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단편소설

[세계단편소설] 에드거 앨런 포 "도둑맞은 편지"_무의식은 타자의 욕망이다

설왕은 2022. 3. 28. 09:00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는 매우 독특한 소설가입니다. 미국 소설가 중 처음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라고 하는데, 살아 있을 당시에는 별다른 명성을 얻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소설은 다른 소설과는 참 달랐거든요. 그의 대표 소설 중 하나가 "검은 고양이"라는 소설인데 마치 괴담이나 무서운 이야기 같은 소설입니다. 개연성이 없는 듯한, 달리 말하면 그럴듯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에는 외면받았을 것 같습니다. "도둑맞은 편지"도 매우 독특한 형태의 소설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랬다는 것입니다. 추리소설의 효시격인 소설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셜록 홈스 이야기나 다른 추리 소설들이 나타나기 전에 에드거 알렌 포가 이런 소설을 쓴 것입니다. 

 

 

* 첫문장

18xx년 가을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날 밤이었다. 

 

* 줄거리

소설의 화자인 나는 뒤팽의 친구로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입니다. 홈즈의 친구인 의사 왓슨이 생각나죠. 두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경시총감 G가 나타납니다. 미결 사건을 상담하기 위해서 온 것이죠. 그 사건은 도둑맞은 편지를 찾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편지를 공공연하게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편지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매우 곤란해지는 사람이 있거든요. 바로 이 사건을 의뢰한 여인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누가 가지고 있는지도 확실합니다. 장관 D입니다. 경찰은 비밀리에 장관 D의 집을 뒤지고 심지어 강도로 위장해 장관 D의 몸까지 수색하지만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뒤팽의 도움을 받으러 온 것이지요. 

 

좀 더 자세한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궁중의 어떤 부인이 내실에 혼자 있을 때 편지를 하나 받습니다. 그 편지를 받자마자 부인은 편지를 읽고 있었는데 그때 고위 관리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부인은 편지를 감추기 위해 중요하지 않은 서류인 것처럼 책상에 던져 놓고 손님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D장관이 들어왔고 D는 편지를 보자마자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똑같이 생긴 봉투를 꺼내 읽는 척하다가 편지와 바꿔치기를 합니다. 부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고급 관리가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죠. D는 그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용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합니다. 궁중에서는 그 편지를 되찾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경찰에게 비밀리에 의뢰합니다. 

 

G는 세 달 동안 D의 집을 뒤졌다고 말합니다. G의 명예도 걸려 있고 현상금도 두둑했기 때문입니다. 뒤팽은 G의 수사 방법을 자세하게 물어봅니다. G는 샅샅이 조사했다고 말하죠. 쿠션도 바늘로 찔러보고 가구의 치수도 재어 보고 책장 위에 덮은 목재까지 뜯어보고 모든 책의 페이지를 열어 보았다고 말합니다. 정말 철저하게 조사를 했다는 것을 강조해서 설명합니다. 뒤팽은 G에게 편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하게 물어봅니다. G는 떠나고 한 달 뒤에 다시 찾아옵니다. 여전히 편지의 행방은 오리무중의 상태였죠. G는 그 편지를 자기에게 주는 사람에게 지금이라고 당장 5만 프랑의 수표를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뒤팽은 그 수표를 주면 자신이 그 편지를 주겠다고 말하죠. 뒤팽은 D장관의 집에 가서 그 편지를 찾아냈던 것입니다. 

 

 

* 자크 라캉과 도둑맞은 편지

제가 이 작품을 알게 된 것은 추리 소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자크 라캉이 "에크리"에서 언급한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라캉은 "도둑맞은 편지"를 통해서 인간의 무의식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무의식은 "타자의 욕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무의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는 말이 좀 모호한 면이 있습니다. "타자의 욕망"이란 타자를 욕망한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는 것일까요? 제가 볼 때는 두 가지 의미가 다 있습니다. 라캉에 따르면 무의식은 타자를 욕망하기도 합니다. 라캉은 인간의 무의식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망으로 가득하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인간 무의식의 본질이라고 말하죠. 그러니까 좀 더 단순하게 말하면 '타자의 욕망'은 타자 자체를 욕망한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타인이 갖고 싶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즉 타자가 욕망하고 있는 것을 갖고 있으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타자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도둑맞은 편지에서는 편지가 사람들의 무의식을 형성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궁중 여인에게 편지는 욕망의 대상입니다. 가지고 싶은 것이죠. 그런데 고위 관리는 그 여인이 그런 편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를 욕망합니다. 여인은 그 고위 관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그런 편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척합니다.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척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장관 D가 그 편지를 가져갑니다. 갑자기 귀부인에게 장관 D는 중요한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이 가지고 싶은 편지를 장관 D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귀부인은 총시경감 G를 고용합니다. 총시경감 G는 갖은 수를 동원해서 그 편지를 찾으려고 합니다. 편지를 찾아야 그 여인에게 인정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편지를 못 찾고 뒤팽에게 상의를 합니다. 뒤팽이 총시경감 G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그 편지를 찾아야 합니다. 사실 편지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인정을 받거나 그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 편지를 차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라캉은 인간의 무의식이 '타자의 욕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에드거 알렌 포의 "도둑맞은 편지"를 이용합니다. 

 

에드거 앨런 포

 

* 작품의 재미와 가치

저는 귀부인이 편지를 잃어버리는 상황 설정이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편지를 훔쳐 가는 장관 D는 분명 도둑인데 몰래 훔쳐 갈 생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대놓고 내가 가져간다는 표시를 하면서 가져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야 장관 D는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그 편지를 이용해 그 귀부인에게 협박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또한 귀부인도 뻔히 자기의 것을 가져가는 도둑을 저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고위 관리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죠. 서로 간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몰래 일어나야 하는 도둑질이라는 행위가 이렇게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재미있는 상황 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자크 라캉의 흥미를 끈 것이겠지요. 

 

이 작품은 단편 추리소설입니다. 매우 잘 짜인 추리 소설에 비해서는 작품성이나 흥미도 면에서 다소 떨어지는 작품입니다. 그래도 이런 식의 추리 소설이 이전에는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서 코난이나 애거사 크리스티는 이 작품을 읽어 보았겠죠. 셜록 홈스의 기본 구성이 이 소설과 닮아 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리소설의 덕후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소설일 것 같고요. 아마도 덕후들이 더 잘 알겠지요? 그리고 심리학에 관심이 있다면 특별히 자크 라캉에게 관심이 있다면 읽지는 않더라고 내용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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