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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y 31. 2022

우리는 지금까지 역할을 오해했다.

“목사님! 저 집사 빼고 성경 공부하면 안 될까요?”

어느 자리에서건 주인공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성경 공부 모임에 그런 집사가 한 명 있었다.

그분은 성경 공부를 하는 내내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모일 때마다 침을 튀기며 혼자 이야기했다.

말을 끊어 보려 했고, 말의 방향을 바꾸려고도 했다.

아무리 눈치를 주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지, 일부러 무시하는 건지.

모든 것이 허사였다.

그러다 보니 그 자리가 불편해진 사람들이 참다못해 내게 부탁을 했다.

100퍼센트 순수한 친목 모임이라 할지라도 마이크를 혼자 독차지하는 사람이 있으면, 난감해진다.

하물며 성경 공부 모임에서 그런다면 정말 피곤해진다.

모든 모임은 마치 한 편의 영화와 같다.

어떤 모임이든 주인공과 조연과 엑스트라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배역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는다면, 주제넘은 짓은 피할 수 있다.

언제나 주인공이 되려 한다면, 그는 결국 왕따가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조금씩 주인공 병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이라면,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더라도 그걸 조절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모든 사람이 아기에게 관심을 준다.

아기는 세상의 중심이 자기인 줄 착각한다.

어른들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 때문이란 걸 모르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서로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랑만이 기쁨으로 상대방을 칭찬하고 인정하고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다.

어른과 어린이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남을 주인공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어른이고, 자신이 주인공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어린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역할은 역할일 뿐이다.

연극 속의 엑스트라라고 해서 그의 인격이 엑스트라는 아니다.

그가 맡은 역할이 작을 뿐이다.

한때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조연이나 엑스트라의 연기가 형편없던 적이 있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이 작다고 무시하였기에,  영화 전체의 질을 낮추어버렸다.

요즘은 감초 같은 역할을 하는 단역들과 조연들 때문에 영화의 품격이 높아졌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역할을 맡는다.

가정, 학교, 직장, 사회,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다.

때로 큰 역할도 있고, 작은 역할도 있다.

우리가 어떤 역할을 맡든, 그 역할이 나의 전부를 규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맡은 역할과 자신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맡은 역할마다 가능하다면, 마음과 영혼을 담아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역할에 100% 잘할 수는 없다.

어떤 역할은 잘 감당하지만, 어떤 역할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역할을 잘 수행하면,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고 칭찬한다.

때로 과분한 칭찬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칭찬이 곧 자신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부적절한 칭찬과 아첨은 자신의 본 모습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데 방해물이 된다.

겉치레 인사로 하는 칭찬과 아첨을 혼동하여 그것이 자기의 인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반대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하든 못하든 부정적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인 인신공격을 하여 감정을 건드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건 객관적인 나의 모습을 공격한 것이 아니다.

공격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통해 상대방을 조정하려는 나쁜 뜻을 가진다.

어떤 역할을 감당할 때, 자신의 역할과 자신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개인적인 공격에 휘둘리지 않으며, 상처받지도 않을 수 있다.


주인공이 아닌데 주인공이 되려는 사람이나, 주인공 역할을 하는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나 모두 역할과 자신에 대하여 혼돈하였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중요한 것은 그 역할을 맡기고 이끌어가는 감독이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맡은 역할이 크든 작든 최선을 다할 때 연극은 완성된다.

인생이란 연극 속에 우리가 맡은 역할은 다양하다.

최선의 역할은 다른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데 있다.


https://youtu.be/--nEoedOV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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