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단편소설

[세계단편소설] 폴 빌라드 "이해의 선물"_좋은 거 하나 배웠습니다

설왕은 2022. 1. 12. 18:10

아동 문학가이자 소설가인 폴 빌라드(1910-1974)가 쓴 단편소설입니다.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어릴 때 받은 배려가 배려인 줄 잘 몰랐는데, 내가 어른이 되어서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이 매우 사려 깊은 친절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매우 추상적인 줄거리 요약인데,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네 살쯤 위그든 씨의 가게에 가서 버찌씨를 내고 사탕을 사 먹었다. 위그든 씨는 버찌씨를 내고 돈이 모자랄 것을 걱정하는 나에게 돈이 남는다면 거스름돈을 내어주었다. 어른이 되어 결혼한 후 열대어 가게를 연 나는 어린 남매가 들어와서 값비싼 열대어를 고른 후 겨우 20센트를 냈다. 그때 나는 위그든 씨가 나에게 했던 행동을 기억하고 그 남매에게 거스름돈을 주었다.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에 대해 따지는 아내에게 나는 위그든 씨가 나에게 베풀어 주었던 친절을 이야기해주자 아내는 나의 행동을 이해해주었고 나는 위그든 씨를 회상하며 기쁨을 느꼈다.

 

 

아동 문학가여서 그런지 아이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작품입니다. 아마도 자신이 어렸을 때 느꼈던 감정들을 섬세하게 기억해서 묘사한 것 같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심리를 세세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죠. 아무래도 아직 표현력이 부족하니까요. 그러나 그때 감정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잘 기록할 수 있다면 이와 같은 소설이 나올 수 있겠죠. 

 

많은 사탕 중에서 딱히 하나를 고른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먼저 머릿속으로 어느 것 하나를 충분히 맛보지 않고는 다음 것을 고를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고른 사탕이 하얀 종이 봉지에 담길 때에는 늘 괴로운 아쉬움이 뒤따랐다. 다른 것이 더 맛있지 않을까? 더 오래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괴로운 아쉬움"이라는 표현이 참 찰떡같습니다. 소설 속의 '나'는 버찌씨를 내고 사탕을 사 먹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보통이라면 꾸지람을 받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일인데 사탕 가게 주인인 위그든 씨는 오히려 돈이 남는다면서 거스름돈을 건네주죠. 사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까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 '나'는 커서 열대어 장사를 하다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과거에 자신이 받았던 배려의 선물을 기억하고 자신도 같은 행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실천합니다. 

 

내 손 위에 올려진 그 동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 자신이 그 조그만 사탕 가게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옛날 위그든 씨가 그랬던 것처럼 두 어린이의 순진함과, 그 순진함을 보전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날의 추억이 너무나도 가슴에 벅차 나는 목이 메었다. 

 

 

오래전에 어떤 설문 조사 결과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는데 제일 많은 사람들이 대답한 '받고 싶은 선물'은 '감동'이었습니다. 위그든 씨가 소설 속 어린 나에게 준 것은 사탕이 아니라 감동이었죠. 그리고 열대어 가게 사장이 된 내가 어린 남매에게 선물한 것도 열대어가 아니라 감동이었습니다. 소설 속 '어린 나'는 선물을 받았을 당시에는 감동을 느끼지 못했지만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어릴 때 자신이 한 경험을 감동의 사건으로 소환하고 그 사건을 되풀이합니다. 빌라드는 소설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해받는 것이고, 이해받는 것이 곧 선물이지." 이해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감동을 느끼게 되죠.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비슷한 감동을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 소설의 제목은 "이해의 선물"일까요? 어울리지 않는 제목인 것 같습니다. 배려의 선물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원제를 찾아보았습니다. 번역의 문제이지 않을까 의심해서 그랬죠. 원제는 The Gift of Understanding이었습니다. 이해의 선물이 맞네요. 

 

사실 위그든 씨나 열대어 가게 사장이 된 '나'는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을 것입니다.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에게 정확한 가격을 알려 주고 현실을 깨닫게 해 주었을 수도 있고,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을 수도 있고, 아이가 낸 돈만 받고 거스름돈은 안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소설을 읽는 유익함 중에 하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좋을지 미리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소설 속 주인공들을 따라 할 수도 있죠. 오늘 좋은 거 하나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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