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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인트의 책 이야기 May 10. 2022

생계형 임금노동자의 하루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 - 버티기 장인이 될 수밖에 없는 직장인을 위한 

       열두 빛깔 위로와 공감         _박윤진 / 한빛비즈                    






5월 8일(일요일) 어버이날이라고 딸 부부, 손주들이 집에 왔다. 6살짜리 남동생이 장난감을 갖고 노는 사이(할애비가 놀이친구이다) 심심해진 초딩 3년 손녀가 자판연습을 하고 싶단다. 서재에 데리고 들어가서 컴을 쓸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고 나왔다. 시간이 좀 흐른 후, 폰 때문에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 독서대엔 바로 이 책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손녀가 자판연습 중 할아버지가 무슨 책을 보시나 궁금해서 들여다봤던 모양이다. 초딩 3년 손녀딸 하는 말 들어보소. “할아버지도 이런 책 보셔요?” (아니, 이런 책이라니?) “응, 왜?” “아니, 그냥요” 내 손녀는 이 책을 왜 ‘이런 책’이라고 했을까? 궁금해서 더 이야길 하고 싶었는데, 손주가 할아버지~하고 찾는 바람에 서재를 나왔다. 그리고 그 이후엔 서로 잊었다. ‘이런 책’이야기를...          




암튼 이 책은 이런 책이다. 이 책엔 12인의 ‘생계형 임금노동자’의 일상이 담겨있다. 저자는 답도 없이 힘들고 괴로운 직장인들의 일상에서 탈출구를 열어준다. 그 열쇠는 ‘책’이다. 덕분에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을 다시 음미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의 저자 박윤진 작가는 가늘고 긴 23년 차 회사원이라고 한다. ‘어쨌든 저자 역시 회사생활이 꼬이면서 몸과 마음이 적잖이 아팠다고 한다. 그 아픔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독서모임과 철학공부(철학박사과정을 수료했다고 한다)덕분에 몸과 마음에 두꺼운 골판지 몇 장을 덧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회사에 왜 다니냐?”라고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 돈 때문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그렇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한 회사 생활인지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아무 미련 없이 안녕~하고 떠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때론 이 과정도 생략한다). 물론 돈이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직장생활에서 돈 빼면 뭐가 남는가? 그것이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직장=돈’으로 등식을 만들어놓으면 참 기분이 거시기하다. 이 책 제목에 나오는 ‘벌레’와 표지 그림을 보면 떠오르는 책이 있다. 맞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린, 이 어이없고 억울하고 황당한 현실에 그레고리 잠자는 지각을 걱정한다. 지각해서 팀장한테 깨질까봐 그것부터 걱정한다. 그런데 어쩌다 잠자는 벌레가 되었을까? 부모와 여동생까지 먹여 살려야만 했던 잠자는 차라리 내일 걱정 없는 벌레가 되고 싶다고 기도했을까? 기왕에 벌레가 되었으면, 날개라도 달린 벌레가 되었다면 좋았을 것을...《변신》과 함께 하는 현실의 주인공은 회사 생활 7년차 최 대리이다. 턱없이 올라버린 아파트값에 부부는 일찌감치 서울을 포기했다. 아웃 서울에서 왕복 3시간 10분 걸리는 출퇴근길은 몸은 물론 영혼까지 털리고 있다. 최 대리도 지각을 걱정한다. 그 상황에도 최 대리는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리 잠자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본다. “내가 누구인지라는 질문에 정답이 있을까? 사실 정답이 있건 없건, 최 대리는 벌레로 변하기 전에 함께 사는 가족들을 조금 더 아끼고 사랑하고 싶어졌다. 《변신》을 읽으며 만들어진 불안한 질문들 속에서 최 대리는 신기하게도 삶의 방향감각을 회복하고 있었다.”          




현재의 대한민국, 이 사회는 공정한가? 공정도에 대한 설문을 봤던가? 기억에 없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어떨까? 아마도 상당히 많은 퍼센트가 ‘공정하지 않다’로 찍을 것 같다. 결코 공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공정하다고 할 것이다. 출발선에서부터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이 자기가 빨리 나간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늦은 것이라고 큰소리친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들여다본다. “재능과 노력을 보상하는 체제라고 생각하는 건, 승자들이 승리를 오직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 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라고 여기게끔 한다. 그리고 그보다 운이 나빴던 사람들을 깔보도록 한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격이 있는 것이고, 바닥에 있는 사람 역시 그 운명을 겪을 만하다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손에든 이는 입사 18년차 김 과장이다. 고졸이라는 입장 때문에 회사에 그 누구보다 몸과 마음을 갈아 넣었건만, 회사 최초 여성 유학파인 막내가 김 과장한테 신문 배달을 더 못하겠다고, 그 시간에 좀 더 전문적인 일을 하기 원한다고 항의하면서, 김 과장 가슴에 못을 박았다. “제가 고졸인가요?” 신문배달이 김 과장 손에 닥친 무렵, 마이클 샌델의 책을 읽으면서 힘을 얻는다. 방향감각을 찾는다. 총무팀장에게 몇 가지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면서, 회사의 임금 보상 규정에서 ‘학력에 의한 차별 내용 삭제’를 요청한다. 김 과장의 말을 차분히 듣고 있던 총무팀장은 다음 달에 예정된 임원 회의에서 김 과장이 제기한 문제들을 제1 안건으로 다루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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