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칼럼] 사람 마음이 읽어지고, 보입니다 ... "영분별의 은사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십자가칼럼] 사람 마음이 읽어지고, 보입니다 ... "영분별의 은사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 나관호 목사
  • 승인 2022.02.17 0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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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163]

‘의도를 알게 된다’고 할까요? /
영분별에 속하는 은사라고 생각합니다./
숨은 마음과 태도 읽게 되는 것, 불편/ 
나관호 교수목사(뉴스제이 발행인)

【뉴스제이】 이십여년 전, 신학교에서 강의 중에 신비스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학생들의 마음이 순간적으로 읽혀진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이 보인다’고 할까요? ‘의도를 알게 된다’고 할까요? 아니면, ‘진짜 속마음을 보게 된다’고 할까요? 여하튼 제자들의 행동과 말 그리고 태도와 몸짓에서 마음과 의도가 읽혀지기 시작했습니다. 말과 글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강의 중이었는데 오른쪽에 있던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순간 그 학생이 무슨 의도로 질문을 하는지 알아지게 되었습니다. 왼쪽에 있던 학생의 얼굴과 태도에서도 마음이 보였습니다. 정확히. 

질문한 학생에게 내가 되물었습니다. “이러이러한 마음이구먼. 자네는 왜 이 질문을 하는 거지? 이런 대답을 원하는구먼. 지금 마음이 이렇구먼” 나는 읽혀지고 보이는 데로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이 웅성거렸습니다. 내가 정확이 그 학생의 상황과 마음 태도를 말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 학생들이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영분별에 속하는 은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재미있는 일 하나가 먼저, 있었습니다. 당시 겨울스포츠가 중계되던 시기였는데, 나는 학생들 몇몇에게 제자훈련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가능하면 우리 집에서 모여 기도하고 나눔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학생 한명이 제자훈련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연락도 오지 않았습니다. 

제자훈련 양육을 마치고 다과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하키 경기가 마침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TV를 켰습니다. 경기를 보던 중, 브레이크 타임에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춰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제자훈련에 오지 않은 그 학생이 노란색 파커를 입은 여자 친구와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철민아! 목사님이 기도하는데 철민이가 양육 참석 안하고, 스포츠 경기 보러 간 것을 깨닫게 되네. 연락해라. 지금 당당”

몇분 후.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교수님! 죄송해요. 연락도 못 드리고 양육 못 갔어요, 좀 일이 있어서요”
“철민아! 목사님은 기도하면 다 보인다.”
“네?”
“자네, 여자 친구와 아이스하키 보러갔지?”
“어떻게 아셨어요. 아무에게도 말 안했는데요.”
“여자친구는 노란색 파커 입었지? 자네는 검은색 입었고”
“교수님!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누구냐! 교수님이 누구냐고? 디 보인다. 허허허”
“죄송합니다. 교수님! 안빠질게요”

그 이후, 학생들 사이에서 “나관호 교수님은 기도하면 다 아신데”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아멘”을 외치고 ‘그렇게 되면 좋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에강의 중, 사람이 마음이 읽혀지고 보이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믿음대로 된 것인지 신비스런 경험이었습니다, 단회성이 아닌 것을 보면 영분별의 은사가 분명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읽혀지고 숨은 의도와 감춰진 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은 장점과 단점 두 가지를 다 가집니다. 도움을 줄 사랑의 마음을 읽는 것은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지만, 얼굴과 태도로 말하는 그 마음, 다른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거짓을 섞어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보일 때는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어느 정도 적당한(?) 의도와 거짓, 숨은 태도는 넘어갈 수 있지만, 큰 목적을 가진 의도와 작정한 거짓마음, 불쾌하게 하는 숨은 마음과 태도를 읽게 되고, 보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은 좀 불편합니다.  

전화 통화 중에도 상대방의 마음이 보이고 읽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NO설명’, ‘NO표현’입니다. 설명도 표현도 할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분별의 은사'를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더 사용하고자 합니다. 임마누엘!!!!

 

나관호 교수목사 (뉴스제이 발행인 및 대표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칼럼니스트 / 치매가족 멘토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제자선교회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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