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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1847)_나의 복수를 기대해!

설왕은 2023. 3. 3. 09:00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김종길 옮김 (민음사, 2005)

 

영국의 소설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1818-1848)가 남긴 유일한 작품 "폭풍의 언덕"(1847)은 히스클리프Heathcliff와 캐서린 언쇼Catherine Earnshaw의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사망 연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만을 남긴 채 30세에 요절했다. 29세에 인류 문화유산으로 남을 만한 문학 작품을 남긴 에밀리 브론테. 만약에 에밀리 브론테가 더 오래 살았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약 200년 전에 나온 "폭풍의 언덕"은 지금 읽어도 하나도 촌스럽지 않다.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처럼 몰입감을 주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다. "폭풍의 언덕"의 최대 장점은 캐릭터의 독특성이다. 주인공 히스클리프는 매력이라기보다는 마력을 가진 존재이다. 이 정도로 복잡다단한 인물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독특한 캐릭터이다. "폭풍의 언덕"이 출판되었을 당시에 이 소설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인공들이 괴상할 정도로 복잡하고, 또한 정형화되어 있지 않아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폭풍의 언덕"은 오히려 20세기, 21세기에 어울리는 소설이다. "폭풍의 언덕"은 가히 100년 이상 시대를 앞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폭풍의 언덕"의 남녀 주인공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사랑이다.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사랑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미친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폭풍 같은 사랑? 아무리 무서운 사랑이라도 사랑에는 애틋한 따뜻함이 있으므로, 미친 봄바람 같은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사랑을 해, 말아? 하고 물어본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예로 들만한 소설이 바로 이 "폭풍의 언덕"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반대하는 사람은 "여러분, 사랑이 이렇게 해롭습니다" 하고 히스클리프의 광기를 보여줄 것도 같다. 아니,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지, 하고 주장하는 쪽에서 들고 나올 수도 있는 소설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잖아. 서로가 상대방을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여길 정도로 사랑했다면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 정도로 이 소설은 해석이 간단하지 않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사이는 애증의 관계를 넘어선 복잡한 관계이다. 애증 정도만 되어도 복잡한데, 질투, 복수, 후회, 한 같은 것들이 마구 뒤엉켜 있다. 서로를 사랑하기에 서로를 파괴하는 이 커플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이들은 정말 사랑했을까? 

 

일단 진짜 제목을 잘 지었다. 폭풍이 치는 언덕, 영어 원제로는 Wuthering Heights(워더링 하이츠)이다. <폭풍의 언덕>이라는 우리말 제목이 Wuthering Heights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을 백 퍼센트 살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괜찮다. Wuthering은 바람이 거세다는 뜻의 사투리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영어깨나 하는 사람이라도 이 단어를 보고는 처음 보는 단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바람이 매섭게 분다는 뜻인데 표준어를 쓰지 않고 사투리를 썼다. 이 소설의 배경이 어디인지를 알려 주는 제목이다. 바람이 매섭게 부는 시골 외딴곳에 있는 지역이라는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도시에서도 희한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사람들이 눈이 적고 왕래가 적은 시골에서는 가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느낌상 귀신도 도시보다는 외딴 시골에 더 많이 살 것 같지 않은가? 

 

워더링 하이츠_BBC 드라마 (2009)

 

바람이 매섭게 부는 외딴 시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왜 그곳에 있는 저택 주인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증오에 찬 삶을 살고 있는가? 궁금하지 않은가? 소설은 모든 일이 다 끝난 후에 유령처럼 살고 있는 히스클리프와 유령으로 살고 있는 캐서린 언쇼를 목격한 나그네 록우드가 워더링 하이츠에서 일어난 일을 듣고 서술한 것이다.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 명은 유령처럼, 또 다른 한 명은 유령이 돼 워더링 하이츠에 머물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1801년. 집주인을 찾아갔다가 막 돌아오는 길이다. 이제부터 사귀어가야 할 그 외로운 이웃 친구들. 여긴 확실히 아름다운 고장이다. 영국을 통틀어도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이렇게 완전히 동떨어진 곳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을 싫어하는 자에겐 다시없는 천국이다. 더구나 히스클리프 씨와 나는 이 쓸쓸함을 나누어 갖기에 썩 알맞은 짝이다. 멋진 친구! 말을 타고 다가가는 나를 보고 그의 시꺼먼 두 눈이 눈썹 아래에서 미심쩍게 찌푸려지는 것을 봤을 때, 그리고 내가 이름을 대자 그의 손가락들이 잔뜩 경계하며 조끼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그에게 호감을 품었는지 그는 상상도 못 했으리라. (7)

 

 

히스클리프는 언쇼 씨가 집에 오다가 주워 온 아이였다. 소설은 히스클리프를 얼굴이 까무잡잡한 집시라고 표현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에 굴러 들어온 아이, 게다가 얼굴로 보아 흑인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한 아이. 이질감 때문에 싫어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 같은데 캐서린은 곧 그에게 빠져 든다. 캐서린과 달리 그녀의 오빠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증오하고 그를 학대한다. 이상하게 캐서린은 히스클리프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느낄 정도로 동질감을 느낀다.

 

히스클리프가 당한 학대를 계속 읽고 있으면 과연 힌들리는 어떤 천벌을 받을까 하고 궁금해진다. 신이 정말 살아 있다면 복수는 히스클리프가 아니라 신이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폭풍의 언덕"에서 복수의 화신은 히스클리프이다. 어쩌면 히스클리프를 통해서 신이 벌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싸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힌들리는 히스클리프에게 가혹했다. 

 

"힌들리에게 어떻게 복수를 해줄까 생각하고 있었어. 언젠가 할 수만 있다면 기다리는 것쯤 괜찮아. 제발 나보다 먼저 죽지나 말았으면!"
"창피한 줄 알아, 히스클리프!" 저는 말했습니다. "고약한 사람들을 벌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야. 우리는 용서를 배워야지." (101)

 

히스클리프는 아무도 용서하지 않는다. 이런 캐릭터는 상당히 위험한 캐릭터이다. 뭐랄까? 이성적인 악마. 악마가 굉장히 감정적일 것 같은데 이성적이라면 어떨까? 똑똑하고 지적인데 아주 차가운 악마라면 정말 무서울 것 같다. 그렇다고 히스클리프가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을 사랑한다. 사랑에 빠진 이성적인 악마 같은 히스클리프. 그의 삶이 힌들리 때문에 고달팠겠지만 그래도 길에서 살고 있던 자신을 입양해 준 사람의 아이들인데 그렇게까지 복수해야 했을까? 힌들리가 죽었을 때 멈추려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히스클리프 자신이 죽을 때까지 복수는 멈추지 않는다. 지금 같으면 히스클리프는 "용서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2022년에 나온 드라마 "더 글로리"의 주인공과 비슷하지 않은가? 용서는 없어. 나의 복수를 기대해. "더 글로리"는 "폭풍의 언덕"을 오마주한 드라마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거미라도 보통 집에 줄을 치면 반갑지 않지만, 감옥에서 줄을 치면 거기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것처럼 나로서는 도시 사람들은 재미가 없지만 이 고장 사람들은 매우 재미있소. 그러면서도 이 고장 사람들에게 깊은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처지 때문은 아니오. 이 지방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좀 더 깊숙한 자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도시 사람들처럼 껍데기뿐이, 분주하고 하잘것없는 외적인 사물에 별로 마음 쓰지 않으면서 살고 있소. 이런 데서는 한평생 연애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소. (103)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 이야기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미친 봄바람 같은 사랑이고 어두움 속에서 나타나는 거미와 같은 사랑이다. 반갑고 즐거운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져서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시점이라면 이런 사랑이라도 발견된다면 반가울 수 있을 것 같다. 작가가 그런 의도로 "폭풍의 언덕"을 쓴 것 같다. 사랑을 하찮게 여기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소설 같기도 하다. 

 

"천국은 내가 갈 곳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려 했을 뿐이야. 나는 지상으로 돌아오려고 가슴이 터질 만큼 울었어. 그러자 천사들이 몹시 화를 내며 나를 워더링 하이츠의 꼭대기에 있는 벌판 한복판에 내던졌어. 거기서 나는 기뻐서 울다가 잠이 깼지. 이것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내 비밀을 설명해 줄 거야. 나는 천국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에드거 린튼과 꼭 결혼한 필요도 없는 거지. 저 방에 있는 저 고약한 사람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던들 내가 에드거와 결혼하는 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나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지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넬리,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되어 있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거고, 린튼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 서리와 불같이 전혀 다른 거야." (133)

 

 

캐시는 넬리에게 일종의 연애 상담을 한다. 넬리는 아주 현명하고 능숙한 상담사처럼 캐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절한 질문을 하고 캐시의 선택이 옳지 않음을 일깨워주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내가 넬리였다면 캐시의 선택을 말리지 않았을 것 같다. 둘의 대화를 읽어 보면 캐시의 선택이 아주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캐시가 지금까지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말썽을 일으켜 왔지만 이제 결혼할 나이 정도가 되었다면 철이 들고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히스클리프와 황무지를 뛰어다니며 자기 멋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캐시는 힌들리가 사악하다고 했지만 그녀도 힌들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단지 캐시는 남에게 폭력이나 폭언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차이가 날 뿐, 두 사람 모두 자기 멋대로 사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힌들리 주변이 항상 폭풍 속에 있지 않은가. 캐시는 정신 차리고 이제 천국으로 가서 고상한 삶을 살기로 한 것인데, 넬리는 반대한다. 캐시가 린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지만 캐시가 린튼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캐시는 린튼도 사랑하고 히스클리프도 사랑한다. 린튼은 사랑스러운 남자이기도 하다. 

 

"아, 에드거, 에드거!" 아씨는 서방님의 목덜미를 덥석 껴안고 헐떡이며 말하는 것이었어요. "아, 에드거, 여보! 히스클리프가 돌아왔어요. 정말 그 사람이에요!" 그렇게 말하면서 껴안은 팔을 쥐어짜듯이 죄었어요.
"그래그래." 서방님은 짜증이 난 듯이 외쳤어요. "그렇다고 내 목을 조르진 마오! 그 사람이 그렇게 중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한 적 없소. 그렇게 미칠 필요는 없잖소!"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어요." 아씨는 기쁨을 약간 억누르면서 대답했다."하지만 나를 위해서 이제는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야 해요. 올라오라고 할까요?" (156)

 

캐시(캐서린의 애칭)는 히스클리프를 자기 자신이라고 여긴다. 자기 자신의 영혼이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것이라고. 그래서 에드거와 히스클리프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히스클리프는 캐시 자신이니까. 히스클리프는 캐시의 또 다른 자아이다. 에드거와 결혼해서 품격 있는 삶을 사는 하나의 자아가 있다면 들판을 뛰어다니는 야생마 같은 자아는 캐시에게 억압된 자아이다. 그 자아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히스클리프가 캐시의 숨겨진 자아이고 더 원초적인 자아인 것 같다. 억압된 자아가 돌아왔을 때 캐시는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에드거는 캐시의 또 다른 자아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이다음부터는 다 죽는 이야기다. 

 

결국은 사랑이 모든 것을 다 파괴한다. 히스클리프에게 복수심을 처음 심어준 것은 힌들리였지만, 그 복수심을 활활 타오르게 한 사람은 캐서린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식었다면 복수는 중간에 멈췄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캐서린은 돌아온 히스클리프에게 자신의 애정을 드러낸다. 애정이 식어 있었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히스클리프도 사랑이 식지 않는다. 심지어 캐서린이 죽었는데도 캐서린의 향한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결국 사랑이 다 죽인다. 

 

뭐야, 사랑은 좋은 거 아니었어? 폭풍의 언덕... 우리를 대혼란에 빠뜨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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