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칼럼] 양자역학으로 본 신앙세계 '조금' 이해
[십자가칼럼] 양자역학으로 본 신앙세계 '조금' 이해
  • 나관호 발행인
  • 승인 2022.08.22 17: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179]

우주를 공부하며, 창조주 하나님 생각/
양자역학 속에서 신앙 실체, 찾아가다/

【뉴스제이】 깊은 시름과 깊은 묵상으로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창조주에 대한 존재의식을 새롭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농수’(濃愁) 속에서 다시 말해 '깊은 시름' 속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지금 현대 물리학의 기초를 이루며 가장 큰 이슈인 ‘양자역학’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양자역학"은 원자와 같은 미시세계의 물체의 운동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현재의 상태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고전역학'의 결정론적인 입장과 달리, 양자역학은 확률론적 입장을 취합니다.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도 미래에 일어나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보다 갈릴리에 먼저 앞서가신 이야기가 양자역학적으로 바라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NASA 홈페이지 & 영화장면 

덩달아 물리학의 기초부터 물리학자의 눈으로 우주의 기원, 빅뱅과 시공간 그리고 우주와 별, 상대성 이론, 특수 상대성이론, 시간이란 무엇인가?  등등 '양자역학'을 위한 심화학습을 위해 기초 부분도 공부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과 크고 놀라우신 창조주 그리고 방대한 우주 속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불의한 일들을 행한 사람들과 거짓말로 이간질을 밥먹듯하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어, 그들을 불쌍히 어기며 때론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드러내셔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기를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생활화되고 습관화된 불의와 죄가 삶으로 연결되어 당연시되고, 악인 줄 모르고 마치 자기 자신까지 속이고 사는 허망한 사람들 같아 그들의 삶에 반복된 죄가 멈추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들에게 결국은 돈 문제였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늘은 다 기억하신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은 대로 거둔다는 우주의 법칙을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알아도 지금 당장은 돈이 더 크게 보이고, 돈이 좋으니 하나님이 보시고 기억하신다는 진리를 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방대한 우주와 무수한 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길 소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며, 아직도 끝없이 팽창하는 한 우주를 만드시고 관리하시는 분이십니다. 한편으로는 두려워할 분입니다, 심판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으니, 훗날에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불의한 자들이여 우주를 만드신 그분을 바라보시오.”

'양자역학'에 대해 깊이 빠져들어 심화학습을 하면서, 성경 속 난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쉽게 할수 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 ‘원자’. 원자의 크기는 10-10m=10000000000분의1 m입니다. 예를 들어 '원자'를 눈으로 보기 위해 ‘원자’를 동전과 비교해 ‘원자’가 동전만하다고 가정하면, 비교된 동전은 지구 크기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원자’는 너무나 작고 우리 눈으로 볼수 없는 존재입니다.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자역학에서는 ‘원자핵’을 돌고 있는 ‘전자’가 첫 번째 궤도길(A)에서 돌고 있다가 건편 두 번째 궤도길(B)로 건너간다고 가정하면 궤도길(A)와 궤도길(B) 사이에 건너간 발자국이니 흔적이 없이 궤도길(B)로 점프해 건너가 돌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양자도약’입니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순간이동’한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시공간을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보다 갈릴리에 먼저 앞서가신 이야기가 양자역학적으로 바라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신성과 인성을 가지셨는데 그것이 어떤 상태일까요? 양자약학에서 ‘양자중첩’이라는 개념을 공부하면서 흥미를 가졌습니다. 디지털은 ‘0’(영)과 ‘1’(일)이 나타내는 신호로 만들어집니다. ‘0’(영)과 ‘1’(일)은 동시에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0’(영)과 ‘1’(일)이 동시에 중첩되어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이 부분에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도 예수님 몸 안에 ‘신성’ 부분과 ‘인성’ 영역이 따로 가지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의 개념처럼 ‘신성’과 ‘인성’이 중첩(?)되어, 마치 두 개의 초콜릿이 녹으면 경계를 찾을 수 없는 하나가 되는 것처럼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도 그런 개념으로 이해하면 조금 진리에 가까워질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보이는 거시의 세계에서도 개념적으로는 ‘신성’과 ‘인성’이 같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 “감히” 예수님의 존재 이해를 해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예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 “빛이 있으라”(창세기 1:3)        ⓒNASA 홈페이지 & 영화장면 

그리고 ‘빛과 어둠’의 이해에서도 양자역학에서는 ‘빛’보다 ‘어둠’이 먼저입니다. ‘어둠’이 있었기에 ‘빛’이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로 시작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세기 1:1-3)

여기서의 ‘태초’는 모든 것의 시작, 원초적 시작입니다. 그리고 “빛이 있으라”(창세기 1:3) 하시며 빛을 창조하십니다. 그런데 빛의 창조를 명하시기 전의 모습을 창세기 1장 2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니라”(창세기 1:2)   

성경은 분명히 빛이 창조되기 전의 상태를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어둠의 상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둠’이 ‘빛’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암흑우주'가 생각났습니다. 

'양자역학' 공부에 입문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우주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더 깊고, 넓고 크고, 위대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지식으로 “감히”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 이 땅에 사셨던 예수님의 존재론적인 이해를 하려고 했습니다.데 물리학자와 천문학자 교수님들과 물리학 전문가들께서 틀린 부분을 바로잡아 주십시오. 더 나아가 신앙적 코드와 양자역학을 결합해 더 나은 이해를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과학도 인문학이다",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등등 여러 강의 잘 듣고 깨달은 바가 큽니다. 김상욱 교수님 도와주세요.  "저건 다 뭐지- 별과 은하의 기원, "박뱅이후, 3분의 기적" 등등 강의 잘 듣고 박수를 쳤습니다. 이석영 교수님 도와주세요.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빅뱅), "암흑우주" 등등 여러 강의를 통해 우주를 바로 알게 되었어요. 김형도 교수님 도와주세요.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발행인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제자선교회 이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안보면 후회할 기사
카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