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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수입의 십분의 일을 거룩한 용도로 드리는 것(창14:20; 28:22).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명시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모세의 율법은 두세 종류의 십일조를 이스라엘에게 부과하였다. I. 첫 번째 것은 각 사람이 자기 밭과 나무와 짐승 등의 소출의 십분의 일을 유대인들의 왕이요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레27:30-32). 이것은 신정국가의 백성이 내는세금으로 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일을 전담하는레위 사람들을 먹이는 데 사용되었고(민18:21-24)또 왕의 통치를 위해서도 사용되었으며(삼상8:15,17)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가의 오분의 일을 더해서돈으로 이 세금을 낼 수 있었다. 레위 사람들은 자기들이 받은 것의 십분의 일을 제사장들에게 바쳤고(민18:26-28) 이로써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의식주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었다.II. 두 번째 것은 신12:17-19, 22-29; 14:22-27에나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출의 십분의일을 하나님이 지정하신 곳 즉 예루살렘으로 가져가서 자기와 자기 가족과 레위 사람들을 위해 즐겁게먹어야 했고 거리가 멀면 물건으로 바꾸어서 가져가도 되었다.III. 세 번째 것은 신14:28-29에 나오는데 이것은3년 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십분의 일을 다시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신정 정치 하에서 매해 평균적으로 수입의 23.3%를 주님께바쳤다고 할 수 있으며 물론 신정 정치이므로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율법이 부과하는 형벌을 받아야했다.이런 십일조 제도는 바빌론 포로 생활 이전과 이후에 갱신되었다(대하31:5-6, 12; 느10:37; 12:44;13:5). 그러나 유대인들은 특히 포로 생활 이후에 십일조를 정기적으로 내지 않아서 주님의 일을 하는레위 사람들이 도망가기도 하고(느13:10) 하나님의복이 내리지 않았다(말3:8-12). 바리새인들은 조그만 것의 십일조를 드리는 데는 혈안이 되어 있었으나 십일조의 원리 즉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무시하다가 주님께 책망을 받았다(마23:23).신정 정치 하에서 운영되던 율법의 십일조는 신약의 도래와 함께 분명히 사라졌지만 십일조의 정신과원리 즉 복음의 사역자들과 복음 사역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들 수입의 일정 부분을 하나님께바쳐야 한다는 것과 주의 일을 위해 성심성의껏 헌금을 할 때 주께서 땅의 복을 주신다는 원리는 지금이 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신약성경에 수입의얼마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가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성경 전체를 볼 때 수입의 십분의 일 이상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기에 합당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신약시대의 성도가 수입의 십분의 일을 떼서 십일조로 드리는 것을 비난할 필요는없다. 다만 교회에서 이런 헌금을 율법의 십일조로,강제 규정으로 세금을 걷듯 걷는 것은 신약시대의헌금의 원리(고후9:6-7)와 배치되므로 경계해야 한다.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둘씩 보내면서 그들에게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시고 일꾼이 자기의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셨다(마10:9-14;눅10:4-8, 16). 사도 바울 역시 그와 동일한 것을 말한다(고전9:13-14; 갈6:6). 그는 성도들을 위한 기부헌금으로 주님께서 형통하게 해 주신 대로 각 사람이 수입에 비례하게 주의 첫 날에 즉 주일에 헌금을드리라고 하였다(고전16:2). 그러므로 교회에서 헌금 드리는 것을 비난하는 일은 비성경적이며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 수입에비례하게 하나님께 헌금을 드려서 주님의 사역자들과 교회 사역이 유지되게 해야 한다(고후9:7).
나무로 만든 사형 틀. 십자가 처형은 불명예의 상징으로 보통 가장 천박한 노예들에게 이루어졌으며(신21:23; 갈3:13) 특히 로마 사람들사이에서 흔하게 사용되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제자들이 반드시 그들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비록 십자가가 고통과 수난의 상징이지만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광의 상징이다.보통 십자가 처형 때에 집행자들은 범죄자의 양손에 각각 못을 한 개씩 박고 두 발을 모아 한 개의못을 박았다. 어떤 경우에는 범죄자의 몸 주위를 끈으로 감아서 아픔을 덜어 주고 대신 오랫동안 달려있게도 했으며 못과 끈을 다 사용해서 범죄자를 묶은 뒤 십자가를 들어올리기도 했다. 집행자들은 못을 박기 전에 범죄자를 채찍으로 때리고 심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몸을 십자가에 묶은 뒤 처형장까지 끌고 가기도 하였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쓰러지셨고 결국 구레네 사람 시몬이 강제로 그것을 지고 갔다(막15:21).처형의 집행자들은 범죄자를 못 박은 후에 마취제를 마시게 해서 아픔을 줄여 주기도 하였으나 우리주님은 이를 거절하셨다(마27:34; 막15:23). 우리 주님은 온 인류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 완전하게 모든아픔을 담당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18:11). 그분은 실제로 잔의 찌꺼기까지 다 마셨다. 태양 아래에 십자가를 세우면 채찍질과 못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열이생기고 심한 갈증이 일어나며 또 피가 제대로 흐르지 못해 몸의 여러 곳에 모이고 그로 인해 엄청난고통이 발생한다. 또한 범죄자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고통이 늘어나며 결국 죽어야만 이 모든 것이 해소된다. 이렇게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은 며칠 동안사는 경우도 있으므로 빌라도는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일찍 죽은 것을 보고 놀랐다(막15:44). 안식일이다가오므로 집행자들은 두 강도를 십자가에 두지 않기 위해 그들의 다리를 꺾어서 빨리 죽게 하였지만(신21:23; 수8:29) 대개는 그런 상태로 방치해 두고새나 짐승이 몸을 먹게 하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말씀하신 것.(1)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눅23:34); (2)“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3) “여자여, 당신의 아들을 보소서!, 네 어머니를 보라!”(요19:26-27).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5) “내가 목마르다.”(요19:28); (6) “다 이루었다.”(요19:30); (7) “내 영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눅23:46).
독사와 전갈은 사람을 쏜다(잠23:32; 계9:10). 사망은 이런 짐승들처럼 치명적인것 즉 죄로 사람을 쏜다(고전15:55; 참조 호13:14).
이것은 ‘먹어치운다’는히브리말에서 파생되었으며 메뚜기가 알에서 깨어나 성충이 되기까지의 한 단계로 볼 수도 있다(왕상8:37; 시78:46; 105:34; 사33:4; 욜1:4; 2:25).
버려진 땅에서 자라는 식물(욥30:7; 잠24:31; 사34:13; 호9:6; 습2:9). 이것은 포기전체에 가시털이 나고 줄기에 세로능선이 있으며 가시에는 포름산이 있어 찔리면 쐐기한테 쏘인 것처럼아프다.
쓰고 독이 있는 식물. 이것은파괴시키는 것, 메스꺼운 것을 나타낸다(애3:15; 신29:18; 렘9:15). 사악한 일에 빠지면 그 결과는 쑥같이 쓰며(잠5:4) 불공정과 학대는 쑥과 쓸개와 같다(암5:7; 6:12). 갈대아 사람들은 죽음을 쑥과 같이 쓴것으로 표현하였다. 계8:10-11에 나오는 쑥이라는별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강력한 통치자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떨어지면서 여러 사악한 자에게 심판을가져왔다(단10:20-21; 참조 사14:12).
매우 쓴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말. 욥16:13; 20:14, 25에서 이것은 쓸개즙을 뜻한다. 마27:34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쓸개를 섞은식초를 주어 마시게 하였다고 기록된 반면 막15:23에는 그것이 몰약을 썩은 포도즙이라 되어 있는데그것은 아마 로마 군인들이 몰약과 다른 쓴 물질을섞어서 마신 신 포도즙일 것이다(시69:21). 쓸개라는 말은 종종 상징적으로 큰 재난, 사악한 것, 타락한 것 등을 가리킨다(렘8:14; 암6:12; 행8:23).
창1:11에서 처음 언급되는 이 말은 대부분의 경우 문자 그대로의 씨를 의미하였지만 종종상징적으로도 쓰였다(단9:1; 벧전1:23; 요일3:9). 성경적 용례 면에서 볼 때 씨는 생리학적 의미에서 종종 후손이나 자손(레 18:21 등) 혹은 유일한 아이(창4:25; 삼상1:11) 등을 의미하였다. 또 어떤 때에 이것은 집합적 의미로 쓰이기도 하였다; 왕가의 씨(왕하11:1), 아브라함의 씨(대하20:7), 거룩한 씨(스9:2;사6:13; 비교 렘2:21).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씨를보이는 것은(스2:59; 느7:61) 그 사람의 계보를 보이는 것이며 어떤 사람의 씨는 하나의 가족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한 민족을 뜻하기도 하였다(에10:3). 이런 일반적인 의미에서 씨는 종종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하였다(말2:15; 참조 사1:4; 57:4).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남자만이 씨를 가지고 있었음을 고려할 때여자의 씨(창3:15)로 오신 예수님 즉 처녀 탄생의 신비를 지닌 분의 신비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할수 있다. 처녀 탄생: 예수님의 계보 선도 참조(63).한편 씨와 씨들의 차이는 갈3:16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모세의 율법에는 여러 종류의 씨를 섞어서 뿌리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었다(레19:19). 귀한 씨를 뿌릴 때에는 두려움과 수고가 동반되지만 그것의열매를 거둘 때에는 큰 기쁨이 있다(시126:5-6).
천이나 옷감을 짤 때 가로로 놓는실(레13:48-59). 날실 참조.
모세의 율법에는 여러 가지씻는 의식이 있었으며 제사장과(출30:19-21) 다른사람들이(레12:1-8; 13:1-59; 14:1-57; 15:1-33; 히9:10) 이와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거룩함의 씻음을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 주었고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영적 씻음과도 관련이 있다(딛3:5;계1:5). 이 외에도 유대인들은 전통으로 다른 것을추가하고(막7:2-4) 그리스도처럼 그런 것을 무시하면 경건치 못한 자라고 평가하였다(눅11:38). 먹기전과 후에 손을 씻는 것은 그들이 손가락으로 음식을 먹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며(마15:2)지금도 시리아 등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종이 있는 경우 종이 주인의 손 밑에 큰 그릇을 대고 손에물을 부었다(왕하3:11; 시60:8). 또한 손을 씻는 것은 무죄를 보여 주는 표시였다(신21:6; 마2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