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황순원 "소나기"_기억하고 싶은 세 문장

설왕은 2022. 12. 11. 01:01

1953년 "신문학"에 발표된 황순원의 단편소설이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교과서에 실린 소설이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매우 좋아했던 소설이고 한국 대표 단편 소설이라고 하면 첫 번째로 꼽을 정도로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대강의 줄거리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 읽어볼 시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글 좋은 영화 좋은 그림 좋은 음악은 다시 보고 들어도 좋은 것 아닌가. 그런데 다시 잃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이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좋은 느낌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가치를 깨닫고 나서 좋은 소설을 찾아서 읽고 싶었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다. 소설은 참 많은데 좋은 소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은 뿌리가 있는 소설이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 메시지는 하나의 작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모든 작품에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설교하는 방식으로 막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툭 던져 놓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을 좋아한다.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 자체로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철학이나 메시지 없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려고만 하는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글들이 많아서 미간이 찌푸려지는 글이 적지 않다. 황순원 작가의 글에는 철학과 메시지가 있고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있다. 문장도 군더더기가 없고 물 흐르듯이 흘러가고 억지로 꾸미거나 잘난 척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나는 잔망(孱妄)스럽다는 단어를 "소나기"외에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다. 잔망스럽다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잔망스럽다는 세 가지를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1」 보기에 몹시 약하고 가냘픈 데가 있다.

「2」 보기에 태도나 행동이 자질구레하고 가벼운 데가 있다.
승재는 그 자리에서 잔망스럽게 따지고 노하지 않을 만큼의 여유를 확보할 수가 있었다.≪박완서, 미망≫

「3」 얄밉도록 맹랑한 데가 있다.
그런데 참, 이번 계집애는 어린것이 여간 잔망스럽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황순원, 소나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세 번째 뜻으로 "얄밉도록 맹랑한 데가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예시로 "소나기"의 이 문장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이 뜻이 과연 맞는 것인지 의문이다. 소나기에 나온 소녀는 얄미운 구석은 없는 것 같다. 잔망의 중국글자를 봐도 잔약할 잔에 망령될 망을 쓰고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 얄밉다는 뜻이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얄밉도록 맹랑한 데가 있다보다는 약하지만 맹랑한 데가 있다는 뜻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는 열이틀 달이 지우는 그늘만 골라 짚었다. 그늘의 고마움을 처음 느꼈다. 

 

 

소년이 소녀를 위해서 호두 서리를 한 후에 호두를 주머니에 가득 담고 돌아오는 길을 이렇게 표현했다. "열이틀 달"이라는 말은 달이 차지 않아서 어두웠다는 뜻으로 쓴 것 같다. 달이 차지 않았다는 말은 그믐달이나 초승달이었다는 뜻인 것 같은데, 그렇게 쓰지 않고 열이틀 달이라고 쓰고 있다. 황순원 작가가 쓰는 표현인지 아니면 그 당시 보통 사람들이 쓰던 표현인지 잘 모르겠으나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참신한 표현이다. 나는 달의 위상 변화를 찾아보았다. 열이틀 달이라면 음력으로 12일이 되는 달일 것 같다고 생각하고 달의 위상을 보았는데 음력 12일에는 거의 보름달에 가까운 달이기 때문에 어두운 달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내 생각에 열이틀 달은 보름달이 되고 난 이후에 12일째 되는 날의 달인 것 같다. 보름달일 때는 저녁 6시에 떠서 아침 6시에 지고 달이 뜨는 시각은 날마다 다르다는 사실도 처음 인지하게 되었다. 아마 중고등학교 때 배웠을 것 같은데 인지하지 못했다. 그때는 음력 27일로 그믐달이고 달이 늦게 뜰 뿐만 아니라 달의 크기도 작아진다. 그믐달은 새벽에 뜨기 때문에 소년이 음력 27일에 호두 서리를 했다면 달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달의 위상까지 찾아보고 추리를 했다. 흥미로운 표현이다. 옛날 사람들은 현대인들보다 자연에 대한 관심이 훨씬 많고 자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산이 가까워졌다. 단풍이 눈에 따가웠다. 

 

 

가을이 되면 세상이 참 아름답다. 꽃이 피는 봄도 세상이 아름답지만 가을의 아름다움은 애틋함이 있다. 봄에 피는 꽃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령이고 이제 세상은 더 활기가 넘칠 거야라고 알려주는 것 같아서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하지만 가을의 단풍은 이제 공연이 다 끝나고 무대의 커튼이 내려갈 거야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공연의 절정과 결말 부근에서 느끼는 느끼는 완성도 높은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곧 끝날 공연에 대한 아쉬움과 혼신의 열정을 다 불어넣어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떨어지게 될 나뭇잎에 대한 애틋함이 생긴다. 그러니까 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말을 찾기가 어렵다. 단풍이 예쁘다, 단풍이 곱다는 말보다 좀 더 자극적인 말이 필요하다. 황순원 작가는 "단풍이 눈에 따가웠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맘에 드는 표현이다. 자극적이면서 느낌이 오는 말이다. 

 

* 2022년 12월 12일에 정리해 본 황순원의 "소나기" 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 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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