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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_의미와 소리를 결합한다

설왕은 2022. 7. 26. 06:35

이 책은 노암 촘스키가 쓴 인간론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에 읽으려고 빌렸다가 초반 부분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한 내용이어서 한꺼번에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는데 다시 빌려서 보았다. 중간에 그만두었던 이유는 언어학에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데 영어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잘 와닿지 않았고 왜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언어란 무엇인가?

2. 우리는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

3. 공공선이란 무엇인가?

4. 자연의 신비: 얼마나 깊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1장과 4장이 흥미로웠고 3장은 왜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좀 따로 노는 장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촘스키의 답변은 명료하다. 인간은 언어를 가진 존재이다. 그게 인간이 가진 가장 독특한 특징이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논거로 든다. 대표적으로 찰스 다윈의 언급을 옮겨 적고 있다. 

 

"인간이 하등 동물과 다른 유일한 점은 대단히 복합적인 소리를 생각과 결부시키는 능력이 거의 무한정 크다." (43)

 

이안 태터설에 따르면 인간이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5만~10만 년 전에 불과하다. 인간을 인간으로 부를 수 있는 이유가 언어라고 한다면 인간이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된 5만~10만 년 전에 인간이 처음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지구에 나타난 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인간의 독특성은 소리를 낸다는 특징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의미를 가진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소리를 생각과 결합시키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자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촘스키는 튜링 테스트도 언급한다. 튜링 테스트는 사람이 자신이 대화를 나누는 존재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하는 테스트이다. 만약에 사람이 인공지능과 대화하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대화 상대자가 사람이라고 판단한다면 그 인공지능은 진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제안된 것이 튜링 테스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의 이름을 의식이라고 부르든 아니면 정신이라고 부르든 그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언어이다. 그런 면에서도 언어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촘스키는 언어학자답게 언어의 구조에 관심을 갖는다. 그가 질문을 제기한 언어 구조는 다음 문장에 나타난다. 

 

Instinctively, eagles that fly swim. 
본능적으로, 나는 독수리가 헤엄을 친다. 

 

 

촘스키는 instinctively가 멀리 떨어져 있는 swim을 수식하는 것에 주목한다. 

 

언어는 이처럼 직선상의 최소 거리라는 훨씬 단순한 전략을 절대 사용하지 않고 구조상의 최소 거리라는 특성을 활용한다. 지금 살펴본 문장이나 다른 많은 경우를 보아도 언어 설계에서 처리상의 편의는 무시된다.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언어 규칙은 언제나 '구조 의존적'이며 선형적인 순서를 무시한다. 문제는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느냐이다. 영어만이 아니라 모든 언어가 그러하며, 이 한두 문장만 그런 것이 아니라 폭넓게 다양한 문장 구조가 그렇다는 점이 수수께끼다.  (54-55)

 

전에 읽을 때 나는 이 부분에서 좀 길을 잃었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요점을 파악하지 못했다. 다음 부분에 언어 구조에 관련한 설명이 더 나오는데 아마도 인간이 가진 언어 능력의 신비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언어학이 낯선 나에게는 이런 구조적 설명이 다소 어려웠다. 

 

언어에 대한 다음 설명도 흥미로웠다. 

 

우선 언어가 목적을 갖는다는 생각 자체가 이상하다. 언어는 인간이 설계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물학적 실체다. 시각 계통이나 면역 계통, 소화기 계통과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이따금 이런 기관도 기능이 있다거나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 때가 있지만, 그 또한 명확한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이 언어를 말하기 위해서 입이 생기고 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이 발달했을 것도 같은데 촘스키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보기 위해서 눈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다. 눈이 있어서 그냥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의 목적은 보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보는 것은 눈의 기능이지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눈은 대화할 때 서로 상대방이 응시할 곳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생긴 것일 수도 있고 보기 좋게 하려고 생긴 것일 수도 있다. 매우 진화론적인 시각이기는 하지만 일리가 있다. 입과 소리를 내는 기관이 있어서 말을 할 뿐 말을 하기 위해서 신체 기관이 발달한 것이 아니라면 언어 자체도 생물학적 현상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현상을 가지고 어떤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는 더 심오한 문제이다. 

 

또 재밌는 사실. 인간의 신체에서 뇌와 가장 비슷한 기관은 무엇일까? 촘스키는 '장-뇌'gut brain을 거론한다. 장에는 신경을 통합하고 처리하는 신경계가 있고 그 구조와 성분 세포를 분석해 보면 두뇌와 가장 유사한 기관이라고 한다. (84)

 

대신에 의식으로 범위를 제한하지 말고 넓은 의미의 신비주의로 돌아가, 그것을 자명한 이치로 간주하자. 나는 우리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미스터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중에는 앞세 언급한 것처럼 꽤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다. 아마도 인간에게는 영원한 미스터리일 것이다. (97)

 

그러나 침팬지는 인간과 수년간 훈련하고 소통한 뒤에도 근본적인 유형의 차이를 인식하는 감수성을 절대 드러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놀랍게도 침팬지에게는 정말로 '사물의 이름'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느슨한 연관성이 뒤죽박죽 얽혀 있을 뿐이다. (102-103, 로라 앤 페티토 재인용)

 

특히 테카르트는 '사유하는 것'의 작동 원리를 인간의 이해력으로는 알 수 없다고 추정했다. 그는 우리가 정신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만큼 "충분한 지적 능력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정신이 작동하는 핵심 사례로 일상적인 언어 사용의 창조적인 면을 들었다. 언어는 짐슴과 기계에는 없지만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능력이며, 상황에 맞게 언어를 적절히 사용하더라도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176)

 

프리스틀리는 나중에 이런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내 생각에 뇌가 '생각을 한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뇌가 '희고' '부드럽다'고 판단하는 이유와 똑같다."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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