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인생도 열정도 진실도 건강에 해롭다_산도르 마라이 "열정"

설왕은 2021. 5. 20. 11:49

* 2003년 12월 10일에 작성했던 서평

** 나는 이토록 진지하게 글을 썼구나. ㅎㅎ

 

인생이란 어린 시절 읽던 동화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인생은 완전한 희극도 완전한 비극도 아니다. 그저 수많은 희극적 비극적 요소가 결합되어 이해하기 힘든 모양을 가지고 있다.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말로도 '주인공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라는 결말로도 우리 삶의 여정을 매듭짓기는 쉽지 않다.

 


삶은 수많은 갈등과 문제의 연속이다. 문제의 성공적인 해결로 행복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처절한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도 혹은 더 큰 실패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성공도 실패도 아닌 갈등과 문제 자체로 우리 인생에 쌓여 있는 것들도 많이 있다.

한 마디로 인생은 쉽지 않다. 헨릭 스스로의 인생도 혹은 콘라드와 크리스티나의 열정 어린 인생도 이해하기 힘들다. 때때로 열정은 우리를 파멸시킨다. 태양을 향해 너무 높이 날아오른 이카루스처럼 열정은 우리 자신을 높을 곳으로 데려갔다가 끝없이 추락하게 만들기도 한다. 높은 곳에 이르게 되었다는 기쁨은 잠시일 뿐, 콘라드와 크리스티나는 끝없는 추락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열정적인 두 사람은 이 책의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두 사람의 비상과 추락을 목격하는 헨릭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추락하기 시작하는 순간 헨릭도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그가 향하는 태양은 아마도 진실의 태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그에게, 진실은 어떤 의미일까? 헨릭이 말하고 믿는 진실이 사실로 확인이 되건 혹은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든 그것이 헨릭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그가 생각하는 진실이 있을 뿐이고 그가 살아온 인생이 있을 뿐이다. 결국 삶 전체로 드러나는 진실이라는 것도 헨릭에게는 갈등과 아픔일 뿐 해독 작용을 하지는 못한다.

 


헨릭은 자신의 이야기를 유유히 흐르는 강과 같이 흘려내보낸다. 그러나 유유히 흐르는 강의 겉모습이 강의 전부가 아니다. 밑바닥에서 날카로운 바위에 찔리고 모래에 부딪히고 수많은 오물과 찌꺼기로 더럽혀져 숨쉬기조차 힘들지만 그래도 상류에서의 얻은 추락과 고통의 에너지로 모질게도 바다를 향하는 것이 강이다. 강은 알고 있을까? 자신의 그 에너지가 상류에서 얻은 고통의 에너지라는 것을...

인생이라는 길고도 어려운 문제에 정답을 찾기 원한다면 이 책은 해로울 것이다. 글쎄... 삶 자체를 축복이라고 느낄 수 없다면 인생자체도 열정도 진실도 건강에 해로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생과 인간이라는 복잡하고도 그 속을 알기 어려운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끌어안을 마음가짐이라면 벽난로 앞에서 헨릭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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