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회사가 해고 통지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존엄과 가치를 무시하며 포기해버리는 순간도 ‘해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은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각자의 방법대로 애쓰지만 서로를 향한 해고는 끊이지 않는다. 피 터지게 공부하고 입사해서 잠도 못 자고 코피 흘려가며 일한 회사는 하청 업체로의 파견을 가장한 퇴사 종용으로 정은을 ‘해고’한다. 하청 업체는 제대로 된 작업복도 갖춰 놓지 않아 감전되지 않기 위해 직원이 사비로 작업복을 마련해야 하고, ‘업무 효율’을 위해 작은 섬의 전기 공급을 위한 수리는 뒷전으로 미루며 힘없는 이들을 ‘해고’한다. (본문 중)

최주리(기윤실 청년활동가)

 

지난여름, 폭우로 서울 강남, 서초, 동작 지역이 침수되어 일대가 마비되었다. 지하철역이 침수되고 도로가 물에 잠기고 부서지며 맨홀에서 물이 역류하고 반지하 방에 물이 차올라 사람이 갇히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출퇴근할 때마다 오르내리던 지하철역의 계단과 에스컬레이터에 빗물이 폭포수처럼 흐르고 플랫폼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며 열차가 물에 잠긴 역을 무정차하고 지나가는 장면이 뉴스에 등장했다. 집에 돌아와 창문과 배수구를 살피고 부디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기를 바라며 잠을 청했다. 다음 날 걱정되는 마음으로 일찍 출근길에 나섰다. 도로 곳곳에 파인 자국이 선명했지만 이미 누군가 도로를 정리하고 안전선을 둘러놓았고 지하철과 버스는 정상 운행하고 있었다. 나는 유례없는 폭우를 피해, 지침에 따라 집 안에 박혀있었는데 그 시간 누군가는 비를 뚫고 위험을 감수하며 밤새 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일상은 수많은 누군가의 수고 때문에 평온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그 ‘누군가’들의 삶은 마냥 평온하지만은 않다. 목숨을 걸고 위험을 무릅쓰거나 불편하고 힘들고 더러운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을 보호해 주는 안전망은 부족하고 처우도 열악한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 국가이다.1) 1970년 노동자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가며 외쳐 온 노동자의 권리는,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 씨에게도,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19세 김 군에게도, 2022년 SPC의 제빵 공장 기계에 끼인 20대 근로자에게도 여전히 먼 곳에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장직 사무직을 불문하고 직장 내 괴롭힘, 성차별, 갑질, 채용 비리, 부당 해고 등의 다양한 노동 문제들도 여전히 산재한 것이 우리나라 노동 시장의 현실이다.

 

영화<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2021) | 감독 이태겸 | 111분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의 주인공 정은은 7년 동안 열심히 일해 왔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받아들이라는 요구를 받는다. 납득할 수 없는 요구를 거절하자 회사는 하청 업체에 가서 1년간 파견 근무를 하면 원청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부당한 해고에 굴복하고 싶지 않은 정은은 어쩔 수 없이 지방 도시의 하청 업체로 가게 되지만, 소장은 일을 주지 않고 불편하게 여기기만 한다. 어떻게든 1년을 버티고 싶은 정은은 결국 일손이 부족한 현장 근무에 나서기로 한다. 낡고 무거운 장비들을 이고 송전탑 수리에 나서려 하지만 스트레스와 고소 공포증으로 인해 송전탑에 오르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 죽는 것보다 해고되는 것이 더 무섭다며 홀로 딸 셋을 키우기 위해 송전탑 수리 일과 함께 편의점 알바와 대리운전을 하는 막내(충식)는 정은이 고소공포증을 이기고 수리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원청에서는 정은을 내쫓으라고 압박하고 현장 업무를 제대로 배울 기회도 없었던 정은은 원청의 업무 평가에서 처참한 결과를 받는다. 그러던 중 막내(충식)가 송전탑을 수리하다 감전 추락사를 하게 되지만, 회사는 그 문제를 대강 처리하고 넘어가기에 급급하고, 이에 대한 정은의 문제 제기를 아무도 받아 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회사가 해고 통지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존엄과 가치를 무시하며 포기해버리는 순간도 ‘해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은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각자의 방법대로 애쓰지만 서로를 향한 해고는 끊이지 않는다. 피 터지게 공부하고 입사해서 잠도 못 자고 코피 흘려가며 일한 회사는 하청 업체로의 파견을 가장한 퇴사 종용으로 정은을 ‘해고’한다. 하청 업체는 제대로 된 작업복도 갖춰 놓지 않아 감전되지 않기 위해 직원이 사비로 작업복을 마련해야 하고, ‘업무 효율’을 위해 작은 섬의 전기 공급을 위한 수리는 뒷전으로 미루며 힘없는 이들을 ‘해고’한다. 부당한 상황에 대해 노동청에 제소하더라도 긴 시간을 싸워야 하고, 승소하더라도 이전과 같지 않은 상황 속에서 또 다른 피해를 당하거나 결국 해고당할 수도 있다. 이런 불합리한 사회는 피해자들을 ‘해고’한다. 송전탑을 수리하다 해고가 아닌 죽음을 맞게 된 막내(충식)의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회사는 초등학생인 그의 첫째 딸에게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일단 보상 서류에 사인하게 한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급급한 회사는 아버지를 잃고 남게 된 아이들을 ‘해고’한다.

 

영화<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스틸컷.

 

영화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해고 속에서 정은은 이에 저항하고 맞서지만, 현실은 꿈쩍도 않는다. ‘업무 효율’을 위해 막내의 아이들이 사는 작은 섬으로 향하는 송전탑의 수리를 미루라는 소장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정은은 홀로 송전탑에 올라 수리를 시작한다. 그들을, 그리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해고’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다진다.

 

“나는 내 목에 감긴 팽팽한 목줄을 타인의 손에 쥐여 주고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외다리 지옥 길을 걷고 있다. 그렇게 걷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외다리 지옥 길을 걷지 않기 위해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영화 속 정은의 독백)

 

각자도생하기도 빠듯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누군가를 믿고 연대하고 돕는 일은 미련한 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다리 지옥 길을 걷는 누군가의 위태로운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있다. 또한, 내가 외다리 지옥 길을 걸을 때 내 손을 잡아 줄 이들이 있음을 믿는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안전줄이 되어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1) 송영훈, “[팩트체크] ‘한국은 세계 최악의 산재 국가’?”, <뉴스톱>, 2019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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