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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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3:1~15
잘 사는 것이 화가 될 수 있는 세상,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하는 세상살이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자세로 스스로 성찰하여 지혜에 이르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께서 동행하시기를 빕니다.
시간에 대하여 그리스인들은 물리적 시간 ‘크로노스’와 의미적 시간 ‘카이로스’를 구분합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밤과 낮, 유아기와 청년기와 노인기 등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발생하는 생로병사의 시간입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기회와 선택과 결단의 시간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시간의 의미는 각자의 가치관과 처한 형편에 따라 다릅니다. 노예의 한 시간과 자유인의 한 시간은 같은 시간이 아닙니다. 크로노스의 물리적 시간은 순응하고 적용하는 것이 능사입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봄에는 파종하고, 노년에는 쉼의 시간입니다. 이를 잘 순응하는 것이 복이고 지혜입니다. 지혜서에서는 <잠언>이 이에 해당합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성찰적 시제입니다. 물리적 시간을 초월하는 안목을 제공합니다. 역경과 고통의 때를 반전시키는 매력이 있습니다. <욥기>와 <전도서>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전 3:1).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전 3:10) 시간을 보는 전도자의 안목이 크로노스의 시제를 뛰어넘어 카이로스에 이르는 장면입니다. 구약의 시간관 가운데에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미래 일을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래의 일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바라보는 믿음의 시제인데 이를 ‘예언적 과거’, 또는 ‘예언적 완료’라고 합니다. 지금 수모와 고통을 당하지만 승리와 영광의 날을 사는 시제, 나는 그것을 ‘메시야 시제’라고 이해합니다.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에 등장하는 모든 신앙 위인들이 살았던 시제입니다.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다하여 경고를 받아 실천했고,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돌에 맞고, 옥에 갇히며,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면서도 믿음의 길을 오롯이 걸었던 신앙 선배의 시제입니다.
전도자는 시간이 주관하는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시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의 시제에 근접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전 3:15). 고통과 실패를 역전시키는 시제의 역설, 그리고 시간 너머의 경이로운 영원을 사모합니다.
하나님, 때에 맞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순리를 따르되 역설의 시제 또한 기대하며 그 극적 반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찬송 : 135 어저께나 오늘이나
2022. 12. 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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