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노믹스22]세금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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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노믹스22]세금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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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노믹스22]세금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김민홍  2021.03.15 주간<기독교>

 

“국민들 많든 적든 납세는 꺼려

공정하게 거둬 정당하게 써야”

 

모든 국민은 세금을 물어야 한다. 국민의 의무 중 하나다. 동시에 국가는 세금을 받아 낼 권리를 갖는다. 세금은 국민과 국가 간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국민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 국가는 쪼들린다. 또 국가가 거둔 세금을 펑펑 쓰거나 거둔 돈보다 더 많이 쓰면 빚을 진다. 세입보다 세출이 많아져 국가도 빚쟁이로 떨어진다. 국가의 빚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국민이 떠안고 모두 갚아야 한다. 그래도 국가는 해마다 적자 예산을 짜고 빚은 늘어만 간다. 모든 국가가 그렇게 예산을 짠다. 여기저기 챙길 곳이 많고 돈 쓸 구석이 늘어나서다. 씀씀이를 줄이면 나라 형편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마구잡이로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일은 없다. 반드시 법에 명시하고 그 법에 규정한 대로 국민들에게 세금을 매긴다.

 

국민들은 금액이 많든 적든 세금 물기를 꺼린다. 가급적이면 적게 내거나 아예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반대로 국가는 소득이 있으면 반드시 그 소득의 일정 금액을 세금으로 거두어 가려고 애를 쓴다. 이 양자 간 대립에서 징수권과 조세저항이란 전선이 형성된다. 국가는 국민의 조세저항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잘못 건드리면 국가 존립이 위태로워져서다. 국가는 징수권을 행사하되 국민들의 저항을 받지 않으려 노력한다. 합리 세정이나 과학 세정이라는 거창한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민주주의도 그 탄생 배경엔 세금이 자리한다. 마 그나 카르타(Magna Carta)는 영국 존 왕(1167~1216)이 1215년 6월 15일에 서명한 헌장이다. 존 왕이 세금을 높게 매기고 폭정을 일삼자 귀족들이 들고일어나는 바람에 탄생했다. 실은 존 왕은 매년 로마교황에게 큰돈을 바쳐야 했다. 그는 이 돈의 조달을 두고 귀족들과 갈등을 겪었다. 귀족들은 존 왕에게 자금을 대주는 대신에 개인의 자유 및 권리인정과 공정한 재판 권리를 요구했다. 여기다가 왕이 세금 부과할 때 귀족들의 동의를 받도록 요구했다. 존 왕은 교황에게 바칠 자금에 쫓겨 마지 못해 헌장에 사인한다. 결국 조세저항이 민주주의와 의회정치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된 셈이다.

 

우리나라도 조세저항을 경험한 적 있다. 부가가치세이다. 박정희 정부는 1977년 부가세를 도입했다. 부가세는 간접세의 하나로 주먹구구식으로 매기던 영업세를 대체한 세금이다. 선진 세제이고 합리 세정 의 하나였다. 그런데 국민들이 들고일어났다. 세금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부마사태의 원인 중 하나가 부가 가치세 저항도 꼽힌다. “과세의 기술은 가능한 아무런 갈등 없이 필요로 하는 최대량의 깃털을 오리한테서 뜯어내는 것과 같다.” 이 오리 깃털 기법은 조세저항을 피하는 과세 기술로 유명한 말이다. 반대로 세금을 무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징수하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빠져나가는 길도 있다. 세금을 엄하게 매기면 국민들은 저항 대신 탈세나 절세 방법을 강구한다는 뜻이다.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예수를 함정에 빠트리려고 꼼수를 짜냈다. 예수님을 로마법 위반으로 얽어 매서 감옥으로 보내거나 목숨을 빼앗는 방안을 생각했다. 바리새인 수뇌부는 잔머리를 이리저리 굴려서 생각해 낸 대목이 세금이다. 그들은 예수한테 사람을 보냈다. 그 사람은 예수님 앞에서 좋은 말로 아첨을 떨었다.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막 12:14)이라고 분위기를 잡았다. 그는 예수님께 진리를 내세우면서 말꼬리를 잡으려 했다. 예수님의 대답에서 로마법 위반의 꼬투리를 잡아 총독에게 고발할 심사였다. 그렇게 해서 던진 질문이 바로 세금이다. 그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묻는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까?”(마 22:17) 세금에 대한 예수의 소신을 말하라고 욱박 질렀다. 예수님을 시험대에 올린 것이다. 예수님은 대답에 따라서 로마법을 위반하거나 아니면 하나님 법을 위반하게 되는 함정에 빠지게 됐다.

 

예수님은 질문자의 의도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예수님은 어찌해서 나를 시험하려 하느냐면서 꾸짖은 뒤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라고 한다. 데나리온을 가져오자 예수는 이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되묻는다. 그는 카이사르의 것이라고 응대한다. 그러자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 22:17) 라고 결론을 내린다. 여기서 데나리온은 화폐이다. 로마의 가이사가 발행했다. 화폐 제도상 가이사의 것이니 가이사에게 바치라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예수는 세상법을 인정하고 세금을 성실히 내고, 하나님 법에 따른 십일조도 성실히 납부하라는 현답을 줬다. 세상법과 하늘의 법의 갈등을 없앴다. 히브리인들은 유목 생활의 특수성으로 족장시대와 신정시대 이르기까지 세금을 내지 않았다. 다 만 왕정시대 이전엔 생명의 속전으로 모든 사람이 반 세겔을 냈다.(출 30:13) 왕정시대 들어와서 세금을 물었다. 솔로몬시대에 대규모 건축공사 등으로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세금 때문에 이스라엘 북쪽지파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남북 분단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세율은 20%다. 히브리인들이 노예로 살던 이집트에서다. 요셉은 소득의 20%를 세금으로 거두었다. 세율 20%는 당시 소득 기준으로 보면 무겁게 보인다. 고대국가들의 국민 소득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고대국가들의 소작료가 50-70%에 비하면 이집트는 엄청 낮았다. 오늘날 각국의 세금 부담률을 보면 선진국은 소득의 30-40%를 웃돈다. 그만치 의료 노후 등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아직 선진국 수준엔 못 미친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납세율에 있지 않다. 납세자의 구조가 문제다. 세금을 단 한 푼도 안내는 사람이 60%를 넘는 구조에 있다. 세금은 소득이 있으면 세율에 따라 한 푼이라도 물어야 정당하다. 그것은 국민의 의무다. 세금을 매기면서 특정계층엔 빼주거나 적게 매기면 부당하다. 세금은 골고루 매기고, 거둔 돈은 취약계층이나 의료 등 복지시설에 쓰여야 마땅하다.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생산물 또한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 이 논리를 기준으로 세금기피를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이는 잘못이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운영하자면 비용이 들어간다. 세금은 세상 법의 적용을 받는다. 가이사의 몫은 가이사에게 내야 한다. 다만 세금은 정당하고 공정하게 물리고 공개적이어야 한다. 세금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인간에게 세금은 숙명이다. 세금은 평생토록 지는 짐이다. J

 

김민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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