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이 창조 세계를 돌보고 회복시킬 책임이 있다. 그러나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책임을 지지 않을 때, 우리는 낙심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PFOA의 위험성을 알리고 듀폰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던 것은 긴 싸움을 버텨온 롭과 그의 로펌, 시민들 때문이었다. 정의를 위한 싸움은 특별한 소수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문 중)

최주리(기윤실 청년활동가)

 

1975년의 어느 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의 파커즈버그 호수에 세 명의 젊은 남녀가 몰래 들어가 물놀이를 즐긴다. 달빛 아래에서 수영을 하고 있던 그들에게 보트가 다가와 그들을 내쫓는다. 허겁지겁 짐을 챙겨 나가는 이들을 뒤로하고 보트에서는 누군가가 정체불명의 액체를 강가에 뿌린다. 그로부터 20년 후, 인근의 농장에서 젖소 190마리가 눈이 멀고 이빨이 까맣게 썩은 채로 폐사하고 강가의 돌이 하얗게 표백되는 일이 일어난다. 20년 동안 파커즈버그 호수에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그날 밤 보트에서 강가에 뿌렸던 액체는 무엇이었을까? 젖소를 죽인 건 무엇이었을까?

 

영화 <다크 워터스>(2020) | 감독 토드 헤인즈 | 127분

 

1998년, 파커즈버그 호수 근처에서 젖소 농장을 하던 윌버 테넌트는 자신의 젖소 190마리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변호사 롭 빌럿을 찾아간다. 그는 화학 회사인 듀폰의 폐기물 매립지가 들어선 이후로 물이 오염되어 젖소들이 이상한 모습으로 죽었다며 직접 촬영한 자료들을 건넨다. 듀폰을 비롯한 화학 회사들을 변호하는 기업 법무 변호사인 롭 빌럿은 그의 의뢰를 거절하지만 자신의 할머니 이웃이라는 사실에 어쩔 수 없이 자료를 살펴보게 된다. 가볍게 마무리하고 넘기려고 했던 사건이었지만, 윌버가 준 자료와 듀폰의 자료를 살펴보면서 점점 이상한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듀폰의 자료에서는 “PFOA”(과불화옥탄산)가 반복되어 등장했지만 당시 이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없었고 환경 규제를 받는 화학 물질도 아니었다. 듀폰에서는 C8이라고도 불리는 이 화학 물질은 2차 세계대전에서 탱크 내부를 방수하는 데에 쓰인 물질이었다. 이후 듀폰은 1960년대부터 미국 전역에서 널리 쓰인 ‘테프론’ 프라이팬의 코팅에 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롭은 화학 전문가들을 통해 PFOA가 인체 내에서 분해, 배출이 되지 않고 갑상선 질환과 암, 치아 착색,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되는 물질이었음을 알게 되는데, 40여 년간 아무런 규제 없이 콘택트렌즈, 장난감, 종이컵, 카펫 등에 광범위하게 일상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심지어 듀폰은 PFOA의 심각성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테프론 프라이팬을 출시한 지 얼마 안 되어 공장의 노동자들이 고열과 메스꺼움에 시달리게 되자, 듀폰은 노동자들에게 PFOA를 몰래 넣은 담배를 주고 그 담배를 피운 노동자들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을 확인했다. 또한 생쥐를 통한 실험에서 PFOA로 인해 생쥐들이 기형 쥐를 낳고 장기가 부풀어 죽게 된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테프론 프라이팬으로 엄청난 매출을 달성하고 있던 듀폰은 이를 숨겼다. 공정에서 나오는 먼지는 대기 중에 배출하고 폐기물은 파커즈버그 호수와 같은 근처 호수 등지와 매립지에 버렸다. PFOA는 사실상 지구의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혈액에 남아있다고 한다. 파커즈버그 호수로부터 태평양 너머에 멀리 떨어져 있는 당신과 나에게도 말이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롭은 듀폰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하지만, 대기업의 횡포 앞에서 길고 지난한 싸움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PFOA의 위험성을 확인하기 위해 인근 주민 6만 9천 명의 혈액을 채취해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듀폰의 방해로 조사는 더디게 진행되고 소송 비용을 늘려 롭의 로펌에 부담을 주기 시작한다. 또한 듀폰이 웨스트버지니아에 높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와 공공시설을 제공하던 상황 속에서 오랜 기다림에 지치거나 경제적인 피해를 걱정하는 주민들도 늘어갔다. 결국 2015년이 돼서야 PFOA와 각종 질환의 연관성이 분명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게 되고, 듀폰은 6억 7천만 달러(약 8천억 원)의 배상금을 물게 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PFOA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영화 <다크워터스> 스틸컷.

 

40년간 당신들은 C8이 독성물질이란 걸 알았어요. ‘해피 프라이팬’이 시한폭탄이란 걸 알았고 그 이유도 정확히 알았죠. 이 모든 걸 알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유는, 그대로 인용하자면 ‘제품의 장기적인 가능성을 위해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였죠. 당신들은 돈을 너무 많이 벌었어요. 연수익 10억 달러. 테프론만으로 번 순수익이죠. 그래서 수백만 파운드의 독성 C8을 대기로, 물로 유출시켰고 실제로 거품이 보일 정도였죠. 사방이 C8로 가득해서 이젠 오염이 안 된 곳이 없어요. (영화 속에서 롭이 듀폰 책임자에게 한 말)

 

롭은 듀폰과의 싸움으로 지쳐갈 때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부도, 기업도, 과학자들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아.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지켜야 해.” PFOA 피해자들은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수많은 질병에 시달리고 죽음을 겪어야 했다. 대기업의 욕심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을 비롯해 동식물들과 자연이 혹독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품의 장기적인 가능성’이라는 이유로 그 고통을 묵살해버렸다.

 

영화에는 임신 중에 테프론 공장에서 일하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PFOA로 인한 안면 기형을 갖게 된 버키 베일리를 비롯한 실제 피해자들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 28절)

 

매년 3월 22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물의 날로, 물 부족과 수질 오염을 막고 물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날이다. 또한 3월 11일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12주기이며 일본은 앞으로 약 30년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성 오염수를 해저 터널을 통해 태평양에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환경운동연합 안재훈 활동처장에 따르면 해안 방출 방식은 약 2조 4천억 원의 비용이 예상되는 지하 매립 방식에 비해 70배 저렴한 방식이라고 한다.1) 대부분의 방사성 핵종을 제거하고, 걸러내지 못한 삼중수소는 깨끗한 물을 섞어 농도를 맞추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우려가 많은 상황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이 창조 세계를 돌보고 회복시킬 책임이 있다. 그러나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책임을 지지 않을 때, 우리는 낙심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PFOA의 위험성을 알리고 듀폰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던 것은 긴 싸움을 버텨온 롭과 그의 로펌, 시민들 때문이었다. 정의를 위한 싸움은 특별한 소수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윤실 운동 또한 공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을 지는 기독 시민들의 자발적인 변화와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욕심으로 인해 파괴된 창조 세계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수많은 약자들을 위해 우리는 어떤 싸움을 싸워야 할까?

 


1) 박희영, “尹대통령, 한일회담에서 日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막아야”, 「노컷뉴스」, 2023-03-10.

 

* <좋은나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시하시려면 저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02-794-6200)으로 연락해 주세요.

* 게시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표기하셔야합니다.
(예시)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https://cemk.org/26627/ (전재 글의 글의 주소 표시)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좋은나무> 구독하기

 <좋은나무> 뉴스레터 구독하기

<좋은나무>에 문의·제안하기

문의나 제안, 글에 대한 피드백을 원하시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편집위원과 필자에게 전달됩니다.
_

<좋은나무> 카카오페이 후원 창구가 오픈되었습니다.

카카오페이로 <좋은나무> 원고료·구독료를 손쉽게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_

관련 글들

2024.03.13

둑에서 물이 샐 때 일어나는 일들: 디지털 시대의 불법 복제와 기독교 문화의 위기(정모세)

자세히 보기
2024.03.13

웹툰: 다시 탁구채를 들기를(홍종락)

자세히 보기
2024.03.04

영화 : 가족은 핏줄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최주리)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