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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직 예수인가

믿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궁금증




믿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궁금증

 

질문1: 죄란 무엇인가요?

 

죄란 율법(십계명)을 어긴 것으로 마음에서 이미 죄가 나오기 때문에 율법을 어기는 행동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도 되나요?

 

답변1:

 

죄는 죄의 본질과 그 본질에서 파생되는 죄들, 두 가지로 구분해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전자는 아담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타락으로 인해 모든 인간의 본성에 새겨진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만 높이려는 끈질긴 성향입니다. 모든 이가 자기만 최고로 높이려드니까 자연히 사람들 사이에 분리 시기 경쟁 다툼이 생겨서 여러 윤리적 죄들이 파생되는 것입니다. 설명하신 대로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짓는 온갖 죄들이 파생됩니다.

 

따라서 죄란 단순하게 ‘율법을 어긴 것’이라고 정의내리지 마시고, 죄의 본질은 “자기를 하나님의 자리에 대체해서 놓고 자기만 높이고 사랑하려는 끈질긴 성향”으로서 율법으로 따지면 첫째 계명을 어긴 것이라고 해야 정확한 설명입니다. 또 그 첫째 계명을 어기게 되면 둘째에서 넷째까지 계명을 어기는 종교적인 죄와, 다섯째에서 열째까지 계명을 어기는 윤리적 죄들이 필연적으로 따라 나온다고 말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태생적으로 하나님을 찾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영적인 죄인이라서 종교적 윤리적 죄들을 짓는 것이지, 윤리적 종교적 죄들을 지어서 죄인이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구원도 성령이 사람을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는 은혜를 하나님이 먼저 베풀어야만 이뤄집니다.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윤리적 종교적 죄들을 없애고 씻으려 해선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분리할 수 없으며 죄의 본성에서 곧바로 죄들이 나타나니까 성경은 이렇게 구분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죄라는 단어 안에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는데 때로는 둘 중 하나의 의미만 나타낼 때도 있습니다. 앞뒤 문맥에서 잘 분별하셔야 하는데 칭의를 설명할 때는 죄의 본질을, 성화를 설명할 때는 그 본성에서 파생되는 죄들을 지칭하게 됩니다.

 

질문2: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느낄 수 있나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대해 여쭤봅니다 사람은 자기만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먼저 받은 사랑을 깨달아야하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이 동일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하나님께 먼저 받은 사랑을 잘 못 느끼겠습니다. 죄가 올라오려는 마음을 느낄 때마다 “이런 죄도 용서해주셨기에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건가요? 아직 제 믿음으로는 이런 마음의 활동이(회개-용서) 저를 더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고 사랑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괴롭기도 합니다.

 

답변2:

 

신자가 되어도 자기만 높이려는 죄의 본성이 많이 남아 있는데다, 다른 이들도 다 그러하기에 서로 온갖 잘못들을 알게 모르게 저지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결코 쉽게 서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그 상대도 당신의 형상을 닮게 지으시고 사랑하고 계시는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확신해야만 합니다.

 

그전에 자기부터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기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의 의에 의해 다 용서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절감해야만 합니다. 이는 성령의 간섭이 일어나서 스스로 자신의 추악한 영적 실체를 맞대면 해야만 가능합니다. 또 자기 내면이 죄악의 덩어리임에도 예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다 용서해주시고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주님과의 인격적 대면 체험을 실제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당장 자기부터 하나님의 긍휼 없이는 한 시도 살아갈 수 없는 너무나 불쌍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다른 이도 자기와 똑같이 불쌍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에 비로소 다른 이도 사랑하게, 정확하게 말해 주님 안에서 자기와 똑같이 불쌍하게 여기고 주님의 긍휼을 갖고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성령의 간섭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며 본인만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받은 사랑을 잘 못 느끼겠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스스로 거듭남의 체험이 있었는지 잘 분별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정말로 자기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었지만 주님 은혜로 새 사람이 되었기에 정말로 주님이 걸어갔던 그대로 따르기로 결단 실행하고 있는지, 비록 열매는 더디게 열릴지라도, 자신을 점검해보셔야 합니다.

 

또 “죄가 올라오려는 마음을 느낄 때마다 ‘이런 죄도 용서해주셨기에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건가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구원을 얻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있기에 더 이상의 심판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신자가 된 후의 모든 죄들에 대해선 미리 용서받는 셈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회개치 않고 계속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때와 방식에 따라 반드시 징계는 임합니다.

 

그런 죄가 올라오려는 마음을 느낄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잘 깨닫지 못하고 괴로운 생각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어진데다 십자가 은혜로 그분의 자녀가 된 신자로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기는 죄책감입니다. 그럼 반드시 주님께 구체적으로 실토하고 다시 한 번 십자가의 대속 구원 은혜를 묵상하며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자백만으로 그치지 말고 그런 악한 마음을 의지적으로 완전히 끊어내어야 합니다. 같은 죄를 다시는 짓지 않도록 고쳐야 합니다. 그런 고백과 회개의 과정 중에 다시 한 번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관념적 인식으론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반드시 실제 체험으로 받아 누려야 온전히 깨닫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성령의 거듭남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거듭난 신자는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만 묵상해도 그 사랑을 실제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죄의 본성과 사탄의 시험 유혹과 인생살이의 고달픔 등으로 그 사랑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자신의 잘못과 죄는 구체적으로 주님께 통회자백하며 피 흘리기까지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다른 이의 고난에 동참하며 주님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나아가 신앙 공동체에 가입하여서 함께 주님을 찬양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요컨대 자신이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자신의 행동으로 실천해야만 주님의 사랑도 체험적으로 깨닫고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법입니다.

 

질문 3.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뜻은?

 

하나님만 바라보라하시는데 하나님만 있으면 된다 하시는데 그게 오히려 배타적인 것 아닌가요?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어떤 영화에서는 피해자가 하나님을 만나 평안을 얻고 큰 결심으로 원수 같은 가해자를 용서하려 만납니다. 근데 가해자는 그 사이 하나님을 만나 모든 죄용서 받고 평안을 얻었다고 합니다. 피해자는 용서하러 갔는데 가해자는 이미 용서를 받았다고 합니다. 피해자는 이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고 미쳐 날뛰게 됩니다. 영화 속 내용은 극단적인 상황이라 좀 충격적인 부분은 있지만 둘 다 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명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쪽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만 바라본 가해자가 잘 한 상황인가요? 어찌됐든 하나님만 바라보면 되는가요?

 

답변 3

 

하나님만 있으면 되기에 그분만 바라보라는 것이 배타적 광신적 맹목적 종교인이 되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천하 만물을 지으시고 지금도 거룩하게 통치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입니다. 모든 선한 것은 그분께로만 나올 뿐 아니라 모든 입으로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게끔 인간 만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신자는 자기 존재와 삶과 인생의 모든 의미와 가치를 그분에게서만 찾고 그분에게만 돌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다른 것들이 살아가는데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일어나거나 필요한 모든 세상 것들의 근원도 그분이며 그분이 다 은혜로 주시고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다 이끌고 있음을 확신하기에 그분만 전적으로 의탁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는 예수님이 제자들더러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친 내용입니다. 바로 구절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고 본문부터 기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기도해야 할 제목입니다.

 

나라는 하나님이 거룩하게 통치하는 나라를 뜻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이 땅에 그런 거룩한 통치가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라는 것입니다. 또 하늘에선 그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계획과 뜻이 이미 다 확정되어 있기에 이 땅에서 그대로 온전하게 이뤄지게 해달라고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이 죄로 타락한 인간들 뜻대로 흘러가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실현되고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알기 쉽게 간단히 말하면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밀양은 저도 흥미롭게 봤는데 예수 믿는 신자들이 교회에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하나님만 경배하지만 교회 밖의 삶에선 예사로 죄를 짓고 불쌍한 이웃은 돌보지 않는다는 점을 예리하게 비평 풍자한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그 비평은 모든 신자들이 겸하게 받아들이고 그러지 않게끔 고쳐나가야 하지만 실제 내용은 기독교를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의 시각을 반영한 반기독교적인 영화입니다.

 

“한 명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쪽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만 바라본 가해자가 잘 한 상황인가요? 어찌됐든 하나님만 바라보면 되는가요?”라고 물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을 잘못 바라본 것입니다. 그분의 뜻에 대해서, 또 위에서 설명 드린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의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탓입니다. 두 사람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의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종교적 형식적 부분적 표피적으로만 이해한 것이며, 당연히 영화 내용 또한 그렇습니다.

 

가해자의 경우 하나님이 십자가에 모든 흉악한 죄인도 용서해주셨기에 자신도 용서 받을 수 있다고 믿은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반드시 피해를 준 자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피해자의 경우도 아무리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벌어져도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면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일단 피조물이 아니라는 뜻이지만, 그분에겐 오직 빛뿐이고 어두움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추하고 악한 것은 단 한순간도 공존하지 못합니다. 가해자가 하나님을 온전히 모르고 잘못 반응한 것이 문제이지 하나님이 잘못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신자들 중에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참 뜻을 모르고 있는 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영원한 심판의 형벌이 완전히 면제되었기에 신자가 된 후의 모든 죄들도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죄를 지어도 된다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6:1,2)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해서 세상과 담쌓고 배타적으로 신자끼리만 잘 지내면 된다는 법도 절대 없습니다. 성경은 현실을 외면하고 천국으로 도피하려는 그런 신앙을 가르친 적이 없고 그것은 오히려 이단으로 정죄 받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율법과 선지자는 신구약성경을 일컫는 별칭입니다. 온 성경의 내용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가지 계명뿐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계명이 첫째 계명과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도 당연히 사랑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똑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미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신자가 된 후에 이웃 사랑을 실천할 일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살펴본 대로 신자들과 일부 교회들의 행태와 가르치는 내용이 잘못된 것이지 하나님의 뜻과 성경의 진리는 절대적이고 완전합니다.

 

12/27/2019

 

첨언: 세 가지 질문을 살펴보건대 질문자께서 예배에만 참석하여서 하나님과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 단편적 표피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며 왜 믿어야 하며 믿음을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성경공부 모임에 적극 참여하시길 간곡히 권면 드립니다. 그럴 기회가 닿지 않으면 스스로 기독교 신앙의 기본에 관한 책이라도 읽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쉽게 간략하게 정리된 것으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독교 시리즈 5권, 알리스터 맥그레스 지음, 성서 유니온 발간”을 추천합니다. 조금 더 깊이 살펴보려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놀라운 구원, 영광스러운 교회와 아름다운 종말, 3권 로이드 존스 지음, 부흥과 개혁사 발간”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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