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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날

 

사람은 누구라도 예외 없이 시간에 갇혀 삽니다. 출생은 인생이 시간 속에 들어오는 과정이고 죽음은 시간으로부터 해방되는 사건입니다. 죽음이란 육체에 갇혀 있던 영혼이 자유를 얻는 시간이라고 인식한 소크라테스는 독배 마시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하여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흔히 존엄사라고 하는데 국회에 ‘조력존엄사’ 법이 발의되었습니다.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진 탓입니다. 물론 논쟁의 요소가 많은 주제입니다.

 

하지만 품위 있는 죽음보다 먼저 생각할 것은 품위 있는 삶입니다. 뒷골목 잡배 수준의 도덕지수를 가진 이가 지도자가 된 사회는 영도 서지 않고 모범을 따르려는 이도 없습니다. 지도자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비소도 커질 것입니다. 문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풍조에서 품위 있는 삶은 조롱 받기 십상이라는 점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 보편화될 수록 세상은 어두워지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보기 마련이니 딱할 뿐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제작에서 그 무대가 되는 <홍콩반점> 간판을 1990년대에 개발된 글꼴 <윤체>로 만들었다면 역사성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주전 1500년경에 기록되었다는 모세오경의 언어가 히브리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삼국사기>가 <훈민정음>으로 기록되었다는 것과 논리가 같습니다. 착한 마음으로 지역아동센터에 자원봉사 하는 이가 아직 오지도 않은 7월까지 봉사를 마쳤다고 6월 9일에 이미 자필서명 다 하였다면 그 저의를 의심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세심함과 사특함을 구별이 모호합니다.

 

긍휼 없는 종교의 맹목적 믿음이 영혼의 얕은 쉼마저 위협하는 세상이니 이래저래 품위 있는 삶이 힘들어지는 시대입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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