 자료 정리하여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정리한 자료가 약 40만 건이 된다.

책을 읽으면 중요 부분을 페이지와 함께 타이핑을 하고 태그를 달았다.

검색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3, 40년 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나의 지식은 졸졸 흐르는 시냇물보다 못하다는 점이다.

그동안 나는 진리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무 건방졌다.

이제야 겸손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다.

배우고 또 배워도 모르는 것뿐이다.

하나님께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때마다 나의 무지와 죄악만 발견할 뿐이다.


사도 야고는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하나님을 x,y,z이라는 개념으로 아는 건 귀신들이 우리보다 훨씬 잘 안다.

그건 믿음이 아니라 지식일 뿐이다.

진리를 아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또한 우리의 지식은 완전하지도 않다.


믿는다는 동사의 목적어는 개념(지식, 내용)이 아니라 인격이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크게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보수 신학을 공부하면서 늘 자부심을 느꼈던 것은 바른 신학을 안다는 생각이었다.

바보같은 생각이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아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자신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지식은 거짓이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온전하게 알 수 없다.

어거스틴은 말했다.

"당신이 그분을 파악한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다."

진정한 믿음은 지식이 아니라 신뢰다.


지식을 가지기는 쉽다.

성경을 공부하거나 신학을 공부하면, 지식을 가질 수 있다.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지식은 설득력이 뛰어나다.

사람들은 지식에 설득당하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한다.

그건 믿음이 아니다.

성경은 믿음의 내용보다 믿음의 대상이 누구냐를 질문한다.

그리고 그 믿음의 대상, 곧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하느냐 질문한다.


신뢰는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손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신뢰는 나의 재량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신뢰는 나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뢰는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하여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삶으로 부르신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나는 예수님을 알기 원한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다.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나의 조그마한 지식이 예수님을 따르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나의 많은 지식이 예수님을 따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교만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과 말씀과 다른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낮추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예수님의 부르신 뜻대로 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https://youtu.be/sL7NHPcE_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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