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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07. 2021

공부하는 삶

학창 시절 공부한 것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산에서, 들에서, 강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것만 기억납니다.

친구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친구가 내 곁에 함께 해주었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딸아이가 자랄 때 저는 공부 욕심이 있었습니다.

한문도 가르치고 싶었고, 역사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옆에서 감시 감독하며 가르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만 손찌검을 했습니다.

수학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것에 분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는 아이를 가르치다 아이를 망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공부에 손을 뗐습니다.

그후 아이는 스스로 공부할 것이 있으면, 알아서 공부했습니다.

제가 잘한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아이의 공부에 손을 뗀 것입니다.


인디언 부족 중 라코타 족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다고 보상하거나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보상을 미끼로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것을 잘 해내는 것 자체가 이미 아이에게 큰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아이들이 잘못했다고 책망하거나 채찍질하지 않았습니다.

그것 역시 아이들에겐 큰 공부였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공부해서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음을 터치했던 일들과 맺고 끊어진 것들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만난 수학 선생님, 한문 선생님, 고등학교 때 만난 역사 선생님, 생물 선생님

그들의 학문보다 그들과 만남에서 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실패하였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잘 가르치는 것보다, 좋은 관계를 맺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평소 공부하기를 좋아해서, 공부한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사람보다는 내용(message)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전 목회에 실패했습니다.

말씀은 붙잡았는데, 사람은 잡지 못했습니다.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았던 베드로는 노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1:23-24)

베드로는 인생의 허무함과 허탄함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영원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젊었을 때 전 이 말씀을 잘못 생각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말씀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베드로가 말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삶을 나누면서 들었던 말씀입니다.


고대 기독교인들 중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책은 구하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눈보다 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읽어주면,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곧 "삶 속에서 말씀으로 동행하시며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뜻합니다. 

베드로가 말한 “하나님의 말씀”은 관계였고 교제였고 실천이었고 삶이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입니다.

이렇게 글을 써서라도 함께 나눌 수 있으니 조금은 다행입니다.

글을 쓰는 데 도움을 주었던 참고 도서 

1. 시카고 추장 외,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류시화 옮김, 서울 : 도서출판 더숲, 2017년

2. Calhoun Adele Ahlberg, ‘영성훈련 핸드북’(Spiritual Disciplines Handbook), 양혜원, 노종문 옮김, 서울 : IVP,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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