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노믹스44] 소득 재분배 = 희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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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노믹스44] 소득 재분배 = 희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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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노믹스44] 소득 재분배 = 희년제

 

 김민홍 주간<기독교> 2021.07.13

 

“기울어진 운동장은 시장 경제의 문제

하나님은 소득이 아니라 자산 재분배를 강조”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이 핵심 가치이다. 민주주의의 보장 중에는 경제적인 안전한 생활도 보태져야 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개인의 행복권이라 그렇다. 행복은 공동체 내 실업과 굶주림 그리고 질병과 폭력을 거부한다. 민주주의는 그 이상을 실현하고 정치적 민주화를 완성하려면 개인의 안정적인 삶도 유지돼야 한다. 가난과 질병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공공의 적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독재와 맞서 숱한 피를 민주화 재단에 바쳤다. 산업화를 위해 엄청난 땀도 쏟아냈다. 덕분에 한국은 산업화의 굳은 토양 위에다 민주화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제거다. 국민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다. 자본주의는 자유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시장은 자유와 평등을 토대로 발전하고 개인의 재산을 늘려간다. 이 바람에 자본주의는 결정적인 부작용을 만들어냈다. 바로 빈익빈 부익부의 불평등 구조다.

 

   자본주의는 이 대목에서 정치권력을 불러왔다. 시장경제가 스스로 권력에 기댄 셈이다. 권력은 자유시장에 개입해 모든 국민의 복지향상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그것이 소득 재분배 정책이다. 부자들에게 많은 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정책이다. 부자에게 종부세, 소득세 등 세금을 걷는다. 또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 4대 보험과 각종 기금 정책 등도 펴왔다. 한국은 아예 헌법에다 경제민주화를 명시했다. 헌법 제 119조 2항에서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요약하면 경제민주화는 ‘소득재분배’와 ‘독점규제’가 핵심이다.

 

   성경의 희년제는 소득 재분배가 아니라 자산 재분배가 본질이다. 희년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산 격차를 제로베이스로 되돌리는 제도다. 이는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다. 희년제 핵심 가치도 자유와 평등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끌면서 평등사회 건설을 바랐다. 경제가 계급사회로 가는 길을 막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난한 이웃은 없애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집트 생활은 비참했다. 노예 신분이라 차별과 소외의 억압과 속에서 살았다. 출애굽은 단순한 정치적인 노예해방이 아니다. 새 시대를 연 획기적인 사건이다. 새 시대 목표는 거룩한 삶이다.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거룩한 경제 사회건설이다. 희년제는 성경 곳곳에 기록됐다. 기본은 레위기 25장이다. 희년제의 핵심은 자산재분배에 있다. 오늘날 각국에서 시행 중인 부유세 등 세제나 의료 등 복지정책은 소득 재분배 정책이다. 하나님은 소득을 뛰어넘어 아예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산을 다시 나누어 주는 직접적인 지원책을 썼다. 그것은 모든 만물의 소유권이 하나님한테 있다는 창조 논리에 맞닿는다.

 

   희년제 골자는 이렇다. 희년이 되면 모든 땅은 원래 주인한테 되돌아간다. 원주인은 돈을 주지 않고서도 되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다. 빚을 진 사람도 전액 탕감까지 받는다. 성 밖 주택 또한 원주인에게 되돌려 준다. 가난의 대물림은 아예 허용하지 않았다. 빈익빈 부익부의 부조리가 만성화되는 길도 원천적으로 막았다. 가난한 이웃을 부정한, 획기적인 제도이다.

 

   희년제는 현대 소득 재분배 제도와 비교가 안 된다. 찔끔찔끔 생계비 지원과 기본소득제 등은 가난의 대물림 해소와 거리가 멀다. 희년제는 삶의 기본환경인 땅과 집 등을 보장한다. 일시적이나마 빈곤에 몰리더라도 곧 회복의 길을 열어주는 제도다. 희년의 기본정신이 바로 회복이다. 현대 소득 재분배제와 견주면 본질적으로 다르다.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겨냥해 자산을 재분배 했다. 다만 재분배 기간이 꽤 길었다. 짧게는 7년의 안식년과 길게는 50년의 희년이다. 그래도 희년제는 비뚤어진 경제사회를 바로잡고 건강하고 거룩한 공동체 건설에 이바지 했다. 희년제는 하나님 명령이라 백성들이 저항하지 않았다. 순순히 따랐고 제도 정착에 문제가 없었다.

 

   소득 재분배 제도 등 경제민주화는 그렇지 않다. 저항이 거세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과 충돌은 논의 단계에서 부터 빚어졌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익공유제나 기본소득제 시행 등을 두고 파열음이 났다. 경제민주화는 눈물을 요구한다. 희생과 사랑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산업화와 정치 민주화에서 땀과 피를 흘렸다. 이제 눈물을 흘려야 할 차례다. 이타심이 시대정신이다. 민주주의는 상호존중이 생명이다. 나의 존엄과 가치가 귀중한 만큼 타인의 자존심과 가치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이 연장선에서 부자와 빈자의 경제적인 갈등은 좁혀야 한다.

 

   가장 무서운 전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싸움이다. 어떤 공동체이든지 빈부 간 갈등은 존재한다. 그 갈등은 반드시 폭발하고 전쟁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부익부 빈익빈은 경제 성장통이다. 희년제는 공동체 유지를 위해 땀과 피보다 눈물을 요구하는 하늘의 헌법이다. 오늘날 벤치마킹이 필요한 제도이다.

 

 김민홍/ cnews19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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