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나

[철학하나] 하이데거의 "빠져 있음"

설왕은 2023. 2. 22. 07:12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제38절 빠져 있음과 내던져져 있음 (이종만 옮김, 까치, 1998) p.240-246

 

인간은 거기있는 존재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Dasein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말로는 현존재라고 번역한다. 이 한 문장을 쓰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드는 것은 일단 하이데거가 말하는 Dasein이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이라는 말은 독립된 개인을 의미하는 말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그래서 그런지 하이데거는 인간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Dasein이라고 쓴다. Dasein은 거기 있는 존재이다. 개별 존재가 아니라 세계 속에 있는 존재이고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존재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현존재에서 '현'은 지금을 의미하는 것인데 Dasein의 Da는 거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딱 들어맞는 번역이라 할 수 없다. 

 

인간은 거기에 있으므로 어떤 상황 속에 놓여 있게 된다. 거기는 진공 상태가 아니다. 거기에는 일단 사람들이 있고 사물도 있고 자연도 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인간이 본래적인 자기존재가능에서부터 떨어져 나와 세계에 빠져 있다고 표현한다.(Sein und Zeit, 175) 빠져 있다는 표현이 부정적인 표현인 것 같지만 하이데거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냥 Dasein이 세계 곁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는 식의 의미는 아니다. Dasein에게는 본래성과 비본래성이 있는데 빠져 있다는 것은 비본래성의 성격을 가진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빠져 있는 상태에 있는 Dasein은 그 상태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본래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비본래성은 '더 이상 세계 안에 있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는데, 그것은 비본래성이 바로 탁월한 세계-내-존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Sein und Zeit, 176)

 

빠져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부정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Dasein은 어디에 빠져 있는 것일까? 하이데거는 세 가지를 제시한다. 잡담, 호기심, 애매함이다. 이 세 가지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는지 좀 의문이지만 하나씩 따져 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그중에서 제일 이해하기 쉬운 것이 잡담이다. 잡담할 때를 떠올려 보면, 잡담하는 시간은 Dasein의 가능성이 극대화되거나 독립된 개인으로서 가능성이 실현되는 시간이 될 수 없다. 사소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시간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기에 빠져 있을 수 있다. 

 

잡담은 서로 함께 있음 자체의 존재양식이며, 현존재에 대해서 '밖에서부터'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일정한 형편에 의해서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존재 자신이 잡담과 공공의 해석되어 있음 속에서, '그들' 속에 자신을 상실하여 지반 없음에 빠져버리게 되는 가능성을 자기 자신에게 제공한다며, 이것은 현존재가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빠져 있음에의 유혹을 마련하고 있다는 말이다. 세계-내-존재는 그 자체로 유혹적이다. 

 

빠져 있음이 주는 장점이 있다.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고 단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Dasein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Dasein은 '그들' 속에 있으면서 그들과 말을 나누면서 또한 호기심과 애매함 속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괜찮다고 느끼거나 또는 최상의 상태에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빠져 있음은 안정감을 준다. 하이데거는 "세계에 빠져 있음은 이제 휴식을 모르게 된다"고 말한다. (SuZ, 178) 잡담 속에 빠지게 된다는 것은 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이러한 사소한 시간들을 즐기면서 여기에 오히려 탐닉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안정은 유혹이다. 이러면서 Dasein은 그 자신의 고유한 존재가능성을 실현하려는 욕망을 잃어버린다. 

 

이와 같은 인간의 빠져 있음의 상태는 하나의 존재 양식이다.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본재적 존재 양식과 비본래적 존재 양식이 있는데 빠져 있음의 상태에 있는 것은 비본래적 존재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와 같은 빠져 있음의 상태를 "추락" 또는 "소용돌이"라고도 표현한다. Dasein은 빠져 있음의 상태는 휘말려 있는 상태로 생각보다 빠져 나오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본래성으로부터 부단히 이탈하면서도 언제나 본래성인 것처럼 속이는 것은, '그들' 속으로 쓸려들어감과 함께 빠져 있음의 움직여 있음을 소용돌이로 성격 짓는다. (SuZ 178)

 

 

다시 말하지만 빠져 있는 인간의 상태는 좋거나 나쁘다고 하는 가치 판단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일종의 존재 양식이다. 그냥 Dasein이 어떤 상태인지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 이것이 축복이나 저주의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빠져 있음이라고 표현함으로써 하이데거는 인간이 이 상태를 빠져나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빠져 있음은 일종의 존재론적 움직임의 개념이다. 과연 인간이 '죄에 빠져서' 타락상태에 있는지, 완전함의 상태에서 거닐고 있는지, 아니면 중간단계, 즉 은총의 상태에 처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존재적으로는 결정될 수 없다. (SuZ, 180)

 

정리하면, 인간은 그들 속에 빠져 있음으로 인해서 그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실현할 기회를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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