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단편소설

[세계단편소설] 알퐁스 도데 "마지막 수업"_중요한 것은 결국 눈에 보인다

설왕은 2022. 1. 10. 09:00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마지막으로 프랑스어 수업을 받게 된 한 어린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인해서 프랑스 국경 지방이 프로이센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그 지역에는 프랑스어 수업이 전면 금지되고 독일어 수업만을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모국어인 프랑스어 수업을 마지막으로 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재밌는 소설은 아니죠. 슬픈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고등학교 때 이 소설을 교과서에서 읽은 것 같습니다. 중학생일 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모국어를 배우는 '마지막 수업'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슬픔의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잘 몰랐고, 무엇보다도 어려서 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시 했던 무시무시한 짓거리 중 하나는, 시험 기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좋겠다고 상상하고 친구들끼리 농담 삼아 그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공부가 힘들고 시험이 싫어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그때 당시는 그랬습니다. 정말 철이 없었던 거죠. 

 

그래도 이 소설을 읽을 때 제목에서 비장함을 느끼기는 했습니다. 마지막이라니까 학생에게는 징그럽게도 싫은 '수업'이라는 것에도 진지한 자세를 갖고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역시나 큰 울림은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 시대에 한국어를 마지막으로 배우게 되는 날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 보았고, 그날의 수업이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과 비슷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정도는 했습니다. 

 

나이 들어서 그래도 어릴 때보다 철이 든 시기에 "마지막 수업"을 읽어 보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말이죠. 마지막 수업은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그날 나는 지각을 했다. 게다가 아멜 선생님이 분사법에 관해 질문하겠다고 하셨는데,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망을 들을까 봐 꽤 겁이 나 있었다. 차라리 학교에 가지 말고 벌판이나 돌아다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몰랐는데, 꽤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습니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마지막 수업을 놓칠 뻔했으니까요. 만약 수업을 놓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지막 수업이라고 해 봐야 사실 그것 역시도 수업 한 번인데 그것을 놓친다고 해도 아주 큰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생은 긴데 그 긴 인생에서 수업 시간을 하나 놓친다고 무슨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수업이 강요된 마지막 수업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은 모국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 자세를 마지막 수업을 통해서 배웁니다. 그래서 소설 속 '나'는 이 마지막 수업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된 계기는 사람들이 모국어인 프랑스어 수업에 대해서 이 '마지막 수업' 시간에 최대한 예의를 갖추었기 때문이었죠.

 

두려운 마음이 가시고 나니 선생님이 푸른 프록코트 차림에 가슴에는 주름 잡힌 장식을 달고, 수놓아진 검은 비단 모자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장학관의 시찰이 있거나 시상식이 있을 때에만 입는 예복 차림이었다. 교실 전체에 여느 때와 다른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가장 놀란 일은 평소에 비어 있던 교실 안쪽 의자에 마을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사람들은 최대한 예의를 갖춥니다. 마치 정말 훌륭한 사람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서 장례식장에 참여하는 것처럼 말이죠. 아멜 선생님은 차분하게 그리고 비장하게 수업을 진행합니다. 학생들에게 부족함이 있더라도 화내거나 혼내지 않고 정성 들여서 수업을 합니다. 일분일초라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 정돈된 자세를 유지합니다. 제가 "마지막 수업"을 다시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정말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우리는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습니다. 아마도 정답은, '예의 바르게'가 아닐까요?

 

어렸을 때는 어린 왕자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왕자가 그렇게 말하죠.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요. 그럴 수도 있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중요한 것은 결국 눈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중요하죠. 아마 제일 중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랑이 눈에 보이지 않나요? 정말 눈에 보이지 않나요? 아닙니다. 몰래 하는 짝사랑도, 들키면 창피할 것 같아서 최대한 숨기고 하는 짝사랑도, 결국은 눈에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눈에 보입니다. 탈무드에 나온 말이죠. 숨길 수 없는 세 가지. 재채기, 가난, 그리고 사랑입니다.  모국어를 사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결국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아멜 선생님과 마을 사람들은 프랑스어에 대한 자신들의 마음과 자세를 그들의 옷차림과 행동으로 보여 줍니다. 또한 말로도 표현합니다. 

 

 아멜 선생님은 곧이어 프랑스어에 대해 말했다. 즉 프랑스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명징한 말이므로 우리가 잘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겨레가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될지라도 자기 나라의 언어만 잘 간직하면, 마치 감옥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였다. 

 

 

마지막 수업을 읽으며, 저는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마지막으로 대하는 순간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철없을 때 읽었던 소설들을 다시 읽는 재미가 솔솔하네요. 안 보였던 것들이 보입니다. 역시나 중요한 것은 결국 눈에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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