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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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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이익과 이웃 나라의 이익이 충돌하면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추구하고 이웃 나라 사람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좇기 마련입니다. 극성스러운 국수주의여서일 수도 있고, 단순한 애국심의 발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성인이라면 맹목적 애국주의에 휘말리지 않고 상식과 보편의 인류애에 터하여 각각의 가치를 판단합니다. 일제가 힘으로 주변 나라를 강탈할 때에 일본 소설가 카지 와타루(1903~1982)는 이웃 나라인 조선의 독립을 주제로 《태평의 눈》(1931)을 썼습니다. 그는 각각의 민족적 독자성을 존중하고 연대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일본인다움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당시 보통 지성인에게서는 눈을 씻고 찾아도 발견할 수 없는 꼿꼿한 태도입니다. 얼마 전 이 나라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여 행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용기’라는 연설에서 인용한 오카쿠라 덴신(1863~1913)은 대표적인 한국 멸시론자이자 침략 옹호론자입니다. 일본의 대표적 지성인도 일본 욕망의 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일컬어지는 우치무라 간조(1861~1930)조차도 힘으로 이웃 나라를 강탈하는 일본의 무도함을 외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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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 지파에서 아들 없이 죽은 슬로브핫의 다섯 딸은 당당하게 상속권을 요구하였습니다(27:1~11). 모든 권리는 남자에게 귀속되던 가부장 사회에서 깜짝 놀랄만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슬로브핫의 딸들이 한 말이 옳다”고 인정하시고 그녀들에게도 상속권 있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 문제가 민수기의 마지막에 다시 언급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소한 일로 여겨져 덮일 수 있는 문제인데 다시 거론되므로 여성의 상속권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기정사실이 되었습니다. 다만 가문의 기업을 유지하고 존속하기 위하여 슬로브핫의 딸들은 결혼 상대자를 같은 지파 안에서 찾아야 했습니다. “그 딸들은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누구하고든지 결혼할 수는 있소. 그러나 그들이 속한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만 시집갈 수 있소”(36:6 새번역). ‘누구하고든지’와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만’이 충돌합니다. ‘개인의 자유’가 우선하는 듯하지만 ‘공동체의 전통’이 그것을 제한합니다. 이 문제를 오늘의 헌법재판소에 물으면 ‘개인의 자유’를 택할 것입니다. 세상이 그만큼 달라졌습니다. 어쨋든 하나님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유산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겨지는 일이 없어야, 이스라엘 자손이 제각기 자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파의 유산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을 것이오”(36:7 새번역). 성경 옹호 차원으로 이해함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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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개인과 공동체, 나라와 나라, 이념과 이념, 종교와 종교, 새로운 문화와 전통문화, 노동과 자본, 진보와 보수 등 수많은 가치충돌이 일어납니다. 그 사이를 현대인은 줄타기하듯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개인도 중요하지만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하나님을 뵙니다. 공동체 없는 개인은 무의미하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주문처럼 외우는 시대에 희년(36:3)을 강조하는 성경은 공생공동체의 길을 제시합니다(행2:44~45). 우리가 외면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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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개인의 자유는 그 가치가 지켜지는 공동체에서라야 의미가 있습니다. 욕망으로 얼룩진 개인주의를 초월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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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435 나의 영원하신 기업 https://www.youtube.com/watch?v=GJwSx4fq4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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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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