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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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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이 나옵니다. 사자와 송아지, 그리고 얼굴이 사람인 생물과 독수리입니다. 3절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를 벽옥과 홍보석 같다라고 했듯이 네 형상 같다라고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이 네 생물을 자유자재로 그릴 수 있겠지요. 셋째 생물은 사람 얼굴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와 바벨론 신화에 그런 형상이 종종 등장합니다.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말인 형상이 그렇고, 상반신은 사람이나 하반신은 물고기인 인어공주 형상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런 생물들이 없습니다. 신화의 세계에서만 가능합니다.

고대인들의 종교라 할 신화(神話, myth)의 세계가 억지로 꾸며낸 듯이 보이고,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비칠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현실과 나름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생물들도 관점에 따라서 신화의 세계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와 다를 게 없습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하나는 현재의 생명체를 어느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고양이에게 인간은 정말 이상한 생명체로 보일 겁니다. 박쥐에게는 더 이상하게 보이겠지요. 다른 하나는 지금의 생명체는 반드시 이런 형상이어야 했던 게 아니라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생명체의 시작이 바다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역시 바다 생물에서 진화된 겁니다. 다르게 진화되었다는 지금 인간 형상과는 전혀 다른 모양을 취했을 겁니다. 나무가 걸어 다닐 수도 있고, 거북이가 날아다닐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 지구에 세 개의 달이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럴 개연성이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않은 것뿐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그런 이야기들이 종종 나옵니다.

이런 생각이 비성서적인 게 아닙니다. 이사야는 평화의 나라가 오면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놓고, 표범과 어린 염소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과 어린아이들이 함께 논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그런 세상이 요원하나 그런 세상을 우리는 계속 꿈꿔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우리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는 게 아니라 그런 욕망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차원이 다른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거룩한 상상력에 사로잡혔으면 합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예수께서는 이런 주제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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