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단편소설

[세계단편소설] 알퐁스 도데 "별"_아름다운 밤이에요

설왕은 2022. 1. 5. 22:39

 

 

알퐁스 도데의 "별"은 중고등학교 다닐 때 다들 읽어 본 소설입니다. 그때에는 정말 지독하게도 아무런 감동이 없었습니다. 한 목동이 있고 그 목동은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아가씨를 좋아하죠. 그런데 정말 우연찮게 그 아가씨가 식량을 전해주기 위해 목동을 찾아옵니다. 아가씨는 식량을 전달하고 돌아가다가 물이 불어난 강을 건너지 못하고 물에 빠져 흠뻑 젖은 채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가씨는 목동의 처소에서 밤을 보내게 됩니다. 목동은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밖에 나와서 모닥불 옆에서 밤을 보내려고 합니다. 아가씨는 안에서 제대로 잠을 못 이루고 나와서 목동 옆에 앉습니다. 목동은 아가씨에게 별 이야기를 하고 그 와중에 아가씨는 목동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듭니다. 목동은 설레는 마음으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죠. 이런 이야기입니다.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지만 저는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너무 별일이 없어서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목동에게 식량을 전달하러 아가씨가 온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대단하게 특별한 사건은 될 수 없죠. 이 사건을 매우 시시하게 느꼈던 이유는 일회성 사건으로 끝날 것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목동은 아가씨를 좋아하고 아가씨도 목동에게 별다른 거부감이 없지만, 그게 다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하룻밤의 에피소드 같아서 너무 싱거운 이야기였습니다. 아가씨는 아마도 나중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 한 줄 감상평은 "그래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읽으면서 목동의 대답을 찾았습니다. 

 

보잘것없는 일개 목동인 나에게 이런 일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나는 스무 살이었고, 스테파네트 아가씨는 그때껏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그래서 목동은 아가씨에게 늘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가씨와 사귀어 보고 싶다거나 고백하고 싶다거나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관심이 가는 것을 막지 않은 것뿐이죠. 목동의 쓸데없는 것 같은 관심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목동에게 아가씨에 관한 질문을 받은 사람은 좀 귀찮았을 수는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것 자체가 목동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었을 것 같습니다. 별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아가씨에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보면 목동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만약 당신이 별을 바라보며 바깥에서 밤을 새워 본 적이 있다면, 사람이 모두 잠든 깊은 밤중에는 또 다른 신비로운 세계가 적막 속에 눈을 뜬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샘물은 훨씬 더 맑은 소리로 노래부르고, 못에는 자그마한 불꽃들이 반짝입니다. 온갖 산신령들이 거침없이 오락가락 노닐며, 대기 속에는 마치 나뭇가지나 풀잎이 부쩍부쩍 자라는 소리라도 들리듯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들, 그 들릴 듯 말 듯한 온갖 소리들이 일어납니다. 낮은 생물들의 세상이지요, 그러나 밤은 사물들의 세상이랍니다. 누구나 이런 밤의 세계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좀 무서워질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단입니다. 저는 밤을 새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하는 사람인데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이 문단을 보고 바깥에서 별을 바라보며 밤을 새워 보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목동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아가씨가 목동의 어깨에 기대여기대어 잠들었을 때 목동은 가장 가냘프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자신의 어깨에 내려앉아 잠들었다고 표현하죠. 아가씨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목동 곁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목동은 하늘의 별이 자신의 어깨 위로 내려와 하룻밤 잠을 잔다면 그게 왜 아무런 의미가 없냐고 되물어 볼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도 아가씨를 만날 기회조차 없었을지라도 스무 살 청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하룻밤을 쉬었다면 그것 자체가 참 아름다운 일이죠. 

 

다시 읽어 보길 잘 했습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느낌과는 사뭇 다르네요. 아름다운 밤이에요. 아름다운 밤을 가졌던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이 같을 수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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