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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내에서 형식적으로 허락된 여성의 자리, 혹은 진짜 발언권 대신 상징적 자리만을 지키는 여성 존재를 학술적으로 ‘토큰 여성’(tokens)으로 부르기도 한다. 실질적 가치보다는 상징적 가치, 기호로만 존재한다는 의미다. 토큰 여성으로 소비되는 여성의 수가 조금 더 늘어난다고 해서, 실제 여성의 목소리가 그만큼 잘 들리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본문 중)

 

신하영(세명대학교 교양대학 교육학 교수)

 

여러모로, ‘참 편리한 존재’

 

소위 ‘전문가’로 불리기 시작한 이후로 필자는 종종 지방자치단체나 공공 기관의 각종 위원회에 위촉되곤 한다. 특히 지자체의 각종 위원회는 시민들의 의견을 골고루 다양하게 수렴하는 기구이며, 비상임직이라도 엄연히 해당 기관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주는 자리라서 함부로 선임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이 위원회를 구성하는 실무자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최근의 제도적,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여 성별, 연령, 지역의 균형도 맞추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필자는 여러모로 실무자에게 ‘참 편리한’ 존재가 된다. 열 명 남짓한 위원회 구성원 중에 필자 한 사람을 끼워 넣으면 여성, 30대 청년, 지방 소도시(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은 지방에, 광역시가 아닌 소도시에 위치한다)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업 윤리상 사회봉사를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좋은 취지의 위원회 직을 수락할 때마다, 전화기 너머로나 혹은 이메일 행간에서 실무자의 ‘한 번에 여러 (분배의) 부담을 덜었구나’라는 안심을 느꼈다면 그건 너무 편한 대로 짐작하는 것일까.

 

 

여성의 대표성, 목소리의 크기와 토큰 사이

 

최근 정치 분야에서 여성 권익 운동의 가장 큰 흐름은 현실 정치에서 여성 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네거티브(라고 부르는 것도 너무 점잖게 느껴질 정도의) 정치가 이어지고 유권자들은 이름도 못 외우는 위성 정당들이 난립했다가 사라지는 등 정국 주도권에 사활을 걸다 보니, 체면치레라도 하던 여성 대표성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려난 듯 보였다.1) 지난 21대 총선에서 거대 양당이 내세운 여성 후보 비율 11.3%, 13.4%에 그쳤고, 이번 22대 총선의 상황은 역시나 더 나빠졌다. 전체 총선 후보 등록 결과 여성 후보자는 단 99명, 14.2%에 그쳤다. 이는 공직선거법 제47조 4항에서 지역구 후보에 여성 추천을 30% 이상으로 하라고 권하는 기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21대 19%, 22대는 20%이며. 이는 OECD 평균 33.9%에는 크게 못 미친다.2)

 

숫자가 채워지면 완전해질 것인가? 까마득해 보이긴 하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되는 여성 의원 30%를 확보하게 되면 정말 여성의 대표성이 담보될 수 있을까? 여러 위원회에서 필자 한 사람을 넣었다고, 할당된 다양성의 분량을 채웠다고 안심하는 현실을 생각해 보면, 어떤 자리에 우리가 여성을 ‘기용’하는 것은 오히려 ‘소비나 동원’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소비되거나 혹은 ‘그만큼의 다양성의 징표’로 자리를 허락받는 다른 이름은 장애인, 아동, 노인, 외국인 등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조직 내에서 형식적으로 허락된 여성의 자리, 혹은 진짜 발언권 대신 상징적 자리만을 지키는 여성 존재를 학술적으로 ‘토큰 여성’(tokens)으로 부르기도 한다. 실질적 가치보다는 상징적 가치, 기호로만 존재한다는 의미다. 토큰 여성으로 소비되는 여성의 수가 조금 더 늘어난다고 해서, 실제 여성의 목소리가 그만큼 잘 들리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 몇몇을 공천 후보군에, 위원회에, 기업의 이사진에, 관리자에 채워 넣는다고 해서 정당의, 조직의, 회사의 다양성과 포용성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불편하게 해 주자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위원회들에 참석하며 단순히 ‘토큰’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실무자는 그저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고, 필자는 그들이 기대하는 바대로 여러 소수자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한 위원으로서 문제없이 그 편리함만 완성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처럼 빨간 약을 먹고 이미 토큰으로 남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면?

 

아름답고 균형 잡힌 위원회의 N명 중 1에 그치는 토큰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 필자의 선택은, “이렇게 된 이상, 단순히 편리한 존재가 되지는 않겠다”라는 노선이었다. ‘토큰이 되느니 아예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 송곳-역자 주)가 되어 보자’라며 공연히 결기에 차서는 위원회의 심의·의결 사항 중에 조금이라도 다양성과 포용의 원칙에 어긋난다 싶거나 이해가 안 된다 싶으면 주저 없이 질문하고 의견을 낸다. 보통 이런 위원회들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다소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 안에서 필자는 불편하게 만드는, 더 정확하게는 회의를 길어지게 만드는 존재가 된다. 논두렁에 풀어둔 미꾸라지처럼, 여기저기서 “엥? 왜 그러는데요?” “원래 그런 게 어디 있나요?”라고, 해맑게 질문한다.

 

대표성이 필요한 자리에 여성을 불러다 놓고 실질적 역할을 기대하지도 않거나, 혹은 목소리를 내더라도 이를 묻히게 하는 경우는 앞으로도 꽤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토큰으로 부르든 ‘편리하게 자리를 채우려고’ 부르든 마다하지 않고 가서, 그 자리에서 힘껏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지우려는 사람들을, 오래된 관습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를 다양한 인간과 삶의 형태가 함께 번성할 수 있도록 바꾸어 온 것이 바로 그런 불편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1) 김은경, “2024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2024 한국YWCA 월간 1+2호」, 2024. 2. 27.

2) 이하나, 진혜민, “‘50대 남성’판 총선… 그래도 성평등 앞세운 여성 후보들” 「여성신문」, 2024.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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