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성경 해석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 피렌치 파를 형성한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가 있다.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조토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그의 친구 단테(Dante, 1265~1321)는 ‘신곡’에서 조토가 스승인 치마부에를 넘어섰다고 격찬하였다.
“치마부에의 시대는 갔다. 지금부터는 조토의 시대다” - 단테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Boccaccio, 1313-1375) 역시 조토는 ‘수 세기 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었던 회화 예술에 빛을 던진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럼 조토는 도대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그의 그림 중 대표작은 파도바(Padova)의 스크로베니 예배당(Capella degli Scrovegni)에 그린 벽화이다.
이 예배당은 엔리코 스크로베니(Enrico Scrovegni)가 가정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지은 작은 가족 예배당이다.
엔리코 가문은 당시 가톨릭 교회가 엄격하게 정죄하는 고리대금업을 하였다.
그의 아버지 라이날도(Rainaldo)는 악명높은 고리대금업자였다.
단테는 ‘신곡’중 지옥 편에서 피렌체 고리대금업자를 묘사했다.
스크로베니라는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단테가 묘사한 ‘하얀 주머니에 파랗게 살진 암퇘지’는 스크로베니가의 문장으로서 라이날드 스크로베니를 지칭함이 분명하다.
엔리코는 자기 아버지와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하여 이 예배당을 지어 마리아에게 바치기로 하였다.
조토는 이 예배당 안 사방에 그림을 그려넣는 일을 맡았다.
그림은 주문자 엔리코의 요구대로 예수님의 탄생부터 부활과 승천과 최후 심판까지 그렸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 장면에서 엔리코가 예배당을 마리아에게 바치므로 용서받고 구원받는 모습을 그려달라고 요구하였다.
예배당을 건축하고, 그림으로라도 구원받고 싶은 간절한 욕망은 중세시대 뿐 아니라 현대까지도 이어 오는 미신이다.
조토는 중세 비잔틴의 상징적인 회화방식을 버리고, 사물의 양감, 공간감, 인간적인 감정 묘사, 드라마틱한 제스처, 효과적인 이야기 전개방식 등 회화의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였다.
조토는 주문자 엔리코의 요구대로 생각 없이 그리지 않았다.
그는 자기 생각을 그림에 표현하였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예수님의 성전 정화 장면이다.
조토는 예수님께서 채찍으로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는 장면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채찍이 아니라 주먹질하는 모습으로 예수님을 그렸다.
그건 채찍보다 주먹이 훨씬 더 감정적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성서학자 J. B. 필립스(J. B. Phillips)는 신약성경을 연구하다가 예수님의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필립스는 예수님이 온유하고 사랑이 많고 정이 많은 분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따스하고 온유한 모습도 있지만, 때론 과격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예수님은 당시 제도권 종교에 안주하던 기득권층을 냉정하게 비판하였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 지도자들은 성전세를 받았다.
성전의 유지보수를 위해 유대 성인 남자들은 일 년에 반 세겔을 내야했다.
유월절이나 초막절 같은 절기에 예루살렘을 방문하면, 그들은 성전세를 냈다.
성전을 방문할 형편이 못 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성전지도자들은 방문 징수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통용하던 로마의 동전이 아니라 성전에서만 사용하는 돈으로 성전세를 받았다.
로마의 동전은 세속적이라 더럽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건 겉으로 드러난 이유이고, 사실은 성전 지도자들의 더러운 욕심이 숨어 있었다.
로마 동전을 성전 돈으로 환전할 때 그들은 막대한 환율을 적용하였다.
400년 식민 생활을 하던 가난한 유대인들을 착취하기 위한 교묘한 방법이었다.
성전에는 성전 지도자의 비호 아래 환전상들이 활개를 쳤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성전에서 제사드리기 위한 제물을 검사하는 검사비용을 받았다.
물론 검사에 통과하는 제물은 거의 없었다.
결과적으로 성전에서 미리 준비한 제물(소위 그들이 검사해서 합격했다고 인증하는 제물)을 웃돈을 주고 사야만 했다.
한번은 비둘기 한 쌍의 값이 금 한 데나리온이라는 엄청난 금액으로 치솟아 문제가 되었다.
비둘기는 예물을 준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백성을 위한 예물이었는데 말이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성전은 대제사장 안나스의 장터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채찍을 들고 성전을 정화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전을 도적의 소굴이 아니라 기도하는 집으로 회복하기 위함이다.
둘째는, 성전 지도자와 장사치들이 야합하여 가난한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죄악을 책망하기 위함이다.
많은 목회자는 둘째 이유보다 첫째 이유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한다.
그건 성전 지도자의 욕심과 잘못(오늘날 목회자의 욕심과 잘못)을 애써 외면하고, 예수님의 행위를 영적으로만 해석하려는 의도이다.
화가 조토는 예수님 당시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백성의 고통에 집중하였다.
그건 조토 당시 백성의 고통과 맞닿아 있다.
중세 고리대금업은 ‘부르주아적 죄악인 탐욕’으로 가장 큰 죄라고 생각하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모습을 보면,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가톨릭은 고리대금업을 정죄하고 비난하였지만, 말로만 그럴 뿐, 사실 뒤로는 고리대금업자와 손을 잡고 뒷배를 채웠다.
엔리코 가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엔리코는 교황 베네딕토 11세에게 엄청난 뇌물을 주어 자신이 지은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면죄권을 주는 교황의 교서를 받아냈다.
그는 고리대금업 외에 예배당을 이용한 돈 벌이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겉으로는 예배당을 마리아에게 바치므로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은 사악한 욕심을 채우는 데 열중하였다.
그건 예수님 당시 성전 지도자와 환전상과 희생 제물을 팔던 장사치들의 야합과 다를 바 없었다.
조토가 환전상들에게 주먹질하는 예수님을 그린 간 바로 사연이 숨어 있다.
그는 엔리코의 주문을 따라 그렸지만, 그림 속에는 물질을 탐하는 자들은 결국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곳곳에 그려넣었다.
현대 교회는 권력자들과 사업가들을 환대하고 환영한다.
그리고 그들의 논리대로 성공주의, 물질주의, 승리주의, 긍정적 사고방식, 자기 개발 논리를 차용해서 설교한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든 상관치 않고, 헌금만 많이 하면 기꺼이 환영하고 용서의 은혜를 선포한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성전 정화에서도 영적인 의미만 전할 뿐, 실제 백성의 어려운 삶은 외면할 때가 많다.
어쩌면 화가 조토보다 못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조토의 ‘주먹질하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