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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09. 2021

꼰대

저는 꼰대입니다.

어느 신문에서 꼰대 패션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패션은 ‘꼰대’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다.

패션은 자유이지만, 꼰대의 성향상 ‘내가 편하다’는 이유로 시간과 장소에 맞지 않는 스타일을 고수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유행에 뒤처진 헐렁한 슈트도 모자라, 와이셔츠 안에 메리야스를 받쳐 입고 하얀 양말까지 고수한다면 꼰대일 확률이 높다.

신발이 안 보일 정도로 길이가 긴 바지를 선호한다거나 청바지 면바지 등 캐주얼 차림에도 정장 구두를 매치해야 직성이 풀린다면 100% 꼰대다.

언제 어디서나 양복 또는 등산복, 회사 점퍼 차림이거나, 자신의 체형보다 큰 크기의 옷을 선호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찔렸습니다.

저는 편한 것이 좋아서, 늘 같은 옷만 입습니다.

똑같은 옷을 사서 번갈아 빨면서 입기에 언제나 같은 패션을 유지합니다.

제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십 분의 일만 닮았어도 패션으로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전 외모를 가꾸는 데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어머니를 쏙 빼닮았습니다.

어머니도 가꾸기만 하면 참 고우신데 말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월을 보내서 그런지, 적은 수입으로 자녀 네 명을 키우기 위해 아껴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패션뿐만 아닙니다.

미국에 와서 3년째 친구 목사들과 함께 독서토론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모임에 참여하는 목사들은 대부분 저보다 20년에서 25년 연하입니다.

제일 젊은 목사와 전 격렬한 논쟁을 할 때가 많습니다.

둘이 말싸움을 하다 보면, 언제나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

“이 목사는 목회를 안 해봐서 그러는데…”

그러면 젊은 이 목사는 내게 맞받아 칩니다.

“목사님은 그러니까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 겁니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무안한 소리이지만, 그 말은 사실입니다.

전 과거에 매여 살고 있고, 그동안 쌓아온 생각을 허물기를 몹시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말싸움해서 누구에게 지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박사 공부를 하는 딸 아이와 한 시간씩 결렬하게 토론할 때도 있습니다.

이제 막 30이 된 딸과 60이 넘은 아빠의 말싸움은 언제나 ‘꼰대’라는 소리에 KO 당합니다.

그런 낡은 생각,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니 '아빠는 꼰대가 틀림없다'고 하면, 전 할 말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꼰대라는 소리가 왠지 정감있게 들립니다.

젊은 사람들이 거침없이 저에게 ‘꼰대’라고 하는 건, 사랑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친구 목사들이 돌아가고, 딸과의 통화가 끝난 후 저는 반성의 시간을 가집니다.

그리고 제 생각이 얼마나 막혀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제가 꼰대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전 급히 연락하여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고.

고집 부려 미안하다고.


전 꼰대라는 소리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 소리는 저의 굳은 심장을 두드리는 경종이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는 얼어붙은 제 마음을 깨트리는 망치이기 때문입니다.

꼰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저의 생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듣는 순간에는 마음이 얼어버리기도 하지만, 이내 그건 나의 마음을 깨우는 소리인 것을 알기에 ‘꼰대’는 참 고마운 소리입니다.

저는 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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