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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y 28. 2022

우리는 지금까지 예배를 오해했다.

4년 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미국으로 왔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맞벌이하는 미국 가정의 팍팍함과 바쁨을 많이 들었다. 

2,3일 잠시 방문하는 것은 괜찮아도, 일주일을 넘기면, 서로 괴로워지는 게 미국생활이라고 들었다. 

이 팍팍한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래도 교회는 가야 할 것 같아 걸어서 갈 만한 교회를 찾았다. 

지금도 차가 없지만,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미국 생활을 하기로 작정한 터였다. 

다행히 내가 머무는 곳에서 5분 거리에 한국 교회가 있었다. 

어느 교파인지는 관심이 없었다. 

이단만 아니면 되었다. 


주일 날 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렸다. 

10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담임 목사의 눈에 방문자는 한눈에 띄는 게 당연하였다. 

예배를 마치고 도망치듯 빠져나가려는 나를 담임 목사는 붙잡았다. 

시간 되면 주중에 식사라도 하자고 하였다. 

그렇게 신동수 목사와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둘은 형식적인 대화에서 조금은 사적인 대화까지 하였다. 

그러다 내가 목회하면서 자료를 어떻게 정리하는지 말하였다. 

신목사는 자신에게도 자료 정리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였다. 

그걸 계기로, 나는 자연스럽게 로고스 교회에 출석하였다. 


은퇴를 하고 미국에 오면서 나는 평신도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였다. 

로고스 교회는 작은 교회였기에 장로님들이 주방에서, 성가대에서, 기타 반주로 봉사하였고 교회 관리도 하였다, 

젊은 집사가 장로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자연스럽게 대화하였다. 

로고스 교회는 직분을 핑계삼아 권위를 부리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기쁨으로 봉사하고 섬기고 사랑하였다. 

이런 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다는 게 나에겐 큰 축복이었다. 

출석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나는 성가대에 서고 싶다고 하였다. 

무어라도 하고 싶었다. 

잘하진 못하지만, 시간 될 때마다 주방 보조로 봉사하였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후, 내가 머물던 윌리엄 캐리 기숙사가 문을 닫으면서 새로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 

신목사는 나에게 교회 선교관을 제공해 주었다. 

교파도 다르고 아무 연관도 없는 나를 교회는 은혜로 받아주었다. 

나는 결심하였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나는 교회 관리 집사처럼 봉사하기로 혼자 마음먹었다. 

물론 교인들은 모두 나를 관리집사가 아닌 목사로 인정해주었다. 

그렇게 생활한 지 이제 4년이 지나고 있다. 


40대 나이에 목회하는 신 목사와는 더욱 가까워졌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같이 식사하고, 매일 같이 운동도 함께 한다.

평생 운동이라고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젊은 신목사를 따라 탁구, 배드민턴, 골프 등을 배우고 있다.

교회 체육관에 이런 시설들이 다 있기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요즘은 본의 아니게 스포츠맨이 돼가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사는 공간을 타인에게 열어 보이고 싶은 필요를 느낀다.

함께 식사하고, 운동하고, 대화하고, 토론할 때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진다.

물론 이런 관계에는 단계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 자신을 열어 보여줄 것인지에 따라 관계의 깊이는 달라진다.

단순히 사적인 공간을 여는 단계인지, 아니면 자기 생각과 감정과 비전을 나눌 것이지.

친밀함의 깊이는 서로 나누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마음 속의 고민과 아픔, 두려움과 욕망, 기대와 소망을 나눈다면 관계는 돈독해진다. 

극소수의 사람만 아는, 아니면 아예 아무도 모르는 나의 숨은 면을 보여준다면, 그 친밀함은 더욱 깊어진다.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과 비전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눈물과 실망과 수치와 숨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친밀함은 또 다른 차원으로 발전한다.


가끔 감당할 수 없으면서도 상대방의 비밀과 허물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다 말해”

“내가 지켜 줄게”

순진한 상대방은 그 말에 속아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눈다.

뒤통수 맞을 줄도 모르고.

솔직히 나는 그런 경험을 여러 차례 하였다.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나는, 아니 입이 너무나 싼 나는 가끔 이런 잘못을 범한다.


친밀한 관계를 귀하게 만드는 요인은 상호 존중과 신뢰다.

서로에 대해 깊이 알면 알수록 더욱 인정하고 믿어야 한다.

친밀한 관계의 핵심은 마음을 여는 것보다 상호 존중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배신하거나, 상처 주는 행동과 말을 해선 친밀함을 이룰 수 없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였다(빌2:2).

그리스도인의 가장 귀한 성품은 마음을 나눌 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속성 중 너무나 귀한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셨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의로우심, 신실하심, 선하심, 사랑, 긍휼, 자비, 은혜, 오래 참음, 등의 속성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고, 마음을 나누기 위해 하나님의 속성을 공유하셨다.


그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뛰어넘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로 확장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귀한 속성을 사용해서 관계 맺기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야 할 사명이 그리스도인에게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드리는 예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기쁨의 공유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 은혜를 서로 나누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고, 그 사랑을 서로 베풀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고, 그 기쁨을 공유하라고 하셨다.


구약의 예배는 기본적으로 축제다.

하나님께 받은 물질, 건강, 가족, 생명에 대한 감사를 기쁨으로 나누는 것이 구약 예배였다.

이 기쁨은 궁핍 가운데 고통받는 형제에게 나누어 줄 때 배가된다.

물론 나눌 때 가져야 할 마음 가짐이 있다. 

그건 조금이라도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고, 기쁨으로 손을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주는 자세다(신15:7-10).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는 은혜가 물 흐르듯 흐르게 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3년마다 십일조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었다(신14:28-29, 26:12ff).

그것은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요 봉헌이다.

그것은 여호와의 기쁨은 온 땅에 가득하게 하는 예전이다.


나는 로고스 교회에서 이런 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

목장 별로 식사 당번을 하지만, 그건 이름뿐이다.

일손이 부족하면 기꺼이 팔 걷어붙이고 함께 일하며 기쁨을 나눈다.

지난 4년 동안 큰 소리나 시기나 질투나 분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성도가 함께 모여 연합함이 어찌 그리 아름답고 즐거운지.

시편 저자의 노래가 나의 노래가 되었다.

예배는 몸과 마음으로 나누는 삶을 살아갈 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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