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책] 유진 피터슨 "그 길을 걸으라"_영성이란 무엇인가?

설왕은 2022. 6. 9. 09:00

"그 길을 걸으라"는 유진 피터슨이 쓴 영성 시리즈의 책 중 세 번째 책입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1부는 "예수님의 길"이고 제2부는 "다른 길들"입니다. 1부에서는 예수를 비롯한 성경 속 위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설명하고 있고 2부에서는 신앙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총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제1부는 7개의 장, 제2부는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의 제목이 "예수님의 길"이지만 예수의 삶에 대한 설명은 1장에서만 다루고 있고 나머지 장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엘리야, 이사야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분량으로 보면 두 장에 걸쳐 다루고 있는 이사야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제사장보다는 예언자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예언자들의 삶이 "예수님의 길"이라는 주제에 더 잘 부합하겠죠. 그리고 2부에서는 헤롯, 가야바, 요세푸스가 어떻게 살았는지 서술하고 있습니다. 2부를 굳이 붙여야 했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예수님의 길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대조하기 위해서 대표로 세 사람을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글을 읽을 때마다 세세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쉽게 쓰는 데 재주가 있다고 느끼곤 했습니다. "그 길을 걸으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벼운 신앙 서적보다는 어느 정도 학문적인 내용도 다루면서 깊이 있는 해석을 원하는 독자에게 좋은 책입니다. 특별히 영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좋은 책이고요. 어떤 책은 신앙 서적으로는 참 좋은데, 신학을 배운 사람이 볼 때는 틀린 내용을 다루고 있거나 너무 수박 겉핥기식의 내용인 책이 있거든요. 유진 피터슨이 쓴 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학을 배운 사람이 봐도 동의하고 공감하고 자세하게 읽고 마음에 새길 만한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책은 평신도를 위한 신앙 서적과 신학생을 위한 신학 서적의 중간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평신도에게도 또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저는 특별히 예언자들의 삶을 좀 더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었고, 역사가로만 알고 있던 요세푸스가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책입니다. 사실 이런 내용들은 인터넷으로 찾아서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공부해야 알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 책은 '길'에 주목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Jesus said to him,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NRSV) 

 

 

여기서 '길'은 진짜 '길'road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죠. 영어 성경에서도 보면 way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물리적인 길road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여기서 '길'은 방법 또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요구한 것은 예수가 살았던 삶의 방식대로 살으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삶을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어떤 면에서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예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모범,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예수가 취한 '삶의 방식'입니다. 달리 말하면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에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약어인 WWJD (What would Jesus do?, 예수라면 무엇을 하겠는가?)는 사실 그다지 정확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오히려 "예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24)

 

유진 피터슨은 자크 마리탱Jacques Maritain도 인용합니다. 

 

남다른 선견지명으로 날카롭게 예언자의 목소리를 낸 20세기의 현인 자크 마리탱은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로 한 모든 사람에게 "수단을 정결케 하는 일"에 깨어 있고 적극적이 되라고 촉구한다. (17)

 

예수가 보여 주었던 삶의 방식은 독특한 것이기는 했지만 완전히 맥락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가 걸었던 길과 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그 맥락을 보여 주기 위해서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엘리야, 이사야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데 어울리고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들어맞는 방법을 분별하는 일은 늘 우리에게 벅찬 요구였다. 그래서 성경 저자들은 ‘길’이라는 은유를 그토록 자주 사용한다.” (그 길을 걸으라, 58)

 

저는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엘리야, 이사야 중에서 예수의 길과 가장 비슷한 길을 걸었던 사람은 이사야라고 느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스스로도 큰 부를 이루었고 믿음의 조상으로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수백만 명을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킨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왕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해서 극적인 승리를 연출해 낸 능력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광채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해준 말 중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써먹는 말이라고는 "너는 설교하겠지만 사람들은 못 알아들을 것이다"라는 말이죠. 그는 좋은 설교자였지만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지 못하는 설교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이사야는 참 열심히 설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사야와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는데 바로 '거룩'입니다. 그래서 6장의 제목이 "예루살렘의 이사야: 거룩"입니다. 

 

“거룩하신 분 하나님의 감당할 수 없으나 억제할 수도 없는 생명은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주변에 언제나 현존하면서도 숨어 있다. 언제일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하게 그 생명은 때때로 밖으로 분출되어 우리의 인식 속으로 들어온다. 덤불이 불타고, 하늘이 열리고, 성전이 흔들리고, 그루터기에서 푸른 새싹이 나온다. 거룩, 거룩, 거룩.” (그 길을 걸으라, 265)

 

거룩의 침투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루터기에 나온 푸른 새싹,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그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입니다. 이사야의 삶은 사람들의 호응도 없고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성공이라고 볼 수 없고, 어떻게 보면 공허한 '말'만 외친 사람이었지만 결국 그의 말은 씨가 되어 싹이 나왔는데 바로 그 싹이 예수입니다. 예수가 살았던 삶이나 이사야가 살았던 삶이나 비슷합니다. 성공할 수 없는 목표를 말하며 전진하는 삶이죠. 그들이 가진 목표는 현실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허황된 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꿈을 향해서 용기 있게 걸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유진 피터슨은 이렇게 언급하기도 합니다. 

 

내 생각에 내가 가장 먼저 눈치 채게 되는 사실은, 내가 예수님을 따르게 됨과 동시에 관계의 세계 속에 던져지게 되었다는 사실일 것 같다. 실제의 사람들과 하나님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러나 은은하게 빛나는 거미줄과 같은 관계의 망 속에 내가 던져졌다는 사실이 가장 눈에 뜨일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게 됨으로써, 나는 크기와 숫자, 거대하고 아름다운 빌딩, 유명한 신들과 로마의 유명 인사들과 호화로운 광경들, 소음과 폭력과 군중의 세계를 떠나, 개인의 이름들이 있고, 인격적 만남, 인격적 대화, 인격적 모임이 있고, 인격적인 하나님이 계신 훨씬 더 소박하고 조용한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375)

 

위의 문장들을 보면,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별것이 아닙니다.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이름을 물어보고 그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들에게 나의 이름을 말하고 내가 겪었던 일들을 전하는 것이죠. 서로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슬퍼할 일이 있으면 같이 울고 기뻐할 일이 있으면 같이 웃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이 전하는 예수의 길은 소박한 우리의 삶을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죠. 

 

책이 꽤 두껍습니다. 500쪽이 넘습니다. 책에 나온 세세한 내용은 기억을 하지 못하더라고 제목을 잘 기억하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을 걸으라"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영성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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